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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설아
Dec 13. 2024
보고싶은 명자씨~
엄마가 그리운 계절에
이맘 때면 늘 몸이 아팠다.
계절 손님처럼 감기몸살이 찾아와서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고 무기력해지고 늘어졌다.
환절기라 그런가 보다 했다.
12월은 원래 추운 계절이니까
눈부신 태양도 차가운 공기를 데워주지 못하니까.
얼마 전 <소년의 봄>을 읽으며 무수한 죽음을 목격하다가
'죽음'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엄마의 장례식이 떠올랐다.
그
런데
엄마의 입관식이 기억나지 않는다
.
"자기야, 나 엄마
입관식
기억이 하나도 안
나
.
나 안
들어갔었나
?"
"그러게? 나 그때 뛰어다닌다고 기억이 잘 안나네."
정신없는 우리를 대신해
엄마가 착하다했던 최서방이
장례 절차에
필요한
일들을 다 처리하고
다녔으니
그럴 만하다.
"나 만삭이라고 들어오지 말라고 했나? 그래도 그렇지 딸이 엄마 입관식을 어떻게 안 들어가?
정
말
철
이 없어도 그렇게 없었나."
아무래도 이상해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엄마 입관식에 나 안 들어갔어?"
스피커폰으로 새언니가 대신 대답한다.
"아가씨 들어갔다. 내하고 같이 서 있었잖아."
"그지, 나 들어갔지? 아무리 만삭이래도 엄마 마지막 모습을 안 봤나 했어. 근데 어떻게 하나도 기억이 안 날까?"
너무 아프면 뇌에서 그냥 지워버리나 보다.
"나도 입관식 기억 하나도 안 난다."
"어? 오빠도 기억이 안
난다
면 그건 우리 집안 뇌의 문젠데?"
키득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은 불길하다.
엄마가 깨어나지 못하신다고 했다.
만삭인 배를 안고
훌쩍거리며 짐을 챙겼다.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서 동생이랑 김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눴다고
했는데
.
남편도 급하게 휴가를 내고 4시간을 달려 대구 파티마병원으로 갔다.
엄
마는 인공호흡기를 꽂고 누워계셨다.
그리고 3일 후 천국으로 가셨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마지막 인사도 없이.
대답이 없는 엄마를 부르며 큰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엄마 가시면서 다
보세요
. 너무 울면
힘들어 못
가세
요
."
목사님 말씀에
울다가
혼난
아이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내가 울면 우리 엄마가 힘들어
못
가신다
잖아.
어떻게 장례식을 치렀는지 모르겠다. 일가친척
몇 분을 제외하고는
누가
왔다 갔는지
기억이
희미
하다.
추모공원에
엄마를
두고 나오는 길에
주저앉아 울었던
나만
쓸쓸한 그림
한 장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 엄마
명자 씨를 보냈다.
엄마를 보내고
보름 후
새언니가 둘째 조카를 낳았고 한
달
반
후
나는
첫 딸을 낳았
다.
자식들 고생 안 시키려고 일찍 가셨나 보다 어른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위로하셨다.
서울로 올라와 낮이면 부른 배를 안고 멍하니 지내다가 밤이면 베개를 흠뻑 적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가 산간을 못해줘서 어떡하냐' 전화를 하곤 하셨다. 늦은 학원
강의를
마치고 늦잠을
자던 나는
이른 시간
전화가 오면 잠 덜 깬 목소리로
엄마 몸이나 신경 쓰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친구의 전화는
그리
살갑게
받았으면서.
임신 막달 검진을 갔더니
당과 단백뇨가 나왔다고
담당
의사가
조심하라고
했
다. 덜컥 겁이
났다.
그날부터 울음을 뚝 그쳤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그날처럼.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또 10년이 흘렀다.
처음 10년은 엄마가 돌아가신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꿈에서 자꾸 돌아가신 게 아니라고 했다.
큰 아이를 키우면서 불쑥불쑥
엄마 생각이 났고 잔잔하던 그리움이 한 번씩 폭풍처럼
휘몰아쳤
다.
지나가는 할머니들을 보다가 엄마가 즐겨 듣던
찬송을 듣다가 울컥울컥 눈물이 났다. 12월이 오면 몸살을 앓았던
게 신체화 증상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돌아가시고 울음을 삼키며 애도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해서 그렇다고 했다.
또 다른 10년이 흘렀다. 이제는 엄마가 내 옆에
살아계셨었나
자꾸 의심이 든
다. 엄마의 얼굴이 자꾸
희미해져
간다.
먼 훗날 천국에서 엄마를
다시 만날 때 너무 낯설면 어떡하지?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찍은
흑백
사진을 꺼내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20대 후반의 엄마가 6살 오빠 3살 나와 함께 있다. 우리 엄마 참 예쁘네.
우리의 뇌는 건조한
기억들을
먼저
버리고
추억은 끝
까지 간직하려고 한
다
.
-
'
김창옥쇼
'
에서 정신과 의사의 말
인용
-
상처에 의해서든
극한의
스트레스의 반복
에 의해서든
오래된
피곤함에 의해서든
그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부분이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과 비슷한 동네에 있어서 기억이 소실된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기억은 사라져도 뇌에서 추억은 끝까지 가져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주말 엄마 기일에 친정에 간다.
시국도 어수선한데
내려오지 말라던 아빠가 기차표를 끊었다고 하니
금세 목
소리가
밝아지신다.
어쩌면
나보다 엄마가 더
그리웠을 아빠는 어떻게
2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내
셨을까?
이번에 가
면
가족들과 낡은 앨범을 넘기며
엄마를
추억해야
겠다.
그것들을
글로 정리할 수 있을까?
우리
엄마
명자 씨를
글에서
만날
수 있을까? 엄마를 그릴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
모든 사진 출
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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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엄마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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