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무개 Dec 26. 2023

여우비 (3)

여우비

   순옥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혼인을 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가난한 가정에 그녀가 해 간 혼수라고는 어머니가 짠 비단이불이 전부였다. 추운 겨울날 그녀의 옷가지가 든 짐보따리 하나와 목화솜을 넣어 만든 이불 한 채를 큰오빠의 등에 둘러메고 그의 뒤를 따라 푹푹 빠지는 눈길을 뚫고 이곳 무령군으로 시집을 왔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강 씨네 막내아들 ‘강춘묵’ 이름 세 자만 듣고 떠나온 길은 너무나도 춥고 두려웠다.

   눈발이 세차게 날리던 한겨울에 처음 만난 여섯 살 많은 신랑 강춘묵은 키가 훤칠했고 피부가 눈처럼 하얬다. 새신랑은 먼 길을 달려온 신부의 큰오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 살겠다고 약조했다. 그의 눈동자는 빛에 반사된 한낮의 고드름처럼 반짝였다. 홀어머니를 모시는 그의 집은 순옥의 집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녀는 이 남자를 잘 보필하며 그를 닮은 자식들을 여럿 낳아 번듯한 살림을 꾸릴 희망에 벅찼다.

   하지만 그는 얼마 안 가 본색을 드러냈다. 강춘묵은 알코올중독자였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술만 마셨다 하면 인사불성 하여 제 어머니도 못 알아보는 천치 같은 놈이었다. 술을 먹지 말라 잔소리하는 순옥에게 손찌검을 했고, 술병을 숨기면 기어코 찾아내 또 순옥을 때렸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며느리를 때릴 때마다 밖으로 나가 못 본 척을 했다. 혼자 떠나온 곳에서 어린 순옥이 기댈 곳은 없었다.



   “우리 아저씨 여자가 끊이질 않았어. 접싯물에 코 박고 죽었으면 싶다가도 저 냥반 없이 내가 새끼들을 어찌 키우나 싶어 밤새 소리 없이 울었지. 그 썩을 놈의 인간 내가 울고 있는 동안 다방 년이랑 뭘 했는지 알 게 뭐야. ”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순옥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주연은 남편의 외도를 알아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던 젊은 여인의 모습을 눈에 그렸다.

   “허구한 날 머리채 잡히고 걷어차이고 뺨따구를 얻어맞었지. 근데 그것도 서방이라고, 시퍼렇게 눈탱이밤탱이가 되었어도 해뜨기 전에 일어나 솥에 불 때서 뜨신 밥 맥였지. 그땐 다 그러고 사는 줄 알았으니께. 내가 이 양반 돌아가신 날 119 불러놓고는 생전 처음으로 뺨따구를 후려갈겼어. 에이 시부럴놈하면서 한 열 대는 때렸지. 근디 분이 하나도 안 풀리대. 미동이 없어서 그런가. 살아있을 때 한 대라도 갈겼으면 이렇게 분허지는 않을 텐데…”

   강춘묵은 60여 년을 술에 절어 살다 나이 여든에 간경화도 간암도 뭣도 아닌 그저 노화로 편히 자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가 떠난 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순옥은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울컥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숨겼다.


   순옥이 죽은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그의 집 마당에 여우비가 한차례 지나갔다. 맑게 갠 하늘에는 무지개가 선명했다.

   “자녀분들은 다 어디에 있어요?”

   주연은 대답을 기다리며 국수가락을 한 입 가득 넣고 와구와구 씹어 삼켰다.

   “애덜은 전부 장개 갔어. 아들만 여섯이여. 첫째부터 한식이, 한범이, 한만이, 한규, 한용이, 한태 다 애들 아부지가 지은 이름이여. 낳기는 내 배 아파 낳았는디 이름 한 번 내 멋대로 지은 적이 없어. “

   “전부 아들이요?”

