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톡톡 한 캔 마시고 취해서 지껄이는 헛소리
내 소개를 먼저 해야될지, 날씨 얘기를 먼저 해야될지 모르겠다. 고민 끝에 내 소개를 먼저 하기로 한다. 나는 아직 그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으므로, 그냥 재수생이다. 그냥 재수생. 그런데 특이점이 하나 있다면 남들처럼 수능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그러므로 수능 날 비를 맞으며 혼자 나오는 하굣길이 슬프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내 소개와 날씨 애기를 곁들여 버렸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졸업한 고등학교에 수험표를 받으러 갔다. 선생은 학생의 인권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수십 명의 재수생 수험표를 한 책상 위에 늘여놓았다. 나는 도매상처럼 질 좋은 물건이 있나, 슥 훑어보는 식으로 내 수험표를 챙겨왔다. 나는 먼 거리의 여자고등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쭉 남녀공학에서 졸업한 나는 여고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언덕 길을 올라 숨을 고르고, '2025년 대학수학능력시험평가' 글자가 프린팅된 샤프 하나를 건네 받았다. 그 샤프와 컴퓨터 사인펜으로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꽤, 잘 풀었다. 자랑할 성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숨길 필요도 없는 성적이었다. 하굣길은 복잡했다. 나는 내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 줄 알았다. 내 학부형도 아닌 타인의 학부형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정문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인파에 떠밀려 나도 모르는 새에 공간을 이동해 있었다. 정문에 나와서는 택시를 잡는데 애를 먹었다. 내가 사는 곳은 교통 체증이 심한 곳은 아니다. 그런데도 택시를 잡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으니, 그 예기치 못함이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고, 보슬비라 안내했던 기상 예보가 소나기에 맞먹는 빗방울 두께로 바뀌었을 때. 등은 땀에 젖어 끈적하고 얼굴은 선크림과 눈물이 뒤섞여 찝찝했다.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수험표 뒤에 몰래 적어온 숫자들로 수능 가채점을 해봤다. 어찌 됐건 최저는 맞췄네. 가족 단톡에 내 성적을 고지하고 곧바로 샤워실에 들어갔다.
내가 수능에 별 감흥이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성적으로 대학에 가질 않는다. 작년 이맘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수능 성적으론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그 대신 원하는 예술학교가 있어서, 그곳을 가겠다고 재수를 감행했다. 부모님의 반대는 당연히 심했다. 자존심은 없지만 그래도 까칠한 딸인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부모님 앞에서 그렇게 눈물 콧물을 빼본 적이 없다. 작년 겨울과 올해로 넘어가는 겨울 두 달을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무릎을 꿇고, 고개는 숙인 채. 그러다가 아니야, 이럼 확신이 없어 보이잖아, 싶어 다시 고개를 들고. 유일하게 붙었던 그 지방 대학교만은 가기 싫다고 빌었다. 사실 그때는 꿈보단 싫증이 심했다. 이 동네를 뜨고 싶었다. 최대한 멀리,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일 년동안 괴롭혔던 전남친과 몸을 부대껴야 할 판이었다. 그것만은 끝까지 피하고 싶었다. 물론 이 말을 꺼냈다가 내게 돌아온 말은, 나약한 새끼. 그거 하나 못 버티면서 무슨 재수를 하겠다고, 하는 칼 같은 말이었다.
수능 며칠 전에 원하던 학교의 최종 결과가 나왔다. 떨어졌다. 나는 괜찮았다. 괜찮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믿어야만 한겨울까지 버틸 수 있으니깐. 그러나 역시나, 네가 역시나, 하는 그 칼 같은 말이 자꾸만 나를 괜찮지 않게 만들었다.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건 정말 수능 공부밖에 없는데, 수능 시험까지 남은 디데이는 채 일주일도 안 되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알바를 하러 갔다. 그것도 탈락을 확인하고 바로 다음날에, 피자를 만들러 갔다. 점장님은 일부러 분위기를 풀어보겠다고 내게 장난을 쳤다. 너 수능 친다며! 원래였으면 허허실실 웃었을 내 표정이 변하지 않자, 그때부터 분위기가 적적해졌다. 나는 손님도 없겠다, 날씨도 흐리겠다, 괜시리 감정이 동요해 진지한 상담을 부탁했다. 내가 먼저 어른에게 말을 건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점장님, 미련이 남아서 아무것도 못하겠으면 어떡해야 돼요? 제 현실이랑 꿈 중에서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어요. 래퍼처럼 주르륵 뱉고 나서 아차, 싶었다. 물어볼 어른이 없어서요. 원래 내가 잘 짓는 바보 같은 웃음으로 분위기를 무마시켰다. 점장님은 틈틈이 내게 조언을 해주셨다. 내 상황이 더 안타까운 이유는, 내가 부모님 잔소리에 못 이겨 지방 국립대에 쑤셔 넣은 수시 원서 때문이었다. 이 성적에, 그 정도 생활기록부면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뜬눈으로 시간을 죽이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시간을 죽였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으면 그땐 뭘 죽여야 하지, 고민하는 것뿐이었다.
