그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 창작의 힘
자유를 잃어본 사람일수록 그 가치를 절감하듯, 억압과 속박의 시간은 오히려 자유를 향한 갈망을 키워왔지요. 16세기 에스파냐의 작가 세르반테스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전쟁에 참여해 부상을 입었고, 돌아오는 길에 해적에게 붙잡혀 알제리에서 노예로 팔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구출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의지로 글쓰기에 몰두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세르반테스가 스페인의 작은 마을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의 대표작 『돈키호테』의 구상을 시작했고 집필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1605년 출간된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이러한 삶의 경험과 이상이 녹아든 걸작입니다. 그 속에는 현실의 억압을 뛰어넘고자 하는 창작자의 갈망과 자유가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주인공 돈키호테는 책 속의 기사도 이야기에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 상상에 빠지는 노인이지만, 그 광기로 보이는 모험은 어쩌면 타락한 현실을 거부하고 이상을 좇고자하는 세르반테스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상상의 날개를 펼쳐 인류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탄생시켰고, 자유로운 영혼과 창작의 가치를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삶과 『돈키호테』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통해 다시 숨을 쉽니다. 작품은 감옥에 갇힌 세르반테스가 죄수들과 함께 즉석 연극을 꾸미며 『돈키호테』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구조로 시작합니다.
음침한 감옥은 세르반테스의 상상력에 의해 여관이 되고, 전장이 됩니다. 죄수들은 처음엔 그를 비웃지만, 어느새 각자 극중 인물을 맡아 이야기에 녹아듭니다.
제가 가장 아름답고 인상깊었던 장면은 돈키호테와 알돈자의 이야기입니다.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천대받는 알돈자. 돈키호테는 그녀를 보자마자 "둘시네아"라 부르며 고귀한 존재로 대합니다.
알돈자는 화를 내며 자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한결같습니다. 그녀가 믿지 않아도, 세상이 조롱해도, 끝까지 그녀를 둘시네아라 부릅니다.
알돈자도 서서히 그 믿음에 감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상상의 힘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명곡으로 절정을 맞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을 물리치고.."
곡은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신을 노래합니다. 비록 승산 없는 싸움일지라도 진실과 정의를 위해 나아가고, 설령 꿈이 이뤄지지 않을지라도 끝까지 추구하는 것, 그것이 기사이자 인간의 사명임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지켜보는 죄수들도 마침내 그의 노래에 동화되어 합창하게 됩니다. 깊은 감옥에서 울려 퍼지는 꿈을 향한 노래는 듣는 이들의 가슴속에 뜨거운 용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이처럼 《맨 오브 라만차》는 한 사람의 상상이 어떻게 모두의 희망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창작물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일차적으로는 당연히, 그 작품을 빚어낸 창작자의 것입니다. '저작권(Copyright)'이라는 말 자체가 바로 그 권리를 가리키지요.
창작자가 작품에 담은 것은 이야기를 넘어, 자신의 인격과 사상, 그리고 삶의 조각들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물은 창작자에게 있어 분신 같은 존재입니다. 세르반테스 역시 『돈키호테』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막대한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책에서 재치 있게 녹여냈는데, 2부 서문에서는 "내 소중한 자식 같은 책을 다른 이가 함부로 속편까지 써버렸다"고 토로합니다. 이는 실제로 일어난 아픈 사건을 빗댄 것이었습니다.
『돈키호테』 1부가 성공한 뒤, 후속편을 집필하는 사이 익명의 작가가 가짜 2부를 써서 출판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무단 도용된 속편은 제법 퍼졌고, 세르반테스는 깊은 분노를 삼켜야 했습니다.
자신이 피와 땀으로 빚어낸 인물과 이야기들이 남의 손에 의해 멋대로 펼쳐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그의 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애가 타고, 속이 뒤집혔을까요.
세르반테스는 이를 갈며 『돈키호테』 2부를 서둘러 완성해 1615년에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돈키호테를 세상을 떠나게 만들어, 더 이상 아무도 그의 모험담을 이어 쓰지 못하도록 단단히 문을 닫았습니다.
창작물이란, 만든 이의 영혼이 깃든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함부로 훼손되거나 도둑맞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그것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창작의 방법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현대의 저작권법도 같은 취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창작자 동의 없이 작품을 복제하거나 이어 쓰는 것을 금지하고, 창작자에게 정당한 보상과 통제를 부여하여 창작의 의욕을 북돋고, 더 많은 문화가 꽃피도록 합니다.
오늘날 『돈키호테』는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나 인류 모두의 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누구든 이 고전을 번역하거나 각색할 수 있고, 《맨 오브 라만차》처럼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창작물에 대한 권리는 처음에는 개인의 손에서 시작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인류 모두의 것이 되어 갑니다. 저작권의 본질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창작자의 노력과 권리를 존중하는 것, 동시에 그 열매가 언젠가 모두를 위한 빛이 되게 하는 것. 그 균형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저작권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창작과 저작권의 의미를 되새기다 보면, 4월 23일이 가진 특별한 의미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이날은 바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로, 창작자의 권리를 증진하고 저작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유네스코가 제정한 기념일입니다.
1995년에 지정된 이 날은, 전 세계가 함께 저작권 존중의 중요성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4월 23일일까요? 이 날짜는 문학사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1616년 4월 23일, 세르반테스를 비롯한 인류 문학의 거장들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4월 23일은 위대한 작가들을 기리는 상징적인 날이 되었고, 유네스코가 세계적인 기념일로 삼은 것도 이런 배경 덕분입니다.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에는 인류의 지식과 상상력이 담긴 책을 널리 읽고 알리는 동시에, 그 책을 만들어낸 창작자들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창작자들의 땀과 노력 덕분입니다.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일은, 더 많은 작품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밑거름이 됩니다.
세르반테스의 작품 역시 시대를 넘어 사랑받으며 전승되어 왔습니다. 4월 23일, 우리가 세르반테스를 떠올리는 것은 작품에 대한 예우만은 아닙니다. 그의 삶과 작품이 보여준 창작의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이 오늘날 저작권 체계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르반테스가 자신의 작품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을 저는 이번 기회에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인류에게 남긴 유산이, 저작권 덕분에 더욱 오래도록 빛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깊이 새겨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