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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재 Mar 01. 2024

붉은 땅

캄보디아 풍토기 #01  : 땅

 



이국


처음 마주한 프놈펜의 공기는 밤인데도 텁텁했다. 한 번도 맡아보지 않았던 냄새가 코 안으로 훅_ 들어왔다. 다른 땅의 냄새였다. 이국 땅에 왔다는 것을 느끼는 건 언제나 냄새로부터 시작했다.  그 영토를 규정하는 냄새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사람의 체취가 공기 중에 떠도는 것일까. 아직 명료하지 않은 새로운 이국의 냄새를 분별하여 기억하고 싶었다.


 도착비자는 공항을 나서기 전에  받았다. 줄을 서고 내 순서를 기다리는 일도 어쩐지 텁텁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툭툭과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섞인 혼잡스러운 길거리처럼 비자를 받는 줄도 온통 뒤 엉켜 닮아있다. 앞 뒤 없이 기다려 줄을 섰지만 물 흐르듯  빠져나가는 거리의 움직임처럼,  금세 내 이름을 불렀고 비자를 받았다. 땅의 질서와 인식이 우리의 것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한밤이었는데 길가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뜨거운 나라의 기운은 밤에도 느슨한 모습으로 있었다. 한겨울에서 단숨에 한여름으로 계절이 바뀌었다.  그들의 느슨함이 조금 낯설었던 것은 겨울 속에서 잔뜩 움츠렸던 마음이 담은 풍경이라 그랬을지 몰랐다. 내가 느낀 텁텁함은 미처 덜어내지 못한 겨울 옷의 무게였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1866년부터 수도가 된 프놈펜의 동쪽. 멀리 메콩강 너머로 해가 뜬다. 도시 재개발이 한창 진행하고 있다.



수도 프놈펜은  낮은 집들과 사원, 시장, 남아있는 프랑스풍의 건물, 새로 지은 아파트와 고층건물들이 중심과 외곽 할 것 없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골목대장이 곳곳에 세우고 싶은 건물을 불쑥불쑥 짓고 있는것 같다. 여행에서 만난 캄보디아 건축가 야린은 자본금을 가진 사람이 짓겠다고 하면 무조건 허가를 하고 있어서 법을 만들고 구획을 정돈하기에 프놈펜은 이미 늦었다고 탄식했다. 이 도시도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옛 건물을 한꺼번에 부수고 고층건물을 짓는 일들이 만연한 시대에 들어섰다. 40층이 넘는 고급 고층 호텔 옆에 오래된 시장이 공존하는 풍경들을  만난다. 사람들의 삶 빈부의 격차는 아주 크다고 느꼈다. 시장의 가격과 대형 몰의 가격은 같은 질의 물건도 차이가  컸는데 간혹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혼란이 생길 정도였다. 프놈펜도 세상 어디나 같은 모습을 지니기 위해 분투하는 도시 같았다. 낮은 건물, 오래된 집을 부수고 높고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이루려는 욕망이 곳곳에서 보였다. 프놈펜의 높은 건물에서 일하는 호텔 직원들의 표정은 경직되고 어두웠다.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일수록 얼굴빛이 밝았고 씨엠립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이처럼 맑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마주하면 이미 익명이 된 그들을 향한 마음이 참 각별해진다,



수도인 프놈펜에서 앙코르 사원이 있는 씨엠립으로 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가거나 비행기로 갈 수 있다.  버스로 가면 7시간 정도가 걸린다. 일반적으로 나이트 버스를 타고 가면 잠을 자면서 갈 수 있으니 유용한 점이 있다. 나는 낮 버스를 탔다. 낮에 이동하면서 바깥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미니 버스가 사실 편안하지 않았다. 가는 길이 고르지 못해 간혹 머리가 버스의 천정에 닿기도 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땅은 산이나 언덕 없이 평평하게 이어졌다. 아주 간혹 볼록 솟은 뾰루지 같은 산이 하나 덩그러니 있을  뿐 끝없는 지평선이 계속되었다. 농작물이 있거나 숲을 지났다. 건조해 보이는 땅들이 많아  비가 오지 않는 건기인 것이 실감 났다.  우리나라에서 잘 볼 수 없는 물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풀을 뜯고 있는 장면이 자주 스쳐갔다.  길 가로 다리를 높이 세운 집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비가 많은 우기에는 집을 받쳐 둔 나무다리 사이로 비가 빠져나가며  비에 젖은 나무집이 빨리 마르게 하고, 건기에는  바닥에서 띄워져 있어 시원하게 만든 집의 구조인 것 같았다. 기후에 적응한 집의 구조이다. 프놈펜 시내에서는 잘 볼 수 없었지만 외곽으로 나가자마자 대부분의 가옥이 그런 형태를 갖고 있었다.









