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서스 Nov 22. 2024

공부하세욧!

이해 안 되면 외우던가.

(본 글은 제가 2021년도에 조아라 사이트에 '웹소설 쓰는 법'에 올렸던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21년도에만 해도 제가 지금만큼 뷔페미니즘에 적대적이진 않았었네요. 그 이후에 뷔페미 집단이 더 퇴화(...)하면서 저 또한 그만큼 날을 세웠다는 얘기겠죠.) 



1. 잠시 딴 얘기 : 대한민국 학생운동사 요약


 제목을 ‘공부하세욧!’으로 쓰면 대충 무슨 얘기 할지 짐작하실 겁니다. 요즘 저 얘기 자주 하는 60대 아재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구요. 


 우선 좀 다른 얘기부터 해 보죠. 공부라고 하긴 그렇고, 그냥 예전에 관심 있었던 영역 얘기입니다. ‘대한민국 학생운동사와 현재 정치 지형’ 정도라고 하면 되겠네요. 


 대머리 군인이 철권통치하던 `80년대. 대학가에 ‘강철서신’이라는 이름으로 대자보 및 전단이 나돕니다. 이 나라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외세에 의한 분단’으로 보고 자주·민주·통일을 주된 이념으로 하여 남북한 간 주체적인 화합과 공동 번영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한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했다고 하죠. 


 이 강철서신을 기반으로 하여 대학가에 통일운동이 번성합니다. 추후 90년대에 NL(민족해방)이라 불리는 계열의 학생운동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통일운동 이념의 학생운동과 그들을 중심으로 한 군사독재 타도 움직임은 점점 더 커지고, 마침내 `87년 군사정권 측의 타협안을 받아듭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9차 개헌안이죠. 뭐, 그 직후 선거에서 대머리 친구가 보통사람 어쩌고 지랄염병하며 대통령 되는 바람에 많이 무색해졌지만. 


 `87년 독재타도 운동이 거셌지만, 이와 연계하여 ‘노동자 대투쟁’도 일어납니다. 옥포의 조선소에서 서울 철로까지. 지금은 이익단체 성향이 강하지만 이 때 당시에는 현대차/현대중공업 등의 대형 노조들이 변화의 선봉장이었죠. 


 노동자 대투쟁을 전후하여, 통일운동 일색의 학생운동에도 새로운 흐름이 도입됩니다. PD(민중민주)라 불리는 노동·사회주의 계열이라고 합니다. 


 NL계열 학생운동은 당시 사회변혁 세력의 헤게모니를 주도했고, 숫자 면에서 PD계열을 압도했습니다. 전대협-한총련으로 이어지는 학생운동은 자주통일 세력이 슈퍼 메이저였죠. 당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3위였다고 합니다. 


 뭐, 결과가 썩 좋다고 할 수는 없죠. 투쟁 일변도의 학생운동은 일반학생 및 국민들의 지지를 서서히 잃어 갔고, 대머리 친구가 의외로 소련과 수교하는 등 활약하는 데다 공산권 붕괴 크리가 터지자 이념적으로도 많이 흔들립니다. 


 9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기존 NL-PD 라인의 투쟁 일변도 정책을 비판하는 새로운 학생운동 흐름이 탄생합니다.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라는 단체가 제일 컸죠. 계속 같은 얘기 반복하고 무조건 투쟁만 외치는 ‘운동권’에 지친 일반학생들이 이들 21세기 세력을 적극 지지합니다. 



 이 뻔한 학생운동 얘기를 왜 하냐구요? 이게 현재(2021년)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유력 대선후보였다가 성추문 한 방에 훅 간 안희정. 킹크랩 사건으로 맛탱이 간 김경수. 현재 통일부장관 이인영. 이들이 저 NL의 수괴(?)였죠. 이인영이 한총련 1기 의장인가 그럴 겁니다.


