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언제나 세계 각국의 전통 춤들을 접하면 그 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상상해 보았다. 춤추는 무희를 보며 각 나라 사람들의 감정이나 환경을 떠올려 보기도 했고, 그 춤이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왔을까 상상하면 그들이 마음에 담은 것들이 무엇인지, 몸으로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있기도 했다.
우리의 춤은 호흡을 담고 있다. 한 고개 한 고개 넘실넘실, 산을 넘는 것 같은 호흡이 장단에 얹혀 있다. 한을 풀기도 하고 기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늘과 직접 접신하는 무당춤이 보편적으로 우리가 배우는 춤들이 아니듯 무속의 역할은 특정한 사람에게 맡겨지거나 내림되어 그들의 독자적인 무대를 갖는다. 캄보디아의 춤은 춤 그 자체보다 앙코르 사원의 부조 조각으로부터 먼저 마주했다. 장식이 아니라 신화를 군더더기 없이 만들어낸 부조들로부터 그들의 춤이 가진 경건함과 무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압사라 댄스는 유희를 위한 춤이라기보다는 그 존재 자체가 신과의 교감이었고, 제사였으며 축복이자 기원이었으니 앙코르사원의 건축물이 신을 향한 시간적인 개념을 공간적으로 건설해 놓은 것이라면, 압사라는 그 공간에 시간과 운율을 입힌 부조이며 동시에 춤으로 살아남아 오늘에 잇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압사라 무희들의 얼굴은 정교하게 다듬는다. 가면처럼 보이는 짙은 분장 위에 화려한 장식을 한 모자를 썼다. 앙코르 왕조가 살아 있던 시기의 사원 복원도들을 살펴보면 금으로 치장한 지붕의 장식을 볼 수 있는데, 압사라 무희들의 머리 장식은 그 지붕장식들과 닮아 있다. (그 지붕은 힌두의 상징적인 산인 메루산의 형상이라고 했는데 어쩐지 내 눈엔 메루산이 열대 과일의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희들은 무릎을 굽히고 등을 아치형으로 세운다. 보석으로 장식한 발찌를 찬 발로 땅을 딛고 느린 움직임을 그려낸다. 미묘한 손의 동작으로 수많은 의미들을 만들어내며 사원의 벽면에서 새겨진, 어느 것 하나 같지 않은 압사라들을 무대 위에서 보는 것 같았다.
9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앙코르의 사원들이 지어졌다. 앙코르 시대의 크메르 왕들은 그들의 종교적인 힘과 믿음을 장엄한 석조로 구현해 내는데 춤이 꼭 필요했다. 춤은 신들의 축제이며, 신성한 의식이다. 신화 속에서는 물 위(apsu)에서 태어났다(sara)'는 뜻으로 압사라(apsara)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지상과 천상의 연결고리 같은 역할을 하며 사원에서 중요한 행사들이 있을 때마다 하늘과 연결하는 매개로서 압사라가 존재했다. 장례나 대관식과 같은 국가행사에서 하늘에 제를 지내는 일에 언제나 압사라 춤이 제물처럼 올려졌다 했다. 비가 많이 오는 열대의 나라에서도 기우제를 올렸다. 수확을 좌우하는 건기와 우기를 가진 몬순기후는 크메르인들의 삶에 중요했다. 비가 너무 일찍 오거나 너무 늦게 올 수 있으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필요했다. 건기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던 1월을 지내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이다. 오늘날과 달리 삶 자체가 온전히 신성한 의미를 가지던 시대의 춤, 압사라는 유희로서 누리는 춤이 아니라 몸짓하나 움직임하나에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고, 제사에서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의식이자 정성스런 태도였던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우리의 삶이 온전히 하나의 기호와 상징처럼 절제되고 명확한 것을 향해있었다는 사실들을 깨닫게 될 때 지금 우리의 삶이 참으로 소모적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무엇을 기원하며 살고 있느냐고 다시 묻게 된다. 그 시대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모든 태양과 비와 이 땅에 누리는 모든 것이 신이 주관하는 것이라고 믿는 삶, 하여 주어지는 그대로에 감사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시대에서의 생의 의미는 참으로 숭고했을 것이라고 느껴진다. 그 감사의 마음을 춤을 통해 하늘에 기원하는 통로가 압사라 춤이다.
