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Sep 30. 2024

양복 한 벌과 외삼촌

엄마에겐 나와 5살, 8살 터울의  남동생이 둘 있다.

나이차가 크지 않아 우리 형제들과 함께 커온 삼촌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부터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터를 잡고 생활해 오며 지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맏딸이던 엄마는 부모의 역할도 도맡고 있던 터였다.


딸 넷, 아들 둘을 두신 외할머니의 아들 사랑은 어린 내가 봐도 지극하셨던 것 같다.

전해 듣기로, 시골에서 제법 잘 사셨던 외조부모님은 딸만 넷을 낳은 후 얻은 아들을 키우는데 

지극정성이셨다 한다.


딸 넷은 언감생심 바랄 수도 없게 만든 고등교육의 혜택을 아들들은 물심양면 지원해 주셨음은 당연하고 

제대로 된 직장생활이 어려웠던 아들들의 사업 자금도 적극 지원해 주셨다.


그 시절 부모들이 원했던  번듯한 직장인 대신 삼촌들은 자영업자의 길을 택했다.

만화방, 비디오 가게, 경양식 집, 네온사인 간판업 등 내가 아는 것만 해도 그 정도였다.

사람 좋고 호인이었던 큰아들은 밑 빠진 독처럼 돈을 가져가면 텅 빈 통장을 가져다주는 

마법을 부리기 일쑤였다.


사람 좋은 게 독이 되는...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주변에 도사리고 있었음에야......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회인의 낙인은 실패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아들이 둘이지만 할머니의 사랑은 첫째에게 더 많이 향했었다고 엄마는 입버릇처럼 푸념하곤 하셨다.

부모님의 재산 중 8할 이상을 첫째가 다 가져가 없애버려도 둘째는 군소리 없이 자신의 일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말수가 적었던 삼촌들은 사람 좋은 웃음을 날려줄 뿐 어쩌다 함께 하는 시간에도  

존재감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중 큰 외삼촌은 병을 얻어 일찍 돌아가시게 되었고 막내 삼촌 혼자 남게 되었다.

시작하는 것마다 돈을 거덜 내는 형을 미워한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형의 죽음은 말이 없던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돈이 주는 은혜로움은 없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의지가 되는 형이었기에 상실감으로 한동안 힘겨워하던 그였다.

그럴수록  큰 누나 내외를 부모 대신, 형 대신 믿고 따르는 마음은 클 수밖에 없었다.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에  인사를 빼놓지 않던 삼촌은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인사차 방문해 주었다.


술 한잔에도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에 전에 없던 웃음과 수다가 장착된 채로.

저렇게 말이 많던 삼촌이었나?

그에게도 저런 큰 웃음과 수다라는 게 존재하는구나 싶게 

유난히 큰 소리로 호탕한 웃음과 함께 

처가에서 있었던 일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아픈 장모님을 보살피고 있는 요양사분과  잘 ~놀다 왔다는 말을 시작으로 

한동안 우리는 변한 삼촌의 모습을 대하고 앉아있었다.

맞장구쳐주면서 엄마도 삼촌과 친구 먹는 언니도 연신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가며 즐거운 분위기를 이어갔다.


어릴 적 부모님에 관한 에피소드나, 없는 살림살이에도 묵묵히 아이들 키워낸 외숙모 얘기며

먼저 간 형 얘기까지......

벌게진 삼촌의 얼굴처럼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한동안 열띠게 말을 이어가던 삼촌은 그 자리를 마무리 지으며 아버지께 독대를 청했다.


젊을 때야 밤을 새워가며 술잔을 기울였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 터,

슬슬 떠날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다.


``자형이 내 군대 제대하고 나니 양복 한 벌을 사주시더라.

그거 입고 면접도 가고 

인사할 자리 있으면 입고 가고 

격식 차릴 자리엔 지금도 입고 다닌다.

내 옷장에 아직도 그 양복 있다 아이가.

그 양복 왜 못 버리는지 아나. 참 고맙던 거라..

자형이 선물해 준 거는 못 버리겠더라..

내가 양복 입을 일이 어디 많이 있나.. 막일 인생, 양복 한 벌이면 족하더라.``


``내가 사줬다고?ㅎㅎㅎ

기억이 안 나는데.``

아버지는 정말 기억이 안나시는 듯 ,


``삼촌, 그게 아직 있다고? 아직 입을 수 있나? 근데..``


``내가 살이 찌는 체질도 아니고 양복 입을 일이 별로 있어야지.ㅎㅎ``


평생 깡마른 몸의 소유자로 우리들 부러움을 사던 삼촌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술기운에 달아오른 그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많은 것을 말하고 싶어 하고 있었다.


``자형. 저한테 1분만 내주이소. 저 방에 가서.``


동작이 많이 느려진 아버지의 모습이다.

올해 초부터 부쩍 느려진 동작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설에 보았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7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걸음걸이도  말도 많이 느려진 모습이다.


세월을 비껴갈 수 없다는 가정에도 더 나빠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왁자지껄한 거실에 우리를 남겨두고 아버지와 삼촌은 방으로 들어가셨다.

굽은 등의 아버지와 발갛게 상기된 삼촌의 뒷모습이 많이 어색하지만 

두 사람은 한동안 거실과는 상반된 시간을 허락받았다.


1분 여가 지난 뒤 눈이 충혈된 삼촌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거실로 나왔다.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알만한......


낯선 모습의 삼촌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손 모아 기도하면 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