 현재 정부의 북한바라기 행태를 논할 때, 기존 586 세대의 통일운동 성향을 고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20대 초중반에 가졌던 사고방식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거든요. 그들을 퉁쳐서 ‘빨갱이’라고 불렀었지만 통일운동 세력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에 그리 적대적이지 않았고, 북한과의 협력을 더 중시했었죠.


 그리고, ‘거지갑’으로 유명세를 탔다가 최근 내로남불 역습으로 주춤한 박주민은 21세기 진보학생연합 쪽으로 활동했었습니다. 지금은 NL계열과 같은 정당 소속으로 흐름을 같이 하고 있지만, 20대 초중반 때의 사고방식이 있다면 북한에 대한 대외정책에서 기성 정치인들과 다른 의견을 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 여기서 ‘정치 얘기 짜증난다’고 하실 수도 있겠죠. 그러나, ‘공부하세욧!’이라는 얘기에 대해 답변하기 위해 이 얘기를 했어야 합니다. 즉, 특정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 하는 얘기를 하려고 학생운동 썰을 풀었습니다.


 특정 사상은 그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데카르트가 비판적·회의적·이성적 철학을 시작하고 칸트가 그걸 심화시켰을 때, 시대적으로는 과학이 발현되고 르네상스를 거친 인본주의가 태동했으며 신대륙을 정복하는 유럽인들이 점점 더 오만해지고 있었죠. 이 시대적 배경을 알고 나서 유럽 근대 철학을 봐야 맥락을 이해하는 겁니다.


 ‘공부하세욧!’을 쉴 새 없이 외치는 한국적 페미니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뭘 공부해야 하는지는 안 알려 주지만 일단 공부해 보려면 시대적 배경부터 살펴야죠. 법학, 경제학, 경영학, 기타등등 사회학 분야에서 관련 역사를 앞부분에 언급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2.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 라고 할 게 없네요


 한국적 페미니즘의 역사부터 찾아보려면⋯⋯.


 이게 참 신기한 게, 인터넷 검색으로는 한국적 페미니즘의 역사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공부하세욧!’을 수없이 외치는 분들이 이런 거 잘 정리 안하나봐요. 요즘 같은 시대에 책 한 권이라도 나왔으면 그 책 요약해서 어디 올리시는 분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것도 안 보이네요.


 그러면, 대충 반세기 가까이 살아온 사회적 평균인의 입장에서 일반 역사를 바탕으로 통빡 굴리는 수 밖에 없죠. 크게 봐서 ‘여성운동’으로 퉁치고 해방 직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해방 직후의 여성운동을 짧게 요약하면 ‘친일파 여성 지식인들의 자기변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윤숙과 김활란이라는 양대 산맥이 있죠.


 모윤숙은 대표적인 친일 시인입니다. 해방 후에는 완전 친미파로 돌아섰고 사망한 국군 소위를 찬양하는 시를 쓰기도 했지만, 문학적 완성도만 놓고 따지면 ‘창공의 어린 날개’가 훨씬 더 잘 쓴 작품입니다. 대동아 공영 완성을 위해 불꽃처럼 스러져 가는 가미카제 학도병을 찬양했죠. 친일 행적 부정하기에는 너무 큰 족적을 남기셨네요.


 이화여대 학장이었던 김활란 또한 친일행적으로는 모윤숙 못지않다고 합니다. 모윤숙처럼 문학적 업적(!)을 남겼는지는 모르겠는데, 친일파 연구하시는 분들은 김활란 얘기만 나와도 이를 가는 수준입니다.


 한국 초창기 여성운동은 이렇게 ‘슈퍼 엘리트 급 여성지식인들이 친일 행적을 지우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히 친정부적이고 당연히 상위 엘리트 중심이며 일반 여성들의 행복 증진 따위는 아몰랑. 이런 흐름이 80년대 초반까지 이어집니다.


 즉, `8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여성운동은 '권력집단에 빌붙어 사는 상위 엘리트 여성들의 문화활동'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뭐 그 운동을 주도한 엘리트들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전체 여성들의 권리나 생활과는 별 관련이 없었어요 완전히 따로 놀았죠.