붉은 톤레샵호수에 자리한 캄퐁플럭의 수상가옥이다. 건기의 모습이며 우기에는 다리가 모두 잠길 만큼 수면이 올라간다.






앙코르 사원 중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반띠아이 스레이. 붉은 사암으로 지어져 다른 앙코르 사원의 건물과 달리 붉다.




캄보디아의 땅은 붉었다.

작고 붉은 고추와 코코넛 크림을 한데 섞은 것 같은, 낯설지만 또 익숙한 붉은색. 그래서 붉은 땅을 만나면 묘한 향신료들의 냄새가 겹쳐 떠올랐다.  붉은 땅은 곱게 절구로 다진듯 부드러운 붉은 흙이 쌓여있다. 도심이나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이나 거대한 호수, 혹은 정글 안에서 코끼리들이 더위를 식히는 강물도 언제나 뿌옇게 흐린 흙탕물이었는데 그것은 땅이나 강과 호수의 바닥이 고운 붉은 흙모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캄보디아 사람들이 먹을 민물고기를 얻는 거대한 톤레샵 호수 흙바닥이 그랬고,  베트남 국경 근처의 몬둘키리의 정글에서 코끼리와 함께 수영을 하며 내 발이 닿았던 강바닥의 촉감이 그러했다. 한적한 길을 오토바이나 툭툭을 타고 달리면 붉은 흙먼지가 날렸다. 나는 어쩐지 그 먼지를 뚫고 지날 때 기분이 좋았다. 이제 한국의 땅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아스팔트 없는 진짜 흙 땅. 붉은 흙먼지 가운데를 지나는 것은 강렬히 이국적인 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붉은 땅은 해가 뜨고 지며 더 붉었고, 무성한 초록의 숲들과 대비를 이루면서 더 붉게 느껴졌다.  

그 땅 너머로, 혹은 끝없이 펼쳐진 정글을 건너 저무는 해의 풍경은 어디서 보아도 아련한 것이었다. 모든 해넘이는 어떤 물음을 품고 있다. 그 대답 또한 세상의 빛을 거두어 가는 그 장면 속에 함께 있다. 프놈바켕 위에서 해가 까마득히 정글너머로 사라져 가는 장면을 마주하면서 제주의 해넘이가 눈 안에 겹쳐졌다. 제주에서는 물 건너 해가 기울었고 앙코르에서는 야자수 정글 너머로 태양이 사라진다. 앙코르 사원 안에서도 높은 곳에 자리한 프놈바켕에서 하늘이 시원하게 열려있다. 제주에서도 그랬지. 저 멀리 산방산과 한라가 지켜보는  너른 하늘을 펼쳐두고 찰랑대는 바다 그 뒤로 하루가 지나갔지. 갑자기 어디서 왔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존재하게  했던 빛이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사원의 언덕에서 정글 너머로 해가 퇴장하는 장면을 앞에 두고 있다. 서로 알지 못했으나 함께 같은 순간을 누렸으므로 어쩐지 친근한 듯 곁을 스친다. 해가 사라지고 동시에 달은 건너에서 차 올랐다. 프놈바켕에서 해를 보내고 돌아서자 다음의 무대를 이야기하듯 달이 뜨고 있다.  이러한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낮의 퇴장과 밤의 등장은  오롯이 신이 주관하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슴이 서늘하고 눈가가 뜨거워지는 위대한 장면은 이렇게 매일매일 그 어느 곳에서든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프놈바켕에서 보던 해넘이. 많은 사람들이 앙코르 프놈바켕사원 위에서 해가 지기를 함께 기다렸다. 모든 해돋이와 해넘이는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통찰하는 가장 분명한 신호이다.



몬둘키리 주의 마을길. 흙길이다. 먼지가 많이 일면 물을 뿌리기도 한다.




모국


생각해 보면 우리 땅에서도 붉은 흙을 만날 때가 많다. 특히 전라남도 해남이나 강진을 지날 때 붉은 땅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색표를 찾아보면 확색 雘色이라 부르는 색이름이 '질 좋은 적황색을 띤 찰흙'의 색을 말한다 하니 붉은 땅이 하나의 색감으로 각인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했던 일이었다. 다만 이제 우리의 길은 대부분 아스팔트가 깔려있고 산에도 많은 곳이 데크계단으로 채워져 있으니 흙먼지 일어나는 땅을 거의 마주 할 수 없다. 긴 시간동안 우리는 (국가는)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많은 '변화'들을 가져왔다. 시간이 지나고 강산이 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였으므로 우리가 기억하는 땅의 색도 전생의 일처럼 까마득히 잊혀가고 있는 것 같다. 할머니가 떠나고 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길조차 사라져간 서운함이, 밤하늘에 수많았던 별들이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움처럼 가슴에 고여있다. 이것은 고향에 관한 것이고 때론 이국땅에서 그 고향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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