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미 Feb 05. 2024

캠핑 가는 날

  오랜만의 연차를 내고 캠핑을 떠난다.
이번 캠핑은 가평이다. 아니 이번 캠핑도 가평이다.
주로 주말을 이용해 캠핑을 다니다 보니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은 가평을 주로 가는 편이다. 캠핑 트레일러를 살 때는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등 전국을 다니자며 장만했는데 현실은 주말 교통체증과 길에서의 시간이 아까워 결국 근교인 가평, 양평 위주의 캠핑만 떠난다.

 다행히도 금요일 치고 차도 안 막히고 미세먼지도 보통이고 하늘도 적당히 파란 게 여행 가기 딱 좋은 날이다. 캠핑 가기 전까지는 먹을거리며 입을 거리며 주방도구에 양념까지 거의 한 살림을 챙겨야 하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가끔은 가재도구를 챙기다가 안 그래도 하루하루 쫓기듯이 사는데 굳이 주말까지 캠핑을 가기 위해 짐을 싸는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캠핑을 떠나는 차 안에선 이번 캠핑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딱이 할 것도 없는 캠핑인데 뭐가 그리 좋은 건지 모르겠다.
둘째는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진 지 오래고 첫째에게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어느새 대화는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로 넘어갔는지 질문에는 답이 없고 그냥 조용히 가고 싶다는 한 마디에 우리 부부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 역시 대화의 맥을 잘 끊는 첫째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한 시간 삼십 분을 달려 우리가 2박 3일 묵을 캠핑장에 도착이다. 캠핑장에 오면 가장 분주하고 바쁜이는 남편이다. 제일 많이 움직이고 부지런해진다. 캠핑장엔 남편이 없으면 대체로 돌아가질 않는다. 우선 가장 어려운 트레일러를 펼쳐서 여기저기 끼워 맞추는 조립을 해야 하고 트레일러 수납함 곳곳에 들어있는 집기들을 꺼내서 적당한 위치에 배치를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진두지휘를 남편이 하기에 그가 없으면 캠핑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래서 항상 남편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나서서 도와줄 수도 없다.  대신 그 땀에 투덜대거나 토라도 달면 흥분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그의 희생으로 캠핑을 즐길 수 있으니 어느 정도는 그의 기분을 맞춰주는 배려도 해야 한다고 본다. 그 또한 그걸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도 놀고만 있진 않는다. 먹고 즐길 먹거리 준비는 나의 몫이다. 나의 메뉴 선정에도 토를 달면 흥분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다들 조심하고 있는 바이다. 여러모로 신경에 거슬리지 않도록 노력이 필요한 가족이구나 싶다.

 이젠 아이들도 자라서 캠핑준비에 되도록 많은 참여를 하도록 유도를 하지만 조금만 방심하고 있으면 핸드폰 게임 삼매경에 빠지거나 투덜투덜 건성으로 돕기가 일쑤다. 썩 마음에 차진 않지만 참여를 했다는데 의미를 두려고 한다.

 캠핑장에서는 집에서 보다 움직임이 두 배는 더 많아진다. 우선 화장실을 가려면 신발 신고 적어도 오십 미터는 걸어가야 하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뭐 하나 빼먹고 오면 다시 또 돌아가서 가져와야 하기에 세면장이나 개수대에 가기 전에 두 번 걸음 하지 않도록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발걸음을 떼야한다. 아니면 이참에 다이어트한다 생각하고 무념무상으로 다닐 때도 있긴 하지만 겨울 캠핑일수록 머리를 잘 굴려야 한다. 게다가 평소 밖에선 볼일도 보기 힘든 타입인데 공용 화장실과 공용 샤워장의 불편함을 감내하고 가야 한다. 첫 캠핑에서 제일 힘든 점이 화장실과 샤워장이었는데 다니다 보니 이젠 그런 까칠함도 조금 무뎌지게 되었다. 하지만 세면대 거울에 새인지 나방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의 대왕 나방이라도 붙어있으면 그 화장실과는 친해지긴 글렀다. 다행히 이번 캠핑장은 그런 캠핑장에 비하면 호텔급 수준의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의 캠핑장이다. 화장실도 관리가 잘 되 깔끔하고 무엇보다 샤워장이 개인용으로 쓸 수 있고 게다가 드라이기까지 비치되어 있다. 더 놀라운 건 바닥이 온돌이라 춥지 않게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캠핑장도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진화가 된다는 게 반갑고 놀라울 따름이다.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굳이 힘들게 고생하는 캠핑을 왜 다니냐고. 나도 잘 모르겠다. 처음엔 귀찮고 다녀오면 몸도 힘들고 피곤하고 짜증 나고 그랬는데 어느샌가 잊을만하면 캠핑을 계획하고 떠나고 있다. 처음엔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 자연과 친해질 기회와 경험을 줄 목적으로 다녔는데 지금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가서 먹고 쉬고 움직이고 또 사방을 둘러봐도 자연뿐인 그곳이 편하고 좋다. 아침 먹고 조용히 거친 땅 냄새를 맡으며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산이며 하늘이며 나무들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거나 늦은 저녁 모닥불을 피워 놓고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불꽃춤에 넋을 놓고 있는 그 잠깐의 시간들을 위해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밖에서 먹는 고기와 라면은 매번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있다. 바람과 공기가 음식의 맛을 더 살리거니 아니면 몸속 태초의 유전자로 인해 자연과 어우러진 밥맛을 기억하는 것일까. 같은 라면도 밖에서 먹으면 더 맛있다. 캠핑장의 저녁은 어릴 적 동네골목에서 놀다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외침에 돌아가던 길에 집집마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던 연기며 음식냄새와 같은 아련함이 느껴진다.

 이번 캠핑장은 유명산 자연휴양림이 근방에 있어서 이튿날 아침 먹고 산책 겸 유명산에 들러보았다. 가는 길에 왠 낯선 고양이가 아는 사람 마중 오듯이 길 건너에서 통통통 뛰어오더니 반갑게 맞아주어서 괜히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눈이 내린 설산과 살얼음이 언 계곡물 밑으로 기세 좋게 흐르던 물살에 봄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산에는 아직 밟지 않은 뽀얀 눈밭이 있어서 복권이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신나서 하얀 눈밭에 도장 찍듯이 밟아보기도 하고 습기 가득한 눈을 꾹꾹 뭉쳐서 안 피하면 죽는다 라며 살벌한 눈싸움도 즐기다 내려왔다. 산 입구 초입에 백반기행 허영만 선생이 잔치국수 맛집이라고 인정한 현수막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가 잔치국수와 도토리묵, 감자전에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 돌아온 하루였다.

 세계는 개인의 경험치인 것처럼 캠핑을 다녀보지 못한 이는 그 세계를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캠핑은 분명 편한 여행과는 거리가 먼 여행이다. 여행이라기보다 고생길에 더 가까운 거 같기도 하다. 여행도 순탄했던 여행보단 힘든 여행이 기억에 남듯이 캠핑도 매번 다양한 힘듦이 있기에 우리 가족의 기억에 오래 남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 힘들지만 단칸방에 한 가족이 모여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기억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