 80년대에도 ‘여성운동’이라는 이름의 사회운동은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의 슈퍼 메이저였던 자주통일세력에 휩쓸렸다고 할까요.


 이 시기, 분단 한국의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은 유럽-미국의 `70년대 운동과 상당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는데요. 즉, 해외에서는 `68혁명의 문화적 자유주의와 노동운동 중심의 수정사회주의 경향이 주류였던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경향이 완전히 비주류였습니다.


(그 결과 문화적 자유주의자였던 고 마광수 교수님께서 기존 주류정치와 변혁운동 양 쪽에서 모두 외면당하는 비극이 있었습니다만⋯⋯. 이건 일단 논외로 하겠습니다.)


 이 때 ‘문화적 자유주의’와 ‘노동운동’이 제대로 도입되지 않았다는 게 한국적 페미니즘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칩니다. 즉, 유럽-미국의 페미니즘과 다른 양상을 띄는 원인이 되죠.


 유럽-미국에서 페미니즘은 ‘여성노동자의 권리 찾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고편만 봤습니다만) 공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은 여성노동자가 테러리스트 급의 파괴운동을 주도하면서 여성운동을 시작하는 영화가 있더군요. 초창기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은 그 궤를 같이 했었습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2차 대전 당시 남성들이 전쟁터로 가면서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광고에서 팔뚝 굵고 건강한 여성들을 찬양했고, 여성들이 탱크와 전함과 항공모함을 만들어 냈으며, ‘걸즈 캔 두 애니씽’이 실제 육체노동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여성도 노동에 참여할 수 있고 그 노동의 댓가는 동등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된 유럽-미국 페미니즘은 `68혁명 당시 문화적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리버럴 페미니즘’으로 도약합니다. [양성평등=성해방]의 개념이었고, 여성의 성 상품화에 반대한다는 것이 성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 자유로운 성 해방을 전제하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물론 리버럴 페미니즘 하나만 있었던 건 아니겠죠. 기존의 기독교 가치관과 결합하여 ‘평생 일부일처제’와 ‘안티포르노’를 외치는 페미니즘도 있었고, 여성의 열악한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 성적 엄숙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었다고 합니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다양하게 분화된 거죠.


 그리고, 마침내 ‘래디컬 페미니즘’이 탄생합니다.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가장 극단적이라고 하네요. 요약하면 ‘남자 필요없어. 여자로 충분해’라는 입장이라 카더라 라는 게 인터넷 검색 결과입니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동성애자도 배척하는 분위기고, 양성평등을 넘어서서 여성 우월주의 내지 여성 고립주의 단계까지 나아간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사회운동에서 소수자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겠죠.


 

 아무튼, 외국에서 이렇게 페미니즘 관련 논의가 세분화되고 자체적인 논쟁을 통해 사상적 지향점을 명확히 밝힐 때⋯⋯. 한국에서는?


 `80년대 후반부터 전대협 한총련을 거치면서 학생운동이 기세를 떨칠 때에는 여성운동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모든 사회운동이 대머리군발이 타도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대머리 친구 물렁이 때에도 투쟁 중심이었어요. 여성운동을 별도로 구분할 이유도 실익도 없었습니다.


 그랬던 게 `90년대 중후반부터 ‘갑툭튀’로 페미니즘이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여성운동 하셨던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정말로 ‘갑툭튀’였어요. 이 시대를 살았던 남자들 입장에서는 여성운동 쪽이 지향하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3. '갑툭튀'로 시작된 한국적 뷔페미니즘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 경, 양성쓰기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 취지를 잘 모르겠어요. 가부장적 질서에 대항하자는 것 같긴 한데, 양성쓰기 운동이 여성의 실질적인 지위 향상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때 당시 ‘아가씨’라는 말에 부정적인 인식이 퍼졌죠. 물론 그 전에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있긴 했습니다. 유흥주점 접대부들을 아가씨라고 불렀으니까요. 그런데, 공식적으로 아가씨라는 말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확정하고 일반 술집에서는 ‘저기요’ 내지 ‘이모’, ‘누나’ 등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제가 직접 봤었습니다.