   ”그려. 유산도 몇 번 했어. 둘째 한범이 녀석 태어나고 석 달도 안 돼서 또 애를 뱄어 내가. 배가 이만치 나왔을 적에 둘째 녀석 젖 먹이고 있는디 아랫배가 시방 찢어지게 아픈겨. 떼굴떼굴 구르다가 젖 물려논 새끼 떼어내고 아주 엉금엉금 기어서 뒷간으로 가는디 글씨 바짓가랑이가 뻘겋게 물드는 겨. 그때 내 나이가 스물둘이던가 셋이던가… 어머이! 어머이! 칠십 리 너머에 사는 어머이 부르면서 목놓아 울었다니께. 밭고랑 메다 점심하러 온 김씨네 성님이 마침 우리 집 앞을 지나다가 내 소리에 부리나케 뛰어들어온 겨. 성님 이걸 어찌해유 성님! 막 우니께 김씨네 성님이 뒤처리를 다 해주드라고… ”

   그날 순옥의 바깥양반 강춘묵이 아침댓바람부터 밥상을 엎고, 수유 중이던 그녀를 발로 차고 생난리를 쳐댔다. 순옥은 두 돌 된 첫째와 갓난쟁이 둘째를 품에 끌어안고 부엌으로 달려가 벌벌 떨었다. 그러고는 그 사달이 났다.


   “그 뒤로 염병할 인간, 애 뱄을 때는 밥상 엎고 때리는 건 안 하드라고. 지도 놀랬겄지… 근디 죽은 아가 기지바였을 거 같어. 아무래도 기지바 같어. 사내놈 여섯 낳아놓으니까 확실히 알겠더구먼. 태동이 하여간 달랐어. 내가 죽은 그 아가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퍼.”

   말라비틀어진 순옥의 눈가에 마른 눈물이 흘렀다.

   “죽은 아는 그 양반 몰래 내가 경애라 지었지. 경애야- 경애야- 내가 지은 이름 한 번 못 불러준 것이 한이네.”      

   “경애 뜻은 뭐예요? ”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주연이 물었다.

   ”뜻이 뭐 있어? 글도 잘 모르는 무식쟁이한테 무신 뜻을 물어. 기냥 예뻤어. 내가 알고 있는 젤로 예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 경애. “



   계속되는 더위에 넌더리가 날 때쯤 주연은 수박을 한 통 사들고 순옥의 집을 찾았다. 대문을 두드려 보고 당겨도 밀어도 봤지만 굳게 잠겨있었다. 수박을 대문간에 두고 갈까 싶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 순옥이 걱정되었다.

   순옥이 제 집처럼 드나드는 옆집의 김 씨 할머니는 보름 전에 서울에 있는 딸네 집에 갔고, 동네노인들이 매일같이 모이는 경로당은 이미 저녁식사를 끝낸 듯 불이 꺼져있었다.

   “어디 계신 거야…”

   주연은 지난번 강춘묵의 묘에 다녀왔던 순옥이 생각났다. 뒷산엘 가니 초입에서부터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주저주저하다 왼편으로 꺾어 부산한 걸음을 내디뎠다. 추석까지는 한 달 가까이 남았지만, 미리 벌초를 하러 온 사람들 덕에 다리에 차이는 풀이 없어 빨리 달릴 수 있었다.


   “순옥 씨! 순옥 씨!”

   강춘묵의 것으로 추정되는 묘 앞에서 순옥이 엎어져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이고… 나 좀 살려… 뱜에 물렸어…”

   주연은 순옥을 둘러업고 차가 있는 집까지 내달렸고 그녀를 뒷좌석에 눕혀 읍내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에서 다친 왼다리의 뱀독을 빼고 소독한 뒤 약을 타서 주연과 함께 돌아왔다.

   “뭐 때문에 또 거길 혼자 올라가셨어요? ”

   “인자 추석이 코앞이잖어. 벌초 잘 됐나 살펴보러 갔다가 그렸어.”

