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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우린 Mar 30. 2024

내가 언제 그랬어?


그 전에 언급한 적은 없지만, 우리 팀의 팀장은 내가 들어오고 반년이 지났을 즈음 나와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 사람은 바로 아빠 친구였는데 딱히 친하게 얘기한 적도 없고 연결고리라곤 아빠의 친구라는 것 밖에 없기에 그 분이 팀장직에 올랐을 때 별 생각이 없었다. 있다면 아빠 친구분이니까 나한테는 그래도 함부로 대하시진 않겠다. 하는 기대가 조금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아빠의 친구분은 다른 의미로 차별하는 법이 없었다.


때는 내가 팀장님께 학생 유치 관련 통계 보고자료를 올릴 때였다. 팀장은 자신의 신념이 강했던 사람이라 자기와 사상이나 의견이 맞지 않으면 불같은 성격을 보이는 면이 있었으나 나와는 그런 마찰이 있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언제 그랬어!?!”


호통 소리가 날아들어 왔다. 팀장은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억울함과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상황설명을 하자면 그랬다.

결제를 올린 통계 보고자료에 빠진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은 과거에 팀장이 나에게 빼라고 했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렸더니 팀장은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자기가 언제 빼라고 했냐고 되물었고, 나는 당황스러움에 분명 빼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하니 그때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화내시는 건 처음이라 순간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생각했지만 그 지시를 받았을 때 당시 상사분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서류의 빠진 부분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걸 증명하고 싶었지만 구두로 지시받은 거여서 딱히 증거도 없었고 화가 단단히 나서 흥분한 팀장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내 말이 맞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서류를 수정했고 팀장은 그런 나를 보며 계속 구시렁구시렁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거짓말에 휘둘리지 않으려 증거를 남기기 위해 녹음기 기능이 들어있는 볼펜을 구입했다는 팀장님의 말이 언뜻 생각났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일하는데 있어서는 그래도 믿을만한 분이겠다 싶었는데, 자신이 한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에 와장창 신뢰가 깨져버렸다.



억울해서 아빠에게 하소연이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괜히 나 때문에 아빠와 아빠 친구 관계가 틀어지는 게 싫기도 했고 회사에서 계속 아빠 친구의 얼굴을 봐야 하니 괜히 불편한 관계를 만들기 싫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다시 재계약하게 된다면 아빠 친구를 더 오래 봐야 하니까.







-


하나하나씩 관계에 대한 불편함이 쌓이고 어두운 진실을 알아갈 때마다 내가 과연 이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고, 어느덧 계약 서류를 재작성해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팀장이 나를 휴게실 쪽으로 조용히 불렀고 나는 그날 재계약을 제안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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