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하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뭘까? 이 질문을 보는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답변. 독서로 예를 들긴 했지만 독서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음에도 점점 줄어가는 모든 습관에 대한 핑계. 바로 ‘시간이 없어서’이다.
사회는 독서라는 행위가 긍정적인 발전을 위한 자기계발이고 바람직한 습관이라는 이미지를 계속 주입한다. 독서를 하는 바른 모범생 이미지가 우리 마음속에 있다. 그래서 사실은 절대 독서를 할 생각이 없음에도 '아 독서 좋지,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라는 식으로 자꾸 말하게 된다.
평생 책 읽기를 멀리하던 사람이 한 번쯤 시도해 볼까 하고 서점을 방문했다고 상상해 봤다. 세상에. 책이 너무 많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걸음은 자연스럽게 베스트셀러 코너로 옮겨진다. 남들이 읽는 게, 유명한 게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책만 그럴까. 노래를 들을 때도 TOP 100을 듣는다. 넷플릭스, 유튜브 콘텐츠 고를 때도 인급동, 시청 순위를 참고한다.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이다. 유명인이 유명한 이유는 유명하기 때문이다. 다들 아는 이야기일 테니 굳이 패리스 힐튼이나 카다시안 가족 이야기를 구구절절하지 말자.
자본주의 시장은 돈의 논리로 흐른다는 걸 인식하자. 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책은 상품이다. 책이 지혜와 통찰을 주는 신성한 물체인 것 마냥 하는 것도 다 마케팅이다. 베스트셀러는 그 정점이다.
요즘 다 이 책 읽는데 안 읽을 거야? 남들이 다 신는 브랜드 신발 너만 안 신을 거야? 남들 다 겨울에 이 패딩 입는데 너는 안 입을 거야? 명품이나 바디프로필 같은 유행들. 남들이 다 한다고 나도 해야 될 것 같은 일들. 정말 그걸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마케팅 업계의 입김이 내 머릿속에 주입된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부자 되는 법, 성공하는 법 같은 주제를 가진 베스트셀러들이 즐비한 현실이 갑갑하다. 진짜 부자는 그런 책을 쓰지 않는다. 그 책 팔아서 부자 되고 싶은 사람들이 쓴다. 부자들의 비밀과 세상을 바꾼 천재들의 습관이 놀랍게도 독서였다는 식의 이야기도 정말 못 들어주겠다. 독서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은 아닌데 말이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양서도 있지만, 불쏘시개로 그 운명을 마감하는 게 어떨까 싶은 책들도 있다.(나무야 미안해)
베스트셀러를 절대 읽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사회와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나만의 감식안을 가졌으면 좋겠다. 각자의 취향과 주관대로 세계를 확장해 갔으면 좋겠다.
대체 취향이라는 건 뭘까? 변영주 감독의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에서의 말을 인용해 본다.
‘취향은 호수에 물고기가 많을 때나 가능한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냐? 예를 들어 전주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갔는데 거기서 전주 음식 백여 가지를 내놓고는 그중에서 여러분의 취향을 고르라고 해요. 그 음식 중 몇 개는 먹어봐서 맛도 아는데 나머지 대부분이 전혀 모르는 음식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하나요? 그중에서 내 취향을 찾아내는 방법은 전부 다 먹어보는 것밖에 없지요.’
취향을 찾자는 말은 실패를 계속하자는 말이다. 백가지 책이 있다면 전부 읽어 보자. 내 취향이 아닌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내 취향인 것도 알게 된다.
아, ‘시간이 없어서’가 재등장할 타이밍이 됐다.
취향을 찾아내는 건 백가지 음식을 먹어봤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인데, 우리는 백가지 음식을 소화시킬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가 항상 그렇듯이 시간이 생겨도 내가 익숙하게 반복해 왔던 길, 많은 사람들이 먼저 간 길만 따라갈 뿐이다.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돌고 돌아왔지만 결국 베스트셀러가 계속 베스트셀러일 수 있는 이유를 알게 됐다. 우리는 너무나 시간이 없어서 책을 고르는 기준도 타인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실패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취향을 찾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 이유도 말할 수 있다. 다들 책을 안 읽기 때문이다. 독서라는 행위는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힙스터가 되고 싶지만 다들 똑같은 옷을 입는 시대. 우리는 취향이 있다고 말한다. 나만의 개성이라고 어필한다. 하지만 모두의 개성이 비슷하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