   ”핸드폰은 어디다 두시고요? “

   ”가끔씩 깜빡 혀. 손에 쥐고 나온 줄 알었는디 암만 찾아봐도 없드라고. “

   ”에휴…“

   ”연이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미안해서 어쩐댜…“

   “괜찮아요. 미안하면 빨리 나아서 말복에 못 먹은 삼계탕이나 해주세요. “

   “그려 알었어. 큰 놈으로 잡아다가 해야 겄구먼. 허허. ”

   지난 말복에 암탉 두 마리를 잡아다 삼계탕을 끓였지만 주연이 장염에 걸려 먹지를 못했다. 순옥은 푹 고운 삼계탕을 먹이지 못한 것에 내내 아쉬움을 표했다.

   “근데 아드님한테 전화 안 하세요? “

   ”됐어. 뭐 좋은 일이라고…“

   ”어머니가 다치셨는데 그래도 와봐야 될 거 아니에요? “

   ”에이- 됐어. “


   순옥은 계속되는 주연의 눈총에 가까스로 입을 뗐다.

   “그 염병할 인간이 새끼들도 그렇게 팼어. “

   그녀는 한숨을 푹 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큰 놈부터 살림 차리면서 지 아버지한티 하나 둘 발길을 끊드라고. 오죽했으면 그렸겄어. 다 큰 자식들한테 욕허고 문간에다 살림살이 죄 집어던지고. 부인 볼 면이 안 서지. 한 놈씩 고향에 안 내려오다가 그 양반 죽고부터는 명절마다 나 보러는 내려와. 근디 제 아버지 산소에는 일절 안 가.”

   “그럼 벌초는 누가 했는데요?”

   “우리 데련님(도련님). 애덜은 다 죽은 지 애비를 화장 하자는디, 그 양반 살아생전에 죽으면 어머니 옆에다 묻어달라고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었어. 나한테 해준 것은 없지만서도 묫자리는 해줘야겠다 싶더라고.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었어. 그래서 여름만 되면 데련님한테 벌초를 부탁혀. 어머니 것 하면서 형님 것도 해달라고. 근디 어떻게 빈 손으로 부탁혀. 애덜이 준 용돈으로 몰래 데련님 드리는 겨. 애덜 알면 난리 나..”



   세천시에 돌아가 주말을 보낸 주연은 순옥에게 줄 요량으로 목에 걸 수 있는 핸드폰 스트랩을 샀다. 그리고 월요일 출근길, 범산지점 지점장 남승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복귀명령이었다.

   “그… 고객은 어떻게 됐어요?”

   주연은 내심 두려웠다.

   “잘 해결 됐어. 걱정 말고 월요일부터 출근해요. “

   학수고대하던 일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계속해서 가라앉았다.

   퇴근 후 주연은 시내에서 산 핸드폰 스트랩을 가지고 순옥의 집으로 갔다. 마당에 들어서니 못 보던 개가 있다.

   “엊그제 장 섰잖여~”

   개에 시선을 둔 주연을 보고는 순옥이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지난 태풍에 누렁이 보내고 인자 더 이상 개새끼 키울 맘 없었는디 장에 가니께 야가 눈이 너무 슬픈겨. 다른 놈들은 다 지 좀 데려가라고 낑낑하면서 우는디 야는 나를 빤히 쳐다만 보더라니께. 나도 뭐 다 가고 적적하니 잘 데려왔지 뭐. 허허. “

   하얀 바탕에 듬성듬성 노란 털이 난 어린 강아지를 주연은 쪼그려 앉아 쓰다듬었다.

   “이렇게 어린데 묶어둬요? ”

   “그 노마 안 묶어놓으면 남으집 배추밭 다 헤집어놓고 우리 하우스 상추도 다 파놓을 겨. ”

   “그래도 아직 어린데 풀어두시지… ”

   “에이그 돼아써. 인자 시라구지짐 끓기 시작혔는디. 시라구 먹지? ”

   순옥이 작은 키로 까치발을 들고 들통 안의 내용물을 휘휘 저으며 물었다.

   “그게 뭐예요? ”

   “아이구 시라구 몰러? 무수 이파리 말린 거 말이여. ”

   “시래기요? ”

   “그려. 시래기.”

