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미로: 추가금이라는 이름의 덫
11월의 차가운 공기는 결혼식의 뜨거운 열기를 중화시키기엔 부족했다. 결혼 준비라는 마라톤을 마친 뒤, 마침내 우리는 결혼식이라는 피날레를 올렸다.
이제 남은 건 스냅사진이었다. 결혼식 날의 순간을 고스란히 담은 약 4,000장의 사진. 듣기엔 많고 풍성한 숫자였지만, 실상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사진 셀렉 과정은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앨범에 들어갈 단 90장을 고르기 위해 4,000장을 훑어야 한다니, 이건 축복받은 선택이 아니라 고문에 가까웠다.
게다가 200만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한 서비스에서 흔들리거나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는 사진들까지도 우리가 골라내야 한다니, 어이가 없었다.
'최소한 이런 사진은 걸러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루를 꼬박 써서 200장을 추려갔고, 그 중 90장만 앨범에 들어간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고르러 갔더니 직원은 이 사진, 저 사진에 "이건 꼭 들어가야 한다"며 우리의 선택지를 제한했다.
추가된 사진을 합하여 계산해보니, 총 120장이 셀렉되었다. 추가된 사진 30장에 99만 원. 1장에 33,000원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말 그대로 추가금의 공포다.’
우리는 추가금을 내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결과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 직원의 설득과 압박, 그리고 아내와 나의 애매한 태도가 겹치면서 결국 몇 장의 추가금을 받아들였다.
내가 강하게 나섰다면, 혹은 아내가 단호하게 대응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아내에게 왜 더 냉정해지지 않았어 라고 말하려고 하는 그 순간, 아내의 얼굴을 보니 문득 내가 잘못 짚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건 아내의 탓도, 내 탓도 아닌, 그보다 더 큰 구조적 문제였다.
결혼 준비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여정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예산을 짜고, 장소를 예약하고, 식사를 준비하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모든 것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선택지와 추가비용들이 있었다. 스냅사진은 그 단적인 예에 불과했다.
결혼식장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건 기본 포함 사항이 아닙니다"라는 말은 마치 주문처럼 반복되었다. 사진, 예복, 메이크업, 심지어 신랑 신부 대기실의 작은 장식품 하나까지도 옵션으로 둔갑했다.
초반에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가격표가,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이 옵션 추가하시겠어요?”, “이건 필수니까 선택 안 하실 수 없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결혼은 마치 '돈과 인내의 시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추가비용의 미로는 끝나지 않았다. 스냅사진 셀렉 작업이 대표적이다. 4,000장의 사진 중 90장만 선택할 수 있다는 기본 옵션을 제시받았을 때, 그 작업이 단순히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일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심리적 압박까지 더해졌다.
“이 사진은 놓치기 아까운 것 같아요”라는 직원의 말에 추가로 선택된 사진은 결국 비용을 의미했다. 단순히 돈만이 아니라, 추가금을 둘러싼 눈치 싸움이 점점 고역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와 아내는 서로에게 미묘한 책임을 떠넘겼다. 나는 더 단호하게 나섰어야 했지만, 그 순간 '괜히 분위기를 더 망치지 말자'는 생각에 주저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이 더 강하게 나섰으면 좋겠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결국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를 더 큰 스트레스로 만들 뿐이었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금전적인 부담을 넘어서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준다. ‘이 정도는 해야 결혼식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다’는 사회적 기대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 기대 속에서 나도 모르게 ‘결혼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며 체념해가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결혼을 준비하며, 그리고 그 후에도 이어지는 추가금의 미로 속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불만과 분노가 앞섰다. ‘왜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왜 당연히 추가금을 내야 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차분히 돌아보니, 내가 느꼈던 불만이 단지 시스템에만 향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서운했다.
결혼 준비 기간 동안 나는 종종 아내에게 의지했다. ‘그녀가 더 잘 알겠지’,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될 거야’라는 핑계로 결정을 미루고, 중요한 순간에는 뒤로 물러섰다.
이번 스냅사진 셀렉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더 단호했다면,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혹은 상대방을 더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침묵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한 침묵은 아내에게 책임감을 전가하는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내의 미안하다는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아내가 미안해해야 하지?’ 이번 일의 본질은 내가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었다.
상대방에게만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면서도 나만의 평온을 지키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내는 내가 더 나은 배우자가 되기를 바랐을 뿐인데, 나는 그 기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혼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함께 걷기보다는 아내의 뒤를 따라가는 편을 선택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데 있어서도 나는 부족했다. 이번 경험은 그런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나는 이 사건을 통해 결혼이란 단순히 의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마주하고 그것을 채워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시스템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먼저 변화를 시작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방에게 더 깊이 공감하고, 더 용기 있게 나서는 것이다. 함께 걸어가야 할 그 길 위에서, 나는 더 나은 동반자가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을 품고 다시 아내의 손을 잡았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의 길을 걷는 여정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서로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손을 내미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손을 내밀 때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