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재 Mar 03. 2024

지금이라는 영원

  캄보디아 풍토기 #02 : 집




앙코르 사원 1




청춘의 시절이 유럽에 있었던 탓에 동남아시아를 만날 일이 없었다. 그 땅에 대해 무지 했다. 그러나 만나지 않고도 그리움처럼 마음에 담아 두었던 곳이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고 싶었던 앙코르 와트였다. 20년 전 즈음, 프랑스 파리의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에서  '크메르의 미소'라고도 불리는 자야바르만 7세의 석상 앞에 하염없이 서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낯선 사람의 얼굴 앞에서 무한히 평온한 고요를 느꼈다. 모든 관심은 군더더기 없이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두상 하나에서부터 시작했다. 그 석상이 처음 있었던 곳, 석상이 있던 생태계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관심은 캄보디아가 아니라 앙코르 사원이었다.  캄보디아와 앙코르와트는 별개의 것이었고, 오직 앙코르 와트를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했으니 이것은 굉장한 오만이고 무지였다는 것을 씨엠립의 보통 사람들을 만나고서 알았다. 거리나 상점, 호텔직원이나 어린아이들의 얼굴에서 자야바르만 7세의 석조와 같은 평온한 미소를 마주했을 때, 그때 알았다. 저 얼굴은 신의 얼굴이자 왕의 얼굴이며 캄보디아 사람들의 거울과 같은 집인 것을.


혼자 하는 여행은 익숙하지만 동남아시아로 떠나는 길은 막연히 두려움이 앞섰다. 상상할 수 없는  환경과 기후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쩐지 아직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사람과 혼인하러 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패키지나 여행상품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혼자, 그곳에, 그 사원을 마주하고 싶었다.


 '프랑스 파리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파리 기메 동양 박물관의 자야바르만 7세 조각상'





앙코르 톰의 남문. 처음 만나는 출입구. 조선시대의 남대문과 같은 관문이다.





씨엠립 시내에서 앙코르 사원에 닿는 길은 생각만큼 가까운 길이 아니었다. 지도를 보고 자전거를 빌려 슬쩍 보고 올 마음으로 출발한 길은 아득하여 끝을 알 수 없었다. 첫 길은 언제나 그렇다. 검표하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앉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전거로 유유히 지나는 나를 세웠다. 미리 사 두어야 하는 사원의 입장권은 검표원이 펀치로 구멍을 뚫어서 입장 수를 헤아렸다. 나는 산책하듯 느긋하게 둘러볼 마음으로 7일 권을 샀다.* 자전거의 속도로 달리는 큰 나무 길은 아주 더운 날씨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길에서는 땅 주인같이 당당한 원숭이들이 느긋하게 길을 고,  처음 듣는 새들의 소리가  페달의 속도에 맞춰 오고 갔다. 자전거는 이미 다른 시공간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나무 숲길의 끝에 거무스름한 돌로 만든 대문이 점점 가까워졌다. 오래되어 무뎌지고 있는 장식, 사면 새겨진 거대한 얼굴, 좁고 높은 입구눈앞에 선명하게 들어오자   입 안에 탄식이 고였다. 거대한 나가 뱀의 몸뚱이를 잡고 양쪽에서 줄다리기하는 선하고 악한 신들의 행렬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 평온히 웃음 짓는 거대한 얼굴 대문사이의 좁은 입구를 지나는 기분이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놀라운 일 같아 가슴이 뛰었다. 쉽게 그 문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신들이 늘어선  다리의 양쪽으로 사원을 둘러싼 물길,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신계와 지상계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생각들은 우리 궁궐을 둘러싼  금천 (궁궐의 첫 대문을 지나면 궁을 둘러싼 금천이 있다. 왕이 사는 곳과 바깥 공간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물로 정돈하고 건너라는 의미도 담겨있다.)을 것과 같은 생각은 아닌가 싶었다. 우리의 궁궐이나 왕릉을 둘러싼 금천이 좁고 낮은 물길이라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면  앙코르사원들에 둘러 쌓인 물길은 폭이 넓고 수심도 적절해서 배로 건너기에는 노가 바닥에 닿고 걸어 들어오기에는 수심이 깊 하니 사원을 보호하는 의미로도 해자의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사방으로 난 문들을 지나면 다시 거대한 숲길을 따라 길고 곧은 길이 있고 그 길 끝에 정교하게 돌을 쌓아 올린 후 사면에 셀 수 없이 많은 얼굴 조각한  바이욘 사원이 오후 햇살을 받고 있다. 여기 앙코르 톰이라 불리는 자야바르만 7세가 지은 거대한 사원도시이다. 그 중심에 바이욘이 있다.