   멸치육수에 된장을 넣어 푹 끓인 시래기지짐은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순옥 씨, 강아지 이름은 지어줬어요? 예쁜 이름? “

   “개새끼한테 예쁜 이름은 뭔. 노라면 누렁이, 허여면 흰둥이, 검은 것은 깜둥이지. ”


   어린 강아지는 부엌에서 새어 나오는 음식냄새에 낑낑 소리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앉아! 흰둥이 앉아! “

   주연은 어린 강아지에게 손과 발, 앉아, 엎드려 따위의 말을 가르쳤다. 그 사이 순옥은 밥 두 공기와 시래기지짐을 푼 접시, 시장에서 사 온 고소한 김과 담근 지 얼마 안 된 풋내 나는 열무김치를 내왔다.

   “요즘 입맛이 통 없는디, 연이랑 먹으면 밥이 잘 들어가는 거 같어. “

   순옥이 빈 컵에 노란 보리차를 따라 주연의 밥그릇 옆에 올려두며 말했다.

   “밥도 보리밥이니께 열무랑 시라구랑 비벼 먹어도 맛있을 겨.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순옥은 냉장고에서 고추장을 꺼내왔고, 주연은 자꾸만 목이 메어 밥 한술을 뜰 때마다 보리차를 입으로 넘겼다. 그렇게 밥공기를 다 비우도록 순옥에게 떠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지점사람들과 회식을 가졌다. 멀리 사는 주연은 지점장과 박 과장이 차례로 권하는 술잔을 한사코 거절했다.

   “에이- 주연 씨, 대리 불러서 가면 되잖아~”

   “대리비는 뭐 한두 푼이에요?”

   옆에서 고기를 두 점씩 집어먹던 주 계장이 박 과장의 말에 토를 달았다.

   “주연 씨 드세요.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

   난데없는 김수찬의 얘기에 테이블의 눈동자가 일제히 그를 향했다.

   “네가?”

   “에-? 수찬 씨가? “

   박 과장과 주 계장이 멍청한 개그듀오처럼 번갈아 물었다.

   “그… 주연 씨한테 따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오~ 무슨 얘기를 둘이서만? 고백이라도 할 참이야~? “

   박 과장은 재밌는 일이라도 생겼다는 듯 분위기를 몰아갔다.

   “뭐야? 무슨 비밀얘기를 하려는데? 둘이 진짜 수상해요~~?“

   “둘이 사귀는 거 아니야?”

   “비밀연애하네! 우리 몰래! 그렇지? 어?!”

   “맞네! 맞아! 내가 저번에 탕비실에 둘이 꽁냥 대던 걸 봤다 했잖아~!”

   멍청한 개그나 주고받던 두 사람은 주연과 김수찬의 연애를 기정사실화 했다.

   “아뇨! 안 사귑니다. 하실 말씀 있으면 지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집은 제 차로 가겠습니다. ”

   참다못한 주연이 딱딱한 어투로 분위기를 얼렸다. 그녀는 멍청한 데다 뒷말까지 무성한 이곳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분위기를 몰아간 박 과장과 주 계장이 주연의 눈치를 살피듯 충혈된 눈동자만 빙빙 돌리고 있던 그때,

   “주연 씨한테 호감이 있습니다.”

   김수찬은 주연이 얼려버린 분위기를 단 번에 풀었다.

   “오~~~ 뭐야! 진짜 고백이네?!”

   “야아아아아~~~~~ 수찬이 남자네!”

   주연은 박 과장이 잡고 있던 소주병을 뺏어 들고는 병째로 입에 털어 넣었다.



   “기사님, 요 앞 마트에 잠깐 세워주세요. ”

    주연이 대리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는 읍내의 창고형 매장 입구에 차를 세웠다. 주연은 가장 비싼 프리미엄 개사료 세 포대와 두루마리 휴지, 세탁세제, 빨랫비누와 설탕까지 한아름 사들고 나왔다.

   “들렀다 갈 곳이 있어서요. 대리비는 추가로 드릴게요. ”

   차 안에는 빗물이 차창을 툭툭 때리는 소리와 와이퍼가 좌우로 삐걱삐걱 움직이는 소리로 가득했다.


