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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아 Jan 04. 2025

수상한 건망증

오늘도 잊으셨습니다.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7시 50분, 에구머니나. 벌떡 일어나 중딩딸을 깨웠다.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는 녀석이 날이 추위진 뒤로 일어나질 못한다, 6시에 알람을 맞춘다더니. 에미나 딸이나.   


 "얼른 일어나. 엄마 운동 가는 길에 태워줄게."

 정체성을 잃어버린, 화장 도구가 즐비한 둘째 따님의 책상 앞에 부탁하신 물과 귤을 까서 올려 드렸다. 수영 가방을 챙기고 후다닥 댄스옷을 입는다. 반짝이 댄스옷을 입고 나가면 너무 튀니까 패딩 안에 후드가디건도 입어준다. 신발은 수영장 락커를 고려해 삼색 슬리퍼를 신는다. 부츠는 일단 들고 나간다. 헐레벌떡 엘레베이터를 탔더니 옆집 초1 꼬맹이와 젊은 아빠도 함께 탄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새해부터 정신없는 꼴이라니. 차분한 척 인사하고 주차한 곳으로 서둘러 갔다. 오늘따라 2대가 내 차의 앞길막고 있다. 조금만 가면 주차할 공간이 있을텐데 꼭 이렇게 이중 주차를 한다니까. 


 씩씩한 중2 딸이 오른쪽에 있는 차를 밀어주고 탔다. 다시 보니 왼쪽으로 나가면 후문으로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다. 왼쪽 손과 팔이 시원찮다는 걸 잠시 고 왼쪽 차를 밀기 위해 급히 달려나가다가 슬리퍼와 주차장 바닥의 불균형한 마찰로 덜커덕 걸리는가 싶더니 슬라이딩하며 자빠지고 말았다. 하필 왼쪽으로 넘어져 더 아프다. 허나 지체하면 딸내미 지각이다. 벌떡 일어나 차를 밀었다. 밀리지 않는다. 사이드 브레이크가 잠겨있다. 욕 못하는 나  뱉을 뻔 했다. 결국 시간만 지체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나갔다.



 학교 앞에 아이를 내려주고 멀티센터 주차창에 차를 댔다. 얼른 올라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찝찝하다. 부츠가 안 보인다. 아까 엘레베이터 바닥에 세워 뒀는데 두고 내렸나봐.  시간을  엘레베이터에 타고 있을 내 까만 롱부츠를 상하안되겠다 싶어 다시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며 화면으로 안을 들여다 봤다. (지하랑 로비층에 엘레베이터 CCTV 스크린이 있다.) 부츠가 보이지 않는다.  아까 트렁크에 실었었나? 다시 차로. 트렁크를 열어보니 왜 그러냐는 듯 부츠가 나를 빼꼼히 쳐다본다. 에휴~

결국 수영은 30분이나 늦게 들어갔다.



출처 pixabay



운동을 끝내고 겨우 진정 모드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카페에 혼자 앉아 소금라떼로 마음을 달래며 오전시간 되감기를 해본다.



왜 이리 정신이 없을까?

일찍 일어났어야 했어.

알람이 안 울렸잖아?

확인 안 한  잘못이야.

어제 늦게 약을 먹어서 그렇지.

까먹는 건 약 안 먹을 때도 자주 그래.

그건 그래.




 


가스레인지에 뭘 올려 놓으면 태우먹기 일쑤다. 래서 항상 타이머를 맞춰 놓는다. 고백하지만 나의 건망증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신혼 때 주택 1층에 산 적이 있다. 빈집털이 좀도둑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결혼 예물 몇 가지를 어디에 숨겨둘까 고민하다 휴지에 돌돌 싸서 서랍장 구석에 잘 모셔 두었다. 이렇게 두면 귀금속인 줄 모르겠지 하고. 서너 달이 지났나? 서랍장을 열었다가 구석에 휴지가 있길래 이거 뭐야 하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다음 날 저녁 갑자기 감전되듯 푸르르 깜짝 놀라며 생각이 났다. 휴지에 사 둔 그거. 어쩌지? 미친 여자처럼 온 집안 쓰레기통을 다 뒤졌다. 간발의 차이로 수거 직전, 문 밖에 세워둔 종량제 쓰레기 봉투 안에서 겨우 찾아냈.






 최근에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날 때가 많다.

나 치매 전조 증상인가?

그나마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폰으로 전화하면서 폰 찾는 사람, 수영장에서 키 잃어버리고 찾는 사람(그녀의 소매를 걷어올리면 떡하니 차고 있다.)


 친구들이랑 모일라치면 건망증은 점점 스무고개 놀이로 진행된다.


"그 왜 있잖아? 한국 여자랑 결혼한 그 외국 남자?

나 영국에 있을 때 만났었다."

한국여자랑 결혼한 사람이 한 둘인가?

"그 30살  연하랑 결혼한..."

"우디 알렌?"

"아니?유명한 배우..."

"아 그래. 얼굴을 떠오르는데 이름이 생각 안 나네.  사람 이름에 콜 들어가는데."

"어...스콜?."

"스콜이 뭐~?"

한바탕 웃음이 터지고 네이버를 찾는다.

"니콜라스 케이지"

"맞아.맞아."

헤어진 후에 찾아보니 결혼한 여자는

한국 여자 아니고 일본 여자였다.



       <치매와 건망증 구별하는 기준>

1. 무언가에 대해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 힌트를 듣고 생각나면 건망증, 그래도 모르면 치매
2. 어떤 사건에 대해 일부만 잊으면 건망증, 전체를 기억하지 못하면 치매
3. 스스로 기억력이 저하되는 것을 인정하면 건망증,  그렇지 않으면 치매

            - <치매를 읽다> 디멘시아북스-


 일단 치매는 아니다. 그럼 스마트 기기 과의존?

즘은 20~30대도 '스마트 기기 과의존'으로 인한 치매 유사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이른바 디지털 치매 '영츠하이머((영(Young)+알츠하이머).


 영(YOUNG)이 들어가니 이것도 아니다.

일단은 건망증인 걸로.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니 조심해야 한다.



출처 pixabay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치매 위험을 절반으로 줄이는 7가지 간단한 습관"은 혈압관리, 콜레스테롤 조절, 혈당낮추기, 신체활동, 건강한 식단, 체중감량, 금연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확실히 잘 먹고 잘 자면 건망증이 덜하다. 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 추가하고 싶은 것은 스마트폰 사용 줄이기와 주변 정리하기다.



 물건을 잘 못 버리는 나. 집에 물건이 너무 많다. 철마다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는데도 물건이 줄지 않는다.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에서는 우리가 주변 물건들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빼앗긴다고 말한다. 이 옷 입을까 저 옷 입을까 늘상 고민하고 쌓아둔 물건들은 언제 나를 사용할거냐고 말을 건넨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주변 물건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수 천 장의 스마트폰 사진들에 뭐가 정말 중요한 사진인지 헷갈리고 쏟아지는 정보들에 압도 당한다.

그래서 점점 더 정신이 없어지고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 같다.

.

출처 pixabay


첫째, 건강하게 잘 먹기

둘째, 7시간 이상 자기(10시간 이상은 NO)

셋째, 매일 운동하기

넷째, 매일 2개 이상 버리기

다섯째, 스마트폰 사용 줄이기


해 1월. 

다시 다짐하고 도전해 본다.

결심하고 시작하기 가장 좋을 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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