앙코르 톰의 바이욘. 수많은 얼굴들. 신의 얼굴이자 왕의 얼굴이며 실은 모두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앙코르 톰은 조선시대 한양도성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동서남북으로 사대문이 있고(앙코르는 동쪽으로 난 승리의 문이 하나 더 있다.) 우리의 궁궐이 세 개의 문을 거쳐 근정전에 닿듯 각 사원도 여러 덧문인 고푸라를 거쳐 내부로 닿는다. 우리의 성곽은 산의 형상 위를 따라 지어진 산성이지만 앙코르 톰의 성곽은 반듯반듯한 직사각형의 형태를 고 있다. 산이 없  평지였으니 그 땅과 터에 맞는 반듯한 구조물이 세워졌다.  현장에서 우리의 옛 궁궐, 도심을 이루는 세계관에 관해 비슷한 점들을 발견하고 돌아와 여러 앙코르 사원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다.   바이욘사원의 일본정부지원 복원현장에서 인턴 생활을 하셨다는 박동희 님이 쓰신 책  <앙코르이야기>** 에서 한양도성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언급과 시선을 담은 글을 발견했다. 놀라고, 반갑고, 고마왔다.


힌두의 우주관을 담은 형식들이 유교적 개념구조를 실현한 조선의 궁궐이나 도성의 배치 형태가 닮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땅과 사람과 태초에 관한 생각은 하나였고 각기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우주관도 하나의 마음과 근본에서 출발하였으니 근본에 바탕을 둔  생각을 상징적으로 땅에 실현하는 형태도 닮은 채로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것이 아닐까.

 

바이욘과 바푸욘 사원 주변을 천천히 거닐었다.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화려하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을 모신 집, 아직 다 짜 맞추어지지 못한 돌들이 곳곳에 굴러다니는 사원 내부에 앉아보았다. 나는 기다리는 대상 없이 기다렸고,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흐르고 빛의 색과 네 면에 조각된 얼굴의 그림자기 바뀌었다. 사람들은 우르르 들어왔다가 다시 우르르 사라졌고 자주 사원의 내부에 혼자 앉아있는 시간이 생겼다. 바이욘의 내부가 고요해지면 돌벽의 뚫린 하늘 제비 같은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지나갔다.  뜨거운 온기는 돌벽과 기둥만 남은 사원에서 사그라들어 냉랭한 공기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다 지나가면 그제야 벽면에 새겨진 많은 조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앙코르의 역사와 힌두의 신화들 그 시대 크메르 사람 모습으로 새겨두었다. 조각들은 정교했다. 조각들이 무슨 내용을 품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이 사원을 돌아보는 목적처럼 중요한 일 일 수 있겠지만  모든 종교의 신화나 경전의 내용들이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면 나는 이 사원과 이 땅의 풍경 속에 펼쳐진 모습으로 신화와 경전의 의미들을 발견하고 싶었다. 지금 이 공기를, 시공간을 넘어선 교감을, 위대한 인류의 선명한 흔적들을  오롯이 느끼기로 했다.


