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 아침
이불 밖은 찬 서리가 내릴 만큼 코끝이 시리다.
자다가도 코 시린 느낌이 들면 이불을 끌어당기던 시절
아침이 오면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웠다.
뭉그적거리며
조금만 더 , 조금만 더를 부르짖었다.
10분만 더,
아니
5분만 더 있다가.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못한다.
드디어 알람이 울린다.
부시럭대며 일어나 차가운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 등교 준비를 했다.
일요일이면 아이들 등교와는 상관없어진
느려터진 엄마로 돌아왔다.
그래, 네들도 자라.
나도 더 자야지.
어젯밤의 늦은 취침으로 일요일 아침
우리 집은 고요하다.
딱 30분만 누웠다 일어나야지.
그래도 아침은 먹여야 되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 일어난 거 같은데 남편이 안 보인다.
배가 고파서 요깃거리를 찾아 분주하다.
그렇게 시각은 10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생존을 위한 운동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서랍에서 적당한 양말을 찾아 꺼내온다.
선크림을 바르고 하루의 시작을 위해 몸의 동선을 넓혀본다.
`너무 일찍 무리하면 관절에 무리가 가겠지`,
라는 뻔한 변명으로 소파에 걸터앉았다.
서랍에서 꺼내온 양말을 소파 귀퉁이에 던져두고
유튜브를 틀었다.
`오늘 아침 핫뉴스는 뭐가 있을까.`
클릭 클릭 클릭.
버튼은 오늘따라 부드럽고
간 밤의 미국장을 열심히 설명해 주는 유튜버와 뉴스들.
내가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설명 맛집인 그들은 알아서 척척 알려준다.
늘어진 몸은 더 늘어지며
등이 소파에 들러붙어 버린다.
오늘도 흐린 주식장이 짜증스러워지기 시작하면 정치 뉴스로 옮겨간다.
`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건지,`
잘난 사람들이 하는 짓이 시정잡배보다 못하다는 생각.
주식장보다 더 한숨 나는 오만가지 말들에 내 몸은 45도 더 기울어진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거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의 저항은 더 커져간다.
더 이상 일어나야겠다는 의지가 옅어져 간다.
하루만 아파 몸져누웠다 일어나도
내 다리의 근손실을 실감하게 되더니,
매일아침마다 반복되는
중력과 함께 하는 게으름은 결이 다른 근손실을 경험하게 해 준다.
시간은 어느새 10시를 향해 가고
그즈음이면 매일 올라오는 구독 콘텐츠를 찾게 된다.
훈련된 강아지 마냥
정해진 시간이 되면 구독 채널을 습관적으로 누르며
`이것만 보고 일어나야지
이것만 보고 운동하지 뭐,
아직 오전 시간인데 하루는 길지 않나?`
이제 의지를 완전히 상실해 버린 내 다리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이어지는 영상에 계속해서 지고 만다.
익숙한 패턴으로 매일 내 아침 시간을 빼앗고 있는
정체 모를 무료함과 게으름과의 사투다.
현 상황일 뿐 아닌, 평생을 함께 내 어깨 위에 앉아
내 30분을 3시간, 13시간으로 앗아가 버리고 있었던
싫은 마음이다.
앉고 싶은 마음은 눕고 싶은 마음으로 변하고
눕고 싶은 마음은 자고 싶고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를 하루종일 담금질했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 한편은 항상 불편하고 아팠던 습관이다.
내 마음이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날이 더 많았던
그렇게 보낸 시간 뒤에
억지로 몸을 일으킬 때
다리 마디마디는 비명을 질러대고
삐걱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젊을 때는 들리지 않았던,
느낄 수 없었던 아픔과 몸속에서 울리는 소리들이
미루고 버티던 내 습관을 돌아보게 했다.
원래부터 그랬다.
원래부터.
시험공부도 벼락치기,
다이어트도 매일 실패와 각오를 오가고
한 해의 목표는 항상 3일을 넘기지 못했던 듯하다.
살아오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악착같은 부지런을 떨었던 경험이 없다.
그것이 누적되고 반복돼 지금까지 왔고
그로 인한 아쉬움과 후회가 몸이 주는 신호처럼
마음이 주는 신호로도 느껴진다.
``쉽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형사들이 현장에서는 훈련 잘 받은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다들 개인으로 돌아가면 사건의 압박에서 벗어나거 싶어 해요.
누군가는 형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며,
누군가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 하고,
누군가는 어딘가에 숨어서 울고 있습니다.
능력은 시체와는 아무 상관없어요.(.....)
무슨 일이 있건 다음 날 아침 9시에 출근하는 게 능력입니다.``
-영국 드라마 <화이트채플> 대사 중에서
1년 중 4개월이 또 지나갔다.
새해 첫날이 되면 올 해는 예전과 다른 나를 상상해 보며
이런저런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보지만
이것도 안 한 지가 꽤 되었다.
그저 그런 ,
새로울 것 없는 날들의 연속상에서
나를 움직일 동력을
여전히 가져보지 못한 삶이어서
불필요하게 여겨져 왔다.
보람 없는 하루는 없다. 모든 하루에는 배움과 기쁨이 있다.
그리고 나는 몇 년 간 펼쳐본 적 없던 다이어리를 펼쳤다.
먼 목표부터 가까운 목표까지
하나씩 생각해 가며 적어보았다.
쉬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앉고 싶고 눕고 싶은 몸의 저항을 이겨내고
버거워서 피하기만 했던 목표에 한 발씩 다가가며
근육 하나하나를 움직여보았다.
어, 이게 되네.
리모컨을 소파 구석으로 내팽개칠 수도 있구나.
양말 신고 운동화를 바로 신을 수도 있었네.
흠뻑 땀을 흘리고 나서도 오전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동기는 없었다.
그저
`오늘 뭐 먹지`라는 가볍고 순간적인 느낌이었다.
부지런함이라는 걸,
내 다리 마디에서 오는 통증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는
자각이 살짝 온 것뿐이다.
나도 좀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싶다는 의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닌
나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나아가고 싶다.
언제 다시 도질지 모르는 고질병이 도사리고 있더라도
오늘 하루는 조금 나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