수능을 치고 있을 때 점장님께서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모르는 번호와 초면의 프로필 사진이라 바로 차단할 뻔 했다는 건 비밀이다.
그리고 여기 질세라 사장님께서도 선물을 보내주셨다. 두 분 다 내 취향을 완전히 간파한 차와 버블티 세트를 보내주셨다. 나는 이 두 개만 있으면 식사도 해결할 뿐만 아니라, 하루의 스트레스가 다 날라간다. 자꾸만 미래 계획이 꼬이는 데에 비해 인복 하나는 터진 것 같다. 올해 정말 좋은 어른분들을 많이 뵀다.
도미노 알바는 내가 두 번째로 알아본 일자리다. 맨처음 일자리는 동네 편의점에서 시작했다. 그 악덕 사장은 현 최저시급이 9860원인데 7000원을 주고 나를 굴렸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나와야 하는 요일에도 나를 굳이 불러내서 일을 시켰다. 거절에 취약한 나는 늘 웃는 얼굴로 문을 열었고, 그러면 따라오는 착한 아이라는 칭찬에 발을 묶인 채 노예를 자처했다. 그리곤 새벽 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어른을 구했다며 멋대로 나를 잘라 버렸다. 전화 와서는 하는 말이 같잖았다. 그 사람이 일을 잘 할지 못 할지 모르니깐 일주일만 지켜 보고 너를 다시 쓰던가 할게. 전화를 받으면서는 어이가 없었지만 끊고 나서는 이게 사회구나, 싶어서 받아들였다.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고 싶진 않았다. 그 사장 아줌마는 잘 모르는데, 나도 당신 못지 않게 영악하다. 곧바로 부모님을 들먹이며 도리어 내가 갑이 되어 사장을 협박했다. 그러자 쩔쩔매며 장문의 문자가 왔다. 다 씹고 일을 그만 두겠다 했다. 그날만큼 내 인생에 사이다는 없었다.
자꾸만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 많아져서 큰일이다. 중학교 땐 영어 학원 선생님이 그랬고, 지금은 알바하는 가게 어른들이 그렇다. 엄마가 될 수 없다면 내게 나이가 조금 많은 언니, 혹은 그냥 이모가 될 순 없는 걸까. 나는 영화 벌새의 주인공을 보면 자꾸만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괴롭고 짠하다. 뭐가 그렇게 기대고 싶어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정을 주는 걸까. 그 사람들이 불러주는 내 이름이 너무 다정해서, 나는 자꾸만 내 이름이 좋아질 것만 같다. 한 번도 예쁘다 생각한 적 없는 내 이름을 예쁘다며 칭찬해 줬을 때, 그리곤 아주 예쁘게 불러줬을 때. 그냥 엄마라고 부르며 안기고 싶었다. 그 촉감이나 폭신함은 당연히 우리 엄마와 비슷하겠지? 키가 작은 나는 항상 여자의 명치, 혹은 가슴께에 이마를 포개곤 하니깐 말이다.
술기운이 올라온다. 내 친구는 재수하면서 술도 배우고 담배도 피운다는데. 나는 꼴랑 이슬톡톡 한 캔 먹고 취한다. 자꾸만 남발하는 오타를 바로 잡으려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그래도 오늘은 꼭 글을 쓰고 싶었다. 이거 하려고 내 이십 대의 일 년을 멈춘 거니깐.
그리고 또 고백할 것. 엄마 몰래 대학 면접 응시료를 납부하지 않았다. 그러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051로 시작하는 전화번호. 보자마자 부산이네, 했다. 탈락 처리가 됐다고 들었다. 벌써 두 번째 탈락. 이번 탈락은 내가 택한 거라 후회하지 않는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멋대로 시작한 내 인생, 끝맺음도 내 멋대로 한 번 해보려 한다. 뭐가 됐든, 그 길 끝엔 깨달음이 하나 정돈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