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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미 Jan 08. 2024

깨진 계란 효과

계란처럼 깨지기 쉬운 감정에 대한 기록


퇴근하고 돌아온 문 앞엔 오늘도 어김없이 택배 박스가 놓여있다.

바로 어제 산 계란이 벌써 집 앞에 도착한 거다.

설레는 마음으로 언박싱을 했는데 20알의 계란 중 2알이 깨져서 계란판에 계란노른자가 흘러서 알알이 젖어있었다.


 포장박스 뜯을 때부터 스티로폼이 날리고 또 스티로폼에 붙인 스카치테이프를 커터칼로 가르는데도 자꾸 어긋나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는데 스티로폼을 살짝 드는데 노란 계란물이 보이는 게 '깨졌구나. 괜히 샀다' 하는 마음이 쓸려오는 것이었다.


 며칠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당일 산란한 일등급 계란이라는 광고에 쇼핑몰로 들어가서 사용자 후기를 봤다. 계란노른자가 노오랗고 봉긋해서 신선함이 느껴진다는 상품에 대한 호의적인 댓글이 많았지만 또 한 편으론 포장이 허술해서인지 대부분 1~2개는 깨져서 속상했다는 내용도 있어서 살짝 고민됐지만 계란이 너무 신선해서 계속 구매예정이라는 글을 보고 얼마나 신선한지 계란 파손의 위험을 무릅쓰고 주문을 했다. 매번 속는 것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후기를 왜 이렇게 맹신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확인을 따져보기보단 우선 사람들의 그 말을 믿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리 없을 거라는 그 근거 없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후기도 안 좋은 후기보단 좋은 후기 위주로 찾아보는 것도 그저 이건 좋을 거라는 결정을 내려놓고 거기에 맞는 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거봐 이 사람들도 이렇게 좋게 생각하잖아.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내 생각에 대한 타인의 판단을 더해서 나의 안목이 옳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것일까?


 어쨌건 나는 이 일등급 계란을 사고 싶었던 것이고 거기에 맞는 후기들을 믿고 결국엔 주문을 한 것이다. 그런데 깨진 계란과 그 계란에서 흘러나온 계란물이 흥건한 계란 판을 보고 있자니 깨진 것도 화가 나지만 이 계란들을 언제 다 닦으며 또 계란 비린내는 어쩔 것인가와 안 그래도 퇴근 후 피곤한데 이런 잡일을 또 해야 한다는 생각에 후기를 믿고 구매한 내 판단에 대한 후회와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아닌 남편이 구매해서 이런 사달이 났다면 온갖 욕을 다 해댔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샀으니 누구에게 화를 낼 수도 없거니와 빨리 이 사태를 빨리 깔끔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불편해서 못있을 것 같았다. 퇴근해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빨리 계란사태를 처리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면서 티격태격 싸우는 형제들이 눈과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훈이, 너 왜 아침에 과외선생님 오시면 드리라고 싸논 샌드위치 안 드렸어?"

   "아, 깜박했어요...."

   "넌 맨날 깜박하지? 어떻게 매번 그러냐? 정신 못 차려? 정신상태가 그러니까 맨날 한소리를 듣지."

   "아.... 엄마는 갑자기 왜 짜증을 내는데?"

   "갑자기가 아니라 어떻게 너는 간식을 싸달라고 해서 싸주면 맨날  그대로 가져오곤 깜박했다고 하잖아. 엄마가 이상한 게 아니라 너의 그 성의 없는 태도가 짜증 나는 거야."

  "아 알았어. 짜증 내지 마"

  "이 샌드위치 네가 다 먹어. 지금 당장."

  "알았어. 먹으면 되잖아."

훈이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라도 맞은 얼굴로 툴툴대며 샌드위치를 가지고 가서 우유와 함께 우걱우걱 먹어대기 시작했다.

뒤미처 내가 너무 심하게 말을 했나 싶다가도 성의 없는 태도가 항상 마음에 안 들었기에 화낼만했다고 속으로 나를 대변해 본다.


 하지만 솔직히 이 모든 화는 깨진 계란에서 시작됐다. 그때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이 짜증 나는 마음을 어딘가에 해소를 해야 했는데 마침 아침에 싸놓은 샌드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신중하게 감정을 누르는 어른스러운 방법도 있는데 나는 빠르고 쉽게 감정을 해소해 버릴 수 있는 인스턴트 같은 방식으로 아들에게 화풀이를 해댔던 것이다. 그래서 항상 아이에게 화를 낸 후, 죄책감에 자책을 하게 되고 그러면 또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악순환의 반복이 되는 것이다.


 결국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긴 했지만 깨진 계란에 대한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왕 산 계란이고 남은 계란이라도 신선하고 맛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젠 아들 기분이 깨진 계란처럼 상해 버린 듯하다.

아들이 엄마는 맨날 나 못한 것만 눈에 보이느냐며 볼멘소리를 해대는 거다.

엄마는 왜 나만 보면 잔소리를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 같다며 얼굴에 불만 가득한 표정을 하곤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항상 요샌 아들과 평행선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항상 고칠 점과 마음에 안 드는 점을 이야기하고 아들은 나의 잔소리에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대답하고 서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것 같다. 다음엔 좀 더 아들의 이야기에 토 달지 말고 들어줘야지 마음을 먹지만 마음먹은 그때뿐 아들 앞에선 열린 마음은 어느새 닫힌 채 일방적인 잔소리만 늘어놓게 되는 거다.

정말 겉으로만 어른이지 말하는 모습은 중학생 아들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깨진 계란은 어쩌겠는가. 남은 계란이라도 신선할 때 맛있을 때 먹을 줄 아는 여유가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깨진 계란 생각하다가 남은 신선한 계란마저 상할 때까지 안 먹는 실수는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신선한 계란으로 바로 프라이를 해서 아들과 하나씩 맛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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