 ‘갑툭튀’라고 표현한 이유는, 한국에서 시작된 페미니즘 활동이 이렇게 [뜬금없이 시작되는 말싸움]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쓰고 있는 단어를 바꾸고 그 의미를 바꿔 사회적 인식을 바꾸자는 방식이었어요. 앞뒤 맥락 다 끊어먹고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방식이어서 당황스러웠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훅 치고 들어오는 건 그렇다 치고) 이렇게 ‘언어를 바꾸면 인식이 바뀐다’라는 주장. 한국 페미니즘이 처음으로 한 게 아닙니다. 이걸 한국 땅에서 처음 시작한 건 일본 식민 시대부터였어요.


 언어 영역에서 태클 거는 건 문화운동의 일환입니다. 문화라는 게 워낙 포괄적이고 모호하다 보니 그 성과가 뭔지도 불분명하지만, 중요한 건 문화운동을 펼치는 게 꼭 사회개혁 세력만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나치도, 일본제국주의자들도, 한국의 독재자들도 모두 문화운동을 통한 정신개조 작업을 수행했었어요.


 정확한 이념적 지향이 뭔지 알리지 않은 채 언어적 영역에서부터 파괴를 시작하는 것. 언어를 비롯한 문화적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이의제기하고 반달리즘 수준의 파괴를 수행하며 계속 문화진지를 확보해 나가는 것.


 달리 말해, 현실에서 형사처벌받을 만한 짓은 안 하고 말로만 싸움 거는 것.


 이러한 흐름이,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기존 학생운동의 끝자락과 병행하여 ‘페미니즘’의 이름을 건 문화적 현상들이 대폭 확대되었습니다.


 물론, 이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 건 기존의 헬조선이 심각한 남존여비 유교탈레반 문화였고 여성들의 분노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겠죠. 그럴 만 합니다. 헬조선 유교탈레반 문화에서는 여자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었고, 그 제도가 `80년대까지 이어졌었으니까요. (상징적이긴 하지만) 호주제는 21세기 초반까지 있었습니다.


 헬조선에서는 여성들의 반대 투쟁이 직접적으로 전개된 게 아니라 ‘문화로 스며드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요즘도 ‘스며들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죠(‘윤며들다’ 같은 거). 아마 처음부터 여성운동계 쪽이 ‘문화로 스며들어 모르는 사이에 점령한다’는 전략을 구사했던 게 여기저기 퍼진 것 같습니다만.


 뭐, 이렇게 ‘문화로 스며드는’ 방식의 투쟁이 잘못됐다는 건 아닙니다. 나치나 일본이 구사했던 문화운동과 유사하다고 해서 그 자체로 잘못된 건 아니죠. 어느 세력이든 간에 자기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면 다 구사할 수 있는 작전입니다.


 작전 자체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누구나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볼 때) 이 작전에서 2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1. ‘문화로 스며드는’ 과정에서 뭘 지향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

2. 이걸 수행하는 문화활동가 당사자들조차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한다는 점


 이 문제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한국적 페미니즘을 스스로 옭아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가 뭔지 모르고, 그러다 보니 활동가 당사자들도 각자 말이 달라져요. 그러니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4. 한국적 뷔페미니즘의 문제 : 끝없는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 퇴화함


 여성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과 문화적 자유주의 운동을 겪으며 확대된 유럽-미국 쪽 페미니즘과 달리, 한국의 여성운동은 `80년대 중반까지 친정부적이고 중산층 이상의 엘리트 여성을 대표하는 이익단체였습니다. 기존 주류 남성과 협력적 관계였던 이익단체가 그 원래의 이익을 유지한 채 해외 페미니즘을 받아들인 거죠.


