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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재 Mar 06. 2024

물 위의 집

캄보디아 풍토기 #05  :  물



톤레샵 호수 Tonle Sap Lake

물 위의 집, 캄퐁플럭 Kamong Phluck


우리에게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동남아시아에는 건기와 우기가 있다. 비가 오는 계절과 비가 오지 않는 계절. 동남아시아에서 음과 양의 가장 분명한 구분은 물과 땅이지 않. 바다를 삼면에 접한 우리나라보다도 어쩌면 물에 의지하는 마음이 클 것만 같다. 지금의 캄보디아에서는 건기에 물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았다. 1296년에 주달관이 쓴 진랍풍토기에 의하면 어디나 연못이 있어 남녀 모두 못에 들어가 몸을 식혔다고 되어 있다. 지금은 연못 대신 집집마다, 호텔마다 풀장이 있어서 한낮 더위를 식히려고 물 앞에 있거나 수영을 한다.  우리의 겨울 장작을 피워 불 앞에서 온기를 맞것이 낯선 일이 아니듯 더위를 식히려고 물과 함께하는 생활은 당연한 것이었다. 1월의 캄보디아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이 있었고, 한낮에 무척 뜨거웠다. 사람들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나면 한 숨자거나 쉬었다. 여행자들은 숙소의 풀장에서 수영을 하며 몸을 식혔다.  

 

아시아에서 최고로 크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을 가진 톤레샵호수 주변에 기대어 사는 삶은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위에 맞추어 환경과 조건에 적응한 기이한 방식으로 생을 잇고 있다.  캄보디아 전 국토의 15%를 차지하는 이 거대한 호수는 바다같이 넓어서 수자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호수에 기대어 사는 마을, 캄퐁플럭의 수상가옥은 바닥에서 족히 10미터는 띄워 나무 기둥 위에 집을 짓는다. 우기에는 거대한 톤레샵 호수의 수면이 아주 많이 오르는데, 빗물에 물의 양이 늘어난 메콩강이 역류하여  톤레삽으로 흘러들어 호수의 수면이 높아진다고 했다.  


건기의 캄퐁플럭 수중가옥. 비가 오면 수면이 올라 다리 부분이 다 잠긴다, 이런 집들은 아주 길게 늘어서 있다.




우기가 되면 호수의 수면이 오르며 받쳐놓은 나무다리들이 다 잠기도록 물이 찬다. 수면이 건기보다 9m 나 높아진다고 했다. 그 시기가 되면 사람들은 모두 배로 이동한다.  바닥에서 장사하던 배들도 부레와 함께 띄워져 수면 위로 오른다. 아이들의 학교는 비가오는 6개월 동안 방학을 한다. 그 시기의 아이들은 집 앞 가득 불어난 물에서 놀고 수영해서 이웃 집의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물의 세상에서 노는 시기이다.  속에 잠긴 집을 지탱하는 나무 맹그로나무 사용한다. 아주 단단하고 물속에서도 사는 나무여서 물에 줄곧 잠겨 있더라도 썩지 않는다.


건기의 캄퐁플록 마을은  수면이 낮아진다. 집을 받치고 있는 나무들이 앙상하게 드러나고 사다리로 내려가 땅을 딛게 된다. 이 시기에는 물 속에 잠겼던 땅이 드러난다. 그 땅에 농사가 이루어지며, 시장이 서고, 학교가 개학한다. 건기가 있는 6개월 동안 우기에 먹을 쌀과 야채, 농작물들을 재배하고 땅을 딛는 생활이 이루어지는 때이다. 관광객들도 마을로 들어가 땅을 밟아 볼 수 있다.  


오롯이 1년의 순환을 반으로 나누어 극한 대립으로 사는 삶에서는 우리가 음과 양으로 느끼는  철학적 이해와 사뭇 다른 가치일 것 같다. 이 곳에서 물과 땅은 온전히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조건이다. 생을 잇기에 바쁘고 삶을 꾸려가기에도 급급한 일 년의 주기는 그들에게 하늘이 내린 삶의 조건이 아닌가 싶었다. 그 삶은 사실 적응하기 쉽지 않아 보였고, 가난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워 보였다.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며 살아내고 있는 환경, 환경을 잇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그 생활을 이어가는 마음을 헤아릴 듯하면서도 한편으로 어려운 살림이 마음 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내면을 우리는 밖에서 평가할 수 없다. 주어진 조건을 기꺼이 마주하며 나름의 평화를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보는 하나의 잣대로 그들의 삶을 평가하고 동정할 수 없다. 시간이 길게 있었다면 이곳 사람들과도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톤레샵 호수의 캄퐁플럭 마을 학교. 건기에만  학교를 갈 수 있다.
건기에 학교가 개학한다. 6개월 방학이고  6개월은 학교에 간다. 이들의 주기는 물이 나눈다





수상마을 가이드 톰. 트립어드바이저를 통해 캄퐁플럭 방문을 신청했다.



수상마을 캄퐁플럭을 안내했던 가이드 톰은 근방에 있는 다른 수상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의 삶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그 어려운 삶에서 벗어나고자 가이드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했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 오는 관광객들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관광객을 이끌고 유창한 영어로 마을을 소개하는 톰의 목소리에는 강한 뱃힘이 느껴졌다. 맹그로숲에서 요트를 타고 돌아와 해가 질 무렵 망망한 톤레샵 호수 한가운데로 가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다보았다.  이것은 가두어 둔 바다였으며 이 거대한 호수의 크기가 그들이 품을 수 있는 세계의 크기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앙코르 사원이 거대하고 너른 땅 위의 섬과 같은 것도, 서쪽과 동쪽에 자리한 바라이(저수지)와 스라스랑이라는 (왕의 목욕탕이었던) 못의 크기가 거대한 것도 그들의 땅에 주어진 조건이자 자부심이자 자존감이었을 톤레샵 호수로부터 배운 그릇의 크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들에게 물이 가진 의미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거대한 의미일 수도 있겠다. 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바다같지만 호수이다. 톤레샵호수에서 떨어지는 낙조가 유명하다.  그러나 근사한 낙조를 볼 수 있는 날들이 따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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