   “순옥 씨! 저 왔어요! ”

   술에 취한 주연이 순옥의 집 대문을 쾅쾅 두드리고는 차 트렁크를 열어 사료포대를 하나씩 내렸다.

   “아이 뭔 사료를 가져왔어? 에잉?! 또 있네? ”

   순옥이 낡은 우산을 머리 위에 쓰고 나타나 주연을 맞았다. 주연은 말없이 마당에 있던 끌차를 가지고 나와 사료포대와 나머지 짐들을 실었다.

   “아이구 술냄시... 술 먹고 운전한 겨?!”

   순옥은 운전석에 앉은 대리기사를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저 냥반이 운전한 겨? 누군디?”

   “대리기사님이요. 오늘 회식해 가지고… 순옥 씨 사료는 여기 창고에 둘게요. “

   “갑자기 이 많은 걸 왜 가져온 건디?“

   “그냥요. 선물.”

   주연은 마을버스에 사료포대를, 두루마리 휴지를, 세탁세제와 설탕봉투를 낑낑대며 싣고 내릴 순옥이 마음에 걸렸다.

   “암만 그래도 갑자기 이 많은 걸 왜 가져와. 말도 없이! 돈이 땅에서 솟아? 하늘에서 떨어져?!”

   광에 쌓아둔 사료포대와 마루 위에 올려둔 짐들을 하나둘 살피다 버럭 성을 냈다.


   “순옥 씨, 저 이제 다시 돌아가요. ”

   주연은 씩씩대는 순옥을 등 진 채로 제 집 안에 뒤집어져 있는 흰둥이의 뱃가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디를?”

   “원래 일하던 데에서 다시 돌아오라 하네요…그동안 감사했어요. 순옥 씨”

   “치이… 고마울 것이 뭐 있간? ”

   순옥은 마룻바닥을 쓸던 빗자루를 집어 들고는 괜히 옷을 털어댔다.

   “흰둥아 언니 간다. 네가 할머니 지켜드려야 돼 알겠지? ”

   “갸 이제 흰둥이 아니여. ”

   “네?”

   “연이 네가 지난번에 예쁜 이름 지어주라 했잖여. 갸는 인자 미애여. 경애 동생 미애.”

   순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연은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순옥도 덩달아 웃어댔다.


   “가만있어봐. 이럴 때가 아니지. ”

   순옥은 한바탕 웃다가 갑자기 바쁜 걸음으로 부엌에 들어갔다. 한 손에는 손전등을, 반대손에는 서랍에 모아둔 비닐봉지를 한 움큼 들고 나와 비닐하우스로 걸어갔다.

   “연이- 이리로 와봐. ”

   순옥의 부름에 주연도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상추도 뜯어가고 알타리도 뽑아가고 밖에 오이도 따 가. 도시에서는 다 돈 주고 사야 되는 것 아녀. ”

   “괜찮은데…”

   “잔말 말고 여 봉다리나 벌려. “

   “순옥 씨…”

   주연이 말끝을 흐렸다.

   “왜?”

   “… 식사 잘 챙겨드셔야 해요. ”

   “……“

   “네?”

   주연이 순옥을 닦달하듯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알었어… 가서 직장 열심히 댕기면서 원래 살던 대로 잘 살어.”

   “또 놀러 올게요. 순옥 씨…”

  상추를 한 장씩 곱게 포개던 순옥의 투박한 손길이 이내 멈췄고, 적막한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만 낮게 깔렸다. 주연이 잡고있던 손전등은 주름진 손등을 향해 밝게 빛을 쏟아냈다.


   “연이 너는 나한테 왔다가는 비여. 한바탕 쏟아졌다가 인자 맑게 갤겨. 그러니께 걱정 말고 잘 살어. “


   김수찬을 피해 강춘묵 씨 댁으로 내달렸던, 처음으로 순옥의 이름을 불렀던 그날처럼 비는 추적추적 내렸고 천막에 고인 빗물이 출렁였다. 초록이 질펀한 뒷마당의 더운 공기와 흙냄새는 흐릿했고 주연의 여름방학은 끝이 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우비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