 (`90년대 중반 이후 학생운동에서 떨어져 나온 세력이 기존 여성운동과 섞이면서 뭔가 서구적 페미니즘 비슷하게 가긴 했었습니다만 주류는 기존 제도권 이익단체 쪽이었습니다.)


 그 결과인지는 모르겠는데, 한국의 페미니즘은 처음부터 정치세력과 기존 사회질서를 등에 업었습니다. 철저히 비주류에서 테러에 가까운 방식으로 시작한 유럽 식 페미니즘이나 / 2차 대전 때 여자들이 직접 육체노동을 시작하면서 사회적 지위를 얻었던 미국 방식의 페미니즘과 완전히 다르게 시작한 거죠.


 앞서 말한 유교탈레반의 남존여비 문화를 깨부수기 시작한 건 바닥부터 올라오는 사회변혁 운동세력이 아니에요. 오히려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근대 헌법 이념과 법치주의에 따라 민법을 바꾸고 호주제를 위헌판결(헌법불합치)하면서 변화를 주도했습니다.


 이렇게 주류 권력을 업고 움직인 영향 때문인지, 한국의 페미니즘은 ‘성적 엄숙주의’와 결합합니다. 남성들이 보는 19금 성인 문화를 배격하고 공식적으로는 성인 문화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패턴이 나타나죠. 제가 ‘씹선비 호박씨 문화’라고 부르는 유교탈레반의 잔재와 페미니즘이 합체한 것입니다.



 제도 변화의 성과는 기존 남성중심의 법제도 상부에서부터 내려오는데 실제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하는 운동 세력은 하부에 머물려 있는 상태. 여기에서 첫 번째 모순이 발생하죠. (외국의 리버럴 페미니즘 영향을 받아) 여성 자신의 성적 행복추구권은 마음껏 발산하는데, (한국적 씹선비 호박씨 문화의 영향을 받아) 한국 남성의 성적 행복추구권은 깔아뭉개는 모순.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비키니 내지 수영복 입고 나오면 성상품화라고 기사 올라옵니다(주로 한겨레 등). 그런데, 얼굴 험악하게 생긴 여자가 비키니보다 더 헐벗고 나오면 ‘걸크러쉬’라고 칭찬합니다(이것도 주로 한겨레 등).


 분명 여성 스스로 자발적 의사에 따라 수영복 내지 더 헐벗은 복장 입은 건데, 미스코리아 대회는 까이고 얼굴 험악한 여자는 칭송받습니다. 이걸 접하는 사람은⋯⋯. [이건 뭐야 병신]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요.


 남성들이 주로 찾는 합.법.적. 해외 포르노 사이트들을 warning.or.kr로 차단하는 뜬금포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도 안 합니다. 뭐 성매매 금지 때문에 차단했다고 하는데 저 영어로 나오는 사이트에서 성매매 광고를 읽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읽으면 어쩔 건가요? 캐나다 가서 성매매 하나요? 이거 본다고 해 봐야 아무 문제 없습니다.


 기안84의 조개 뽀개기 만화와 박나래의 남성인형 저질 쇼는 뭐 더 얘기 안해도 충분합니다. 남자가 만화 그리면 죽일놈, 여자가 남성인형으로 저질행위 하면 ‘남성들이 독점적으로 누려 왔던 음담패설 권리를 여자들도 누려야 한다’는 뜬금포. 이런 기사 쓰는 사람은 이게 모순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요?



 저 모순만 해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이 모순을 변명하려 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뇌피셜 근거로.


 이런 현상은 처음부터 이념적 지향을 명확하게 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건데요. 처음부터 내부적으로 명확한 목표와 이념체계가 있다면 이런 일 발생하지 않죠. 각자가 생각하는 게 달라서 마구잡이로 내던지다가 역공 들어오면 그냥 또 각자 변명하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리얼돌과 여성형 딜도 비교’가 있습니다. 대법원이 리얼돌 수입 합법이라고 결정을 내리고 이걸 수입하는 측에서 ‘여성형 딜도는 왜 허용하냐?’라고 반박했을 때 온갖 뇌피셜이 다 쏟아졌죠.