바이욘.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한 돌덩이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그러나 자리 찾지 못한 채로 오늘의 사원이 이미 된 것이다. 지금의 모습으로  영원을 이루고 있다.



바이욘 사원에서 밖으로 빠져나오자 태양이 기울어 더욱 붉어졌다. 수많은 원숭이들이 낙원인 듯 노닐었다. 원숭이들의 크기는 대체로 작았다. 배에 새끼 달고 다니는 원숭이도 많았다.  어디선가 돼지 한 마리가 바이욘사원 입구의 물구덩이에서 킁킁 무언가를 찾고 있다. 이토록 가치로운 유적은 그다지 엄격하게 보호되거나 규제되지 않았다. 캄보디아 어디든  볼 수 있는, 억압받지 않는 동물들처럼 유적도, 신도 자유로웠다. 느슨하게 자리를 지키는 앙코르 사원의 검표원이 입장권 검사를 철저히 하면서 슬쩍 띄우는 미소까지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간 속에 있다고 느껴졌다. 이것은 평안 같기도, 설레는 감정 같기도, 사랑받는 마음 같기도 했다. 신도, 사원도 원숭이와 돼지도 사랑받고 있다. 나도 이 모든 것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처럼 모든 마음을 열렸고  바이욘의 사면상에 새겨진 미소가 계속 입가에 머물렀다.  기메 박물관에서 본 크메르의 미소였다.



타프롬. 나무와 건물이 하나가 되어 또 다른 의미의 생을 살아가고 있다.


사원들은 이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저물어간 사적이었지만 고대의 시간으로만 남겨져 있지 않았다. 신들의 집은 어디선가 뿌리내린 나무들로 뒤덮여 있다. 찰나의 눈길을 건네고 떠나는 관광객과는 달리 씨앗이라는 생명으로 떨구어진 터를 집으로 결정하고 사는 생명이란 살아남거나 사라지는 운명사이의 긴 줄다리기 같은 연속적 행위인 것이다. 수백 년의 침묵 속에서 생명을 이어 온 한그루 나무는 신의 집을 부둥켜안고 또 다른 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타프롬의 집들은 그야말로 살아 숨을 쉬는 신체를 가진 집이다. 그 사원은 집도 나무도 아닌 또 다른 생명으로 살아있다. 시대와 함께 집은 죽었으나 온전히 자신을 허물고 다른 의미로의 생을 살고 있는 집.   또 다른 방식으로의 불멸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앙코르 사원에는 나가 뱀의 몸뚱이 같은 긴 시간 위로 나무가 자라고 그 숲 속에 살던 동물들이 터를 두고 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앙코르 사원에 입장료나 규제 없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사원  옆에 집을 둔사람,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고 쉬러 오거나 데이트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동수단인 툭툭과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많은 현지인, 유적 가이드를 하거나 관리하는 사람들이 사원에 기대어 산다. 사원은 지금 이 모습으로 다시 살 있다.  화려한 그 시대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오랜 줄다리기 끝에 불멸을 얻은 신화 속 이야기처럼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새끼를 배에 달고 다니는 원숭이 떼와 오토바이_툭툭, 거대한 나무들과 열대과일을 파는 어린아이, 짜맞추어지지 못한 옛 사원의 살점같은 돌덩이들 노란 셔츠 입은 가이드들이 이 사원에서 뒤섞여 공생하며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한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박제되어 잘 정돈된 유적지를 보는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감동적인 웅변같았다.










* 앙코르사원의 입장권은 1일권, 3일권, 7일권이 있다. 일반적으로 3일권을 이용한다. 씨엡립 시내에서 사원을 오고 가기가 사실 편안하지 않고 가이드와 함께 다니는 분들은 3일정도가 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천히 오고가며 사원을 걸어보기를, 인류의 위대한 손길을 천천히 누려보기를 추천한다.    


**앙코르 사원을 가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책 : <앙코르이야기> 2022, 미진사, 저자 박동희  

     책 보러 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붉은 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