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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니 Sep 21. 2023

앵행도리: 누구나 자기만의 열매가 있다

나만 뒤처진 것 같을 때

식물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앵행도리'라는 사자성어이다.


앵두꽃, 살구꽃, 복숭아꽃, 배꽃은 언뜻 보면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꽃이 피는 시기도, 맺는 열매도 다르다.

피는 시기에 관계없이 모두 아름다우며 자기만의 성장원리에 따라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다.




친구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누구는 직장인 몇 연차에 안정적인 연애도 하고 심지어 결혼한다는 애들도 있는데 난 뭐냐.. 현타 온다 정말"


27살,

사회인과 학생이 애매하게 섞여있는 나이.

잘 가다가도 이 길이 진짜 맞는지 의심하게 되는 혼란스러운 나이다.


어떤 친구는 지금 하고 있는 직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직을 망설이고, 또 다른 친구는 퇴사를 하고 어학연수를 꿈꾼다. 공시생, 취준생도 있고 벌써 결혼을 결심한 친구도 있다. 우리의 27살은 모두가 서로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대학교를 갓 졸업하자마자 칼취업을 했다. 사회에 나와서 어린데도 잘한다 혹은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 같은 말을 들으면 괜스레 초조해지곤 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어리지 않으면 그때도 난 잘하는 게 맞는 건가? 실수하면 안 되는 걸까? 어리지 않은 나는 보잘것 없어질까 봐 내실을 쌓는 것에 강박이 생겼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남들보다 늦는 게 아닌가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때로는 그것이 자책감과 자기 비하로 이어지기도 한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에 따라 이루어야 할 생애 과업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다수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기준에서 벗어났을 때 초조함은 더 커진다.




앵두꽃과 살구꽃


복사꽃과 배꽃


반면 식물의 생애는 절대적인 기준을 가진다. 식물에게는 적산온도라는 개념이 있어 생육 기간 동안 온도를 누적해서 채우고 그것이 일정 기준을 넘기 개화와 결실을 하게 된다. 이 적산온도는 식물의 종마다 다르다.


앵두는 3~4월에 꽃이 펴서 6월부터 열매를 맺고, 살구는 4월에 꽃이 펴 7월에 열매를 맺는다.


복숭아는 4월에 꽃이 펴 늦여름까지 열매를 달고 배는 코 끝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열매를 단다.


배가 열매를 늦게 단다고 해서 배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앵두가 열매를 빨리 맺는다고 해서 앵두가 제일 잘난 것도 아니다. 그냥 앵두는 앵두고 배는 배일뿐이다.


그러니 내가 남들보다 빠르다고 해서 거만할 것도 없고 늦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다.


"앵행도리"


우리는 피는 시기에 관계없이 모두 아름다우며 늦게 피는 것 마저 나의 고유함이니


나만의 보폭으로 걷다 보면 언젠가 결실에 필요한 적산온도에 다다르게 된다. 나는 나의 속도가 있는 거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스스로를 믿고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 글은 처음에는 우울해하는 친구를 위해 적은 장문의 위로 편지였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남들보다 늦었다고 자책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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