 리얼돌은 강간예행연습 인형이다, 내 얼굴과 똑같이 할까봐 무섭다, 여자는 섹스파트너를 다 소유하겠다는 생각이 없어서 딜도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남성은 소유욕이 충만해서 여자를 똑같이 구현하려 하니 리얼돌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등등.


 - 강간예행연습 인형? 리얼돌 이용자 중에 강간범 있다는 기사 아직 없습니다. 남페미라고 떠들던 남자 중 성추행범이 4명이나 발생하는 동안, 리얼돌 이용자가 성범죄 저지른 건 없어요. 저 성추행범 4명이 안ㅇ정 오ㅇ돈 박ㅇ순 김ㅇ철 이라는 건 안 비밀.


 - 내 얼굴과 똑같이 할까봐 무섭다? 저기요. 거울 보고 다시 얘기하시죠. 그런 상품이 팔릴 것 같습니까?


 - 여자는 소유욕이 없다? 남성형 리얼돌에 AI 나오면 어쩌시려고.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에이아이’에서 (머리카락 빼고) 다 갖춘 남자 주드 로가 AI리얼돌로 나오는 거 못 보셨어요? 여성 쪽이 성해방되면 소유욕 없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진심? 레알? 트루?



5. 진짜 공부 좀 하세요


 페미니즘 쪽이 ‘공부하세욧!’이라는 주장을 한 지 대략 5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 무슨 논쟁 붙으면 그들 중 대다수는 어디 적당히 외국 사람 이름 대거나 / 그 외국 사람이 쓴 논문을 그대로 복사해 와 엄청 길게 댓글 달거나 / 아닥하고 사라지는 일들을 반복하곤 하죠.


 - 외국 교수 이름 댄다고 상대방이 GG치는 거 아닙니다. 저게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라는 건 논리학 개론만 들어도 다 알아요. 처음 당하면 당황스럽겠지만 적응하면 비웃습니다.


 - 무슨 논문 복사해서 길게 댓글 달아 봐야 본인 요약능력 부족하다는 사실을 광고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그 책 읽었다고 자랑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대한민국은 자체적인 헌법과 법률을 가진 나라예요. 헌법 10조가 보장하는 행복추구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 그로부터 파생되는 (남성과 여성 모두 포괄하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성적 행복추구권에 대해 이해하시고 자기가 복사하는 댓글이 그와 관련된 것인지부터 스스로 판단해 보시죠.  

 - 아닥하고 사라지는 분들은 뭐⋯⋯. 다른 논점에서 연탄까스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를 준비 하시겠죠. ‘스며들다’가 그 쪽 컨셉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페미니즘은 1) 스스로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밝히고 2) 그에 따라 내부적 모순을 정리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어디로 어떻게 스며드는지도 모르고 중구난방으로 앞뒤 안맞는 얘기만 쏟아내다가는 계속 까일 뿐이에요. 그러다가 관련 단체 보조금 줄어들면 어쩌시려고.


 아마도 그 과정을 거치면, 지금처럼 근본 없는 유교탈레반 결합형 남성 성문화 탄압 래디컬 페미니즘은 비주류로 떨려날 겁니다. 헌법적 가치에 위배되는 거 다 뽀록나거든요.


 한국 페미니즘이 스스로 정화하고 지향점을 명확히 해 주길 기대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죠. 중이 제 머리 못 깎듯이, 이미 보조금 처묵처묵하는 이익단체들이 저 극렬 뷔페미 전위부대를 자체적으로 공격할 리가 없죠. 보조금 자체를 날려 버리지 않는 한.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변화시켜야 합니다. ‘남성 중심의 양성평등 정치세력’이 필요한 이유죠.



(* 2021년에 이 글을 썼었는데,2024년에 다시 보니 뭐... 더더욱 퇴화해 버린 뷔페미니즘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태권도 아이얍! (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