춤추는 압사라의 손은 야자수의 잎새를 닮았다. 겉은 단단하고 속에는 물이 꽉 찬, 생명수 같은 코코넛과 야자수의 잎새는 묘하게 여성적이고 섬세하며 느리게 춤추는 압사라를 닮았다. 어디서나 만나는 압사라 여성 조각들은 우아함이 깃들고도 생생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순수해 보이지만 약간 몸을 비틀고 있는 당당함. 길거리에서 코코넛의 한 부분을 깨서 빨대로 그 안에 있는 과즙을 들이킬 때마다 진지하게 압사라 여성조각들의 풍만한 가슴이 떠올랐다. 그 직관적인 인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건강한 생명력이라 느껴졌다. 노골적이면서도 당연한 것을 주장하는 석상들이 가장 여성스러운 것들을 당당하고 매력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 시대는 여성이 여성적인 것을 오해하고 있고 여성적인 것을 감추려 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압사라의 석상들은 매력 있고 당당한 여성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것이 가장 자신다운 것.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을 나오며 박물관에 짐을 맡아주는 젊은 여성들에게 혹시 캄보디아 여성들에게 압사라가 숭배나 혹은 닮고 싶은 대상 같은 의미가 있는가 물었다. 신은 아니므로 숭배는 아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나 닮고 싶은 여성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은 맞다고 했다. 역시나 그랬다. 가늘고 긴 허리를 가진 그녀들은 이미 압사라 조각을 닮아 있었다.
사원에는 많은 여신상들이 조각되어있다. 정교하며 장식적이고 우아하다.
프랑스의 한 대형 공연장에서 한국의 <굿>을 공연으로 본 적이 있다. 무대에서 어떤 특별한 명분 없이 벌린 굿을 보고 나는 껍데기를 보는 것 같아 실망이 컸다. 얌전히 의자에 앉아 관람하는 쇼로 전락해 버린 굿은 그 생명력과 아우라를 가질 수가 없다. 캄보디아의 한식당에서 압사라 춤을 보았다. 코스로 나오는 음식을 먹으며 캄보디아의 여러 전통춤의 마지막 순서에 압사라 댄스가 펼쳐졌다. 전통악기의 소리와 잘 연마된 무희들은 무대 위에서 우아한 몸짓으로 야자수 나무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거기에 감동은 없었다. 이 춤이 있어야 할 의미와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인가. 기교는 있었으나 영혼이 거기 있지 않았다. 이미 시대가 달라졌고 제사 같은 춤이 펼쳐질 수는 없지만 나는 너무나도 실망스럽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 공연이 끝나자마자 조용히 자리를떴다. 차라리 앙코르사원에 늘어선 부조들을 통해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씨엠립의 요리선생님은 캄보디아에서 가늘고 끝이 뾰족하여 예쁘게 휘어진 붉은 고추를 '여인의 손' (Lady's finger ) 이라고 부른다 했다. 모든 춤사위들은 환경과 풍경을 담고 있다. 우리 춤사위도 굽실굽실 넘나드는 산들의 중첩을 닮았고, 하와이 춤인 '훌라'는 행위자체가 자연을 그려내는 일종의 수화라 했다. 그 풍경들과 몸짓의 관계들이 더욱 선명 해진다. 압사라 춤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추는 춤이다. 이 땅에 주어진 조화로움과 풍요로움에 대한 감사를 가장 예술적인 방식으로 하늘에 제사 지내는 축제인 것이다.
씨엠립의 한 서점에서 발견한 책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지만 앙코르 사원에서 추는 춤을 상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