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으면 이동이 너무 불편해``
``슈퍼마다 70% 이상은 현지 물건뿐이라 사고 싶어도 살 수 있는 게 없어.``
``해찬* 고추장 한 통 사기도 어려워``
``슈퍼 가는 것도 차를 타고 나서야 하고``
``호찌민처럼 사고 싶은 물건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옷을 하나 사고 싶어도 자카르타 까지 나가야 가능하니
기동력이 없어 너무 힘들어.``
``상주 메이드랑 하루 종일 지내려니 너무 불편해.
마담들이 한국으로 장기간 다니러 간 사이에 메이드들이 온갖 서랍 다 열어보고
마담 옷 다 꺼내 입고
마담 화장품 다 써보고
입던 잠옷부터 달라진대.
팔자 한 번 고쳐보겠다고 메이드들이 혈안이 돼 있대.``
공장 이주 러시로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이 많이 들어서면서
베트남 주재원들이 인니로 근무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지인 중에도 많은 분들이 인니로 이사를 갔는데
이삿짐 도착부터 하나도 수월한 게 없었다며
불편함을 토로하곤 한다.
자카르타 시내는 집값이랑 생활물가가 너무 비싸고 공장이랑 멀어서
자녀를 다 키운 경우는 외곽으로 터전을 잡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렌트비도 호찌민보다 비싸고
부동산 업자를 잘 못 만나면 a/s 조차 제 때 받지 못한다고, 너~무 힘들다고..
수리 기사 방문 시간도 제때 맞춘 적 없고
한 번 재어 간 창문 사이즈는 왜 4번씩이나 다른 사람들이 와서 재고 또 재는건지..
에어컨조차 집 크기에 비해 낡고 적은 용량이라
더운 날씨 감안하면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
병원 간 사이, 수리기사가 40분 넘게 기다리고 있다며, 어디 간 거냐며 따지는 부동산 업자의 잔소리에 어이가 없다....(방문 전화도 없었고 약속을 이미 여러 번 어긴 건 수리기사 쪽 )
참을성이 바닥난 상태라 고성이 오고 간 후,
`네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살면서 우리를 무시하냐.. 난 부자다. 네들한테 무시당하고 살사람 아니다.
우리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대해라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는 협박까지...
당황스럽고 뒷골 당기는 일이 빈번한 인니에서의 적응기를 한참 들었다.
부동산 업자와의 싸움에 지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메이드들에 지치고
한국 물건사기도 힘들다는 얘기였다.
하소연할 데가 한 군데라도 있어야 하니...... 한 시간 넘도록 푸념을 들어주었다.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오던 소리.. 같다는 건 착각인가!!
베트남에 온 2007년
수도 없이 들어오던 말 말 말들..
어쩜 저리도 판박이처럼 똑같은지..
한국사람에 비하면 머리회전도 잘 안돼 베트남 인 10명 몫을 한국 사람 혼자 한다드니
수리기사들 올 때마다 뒷목 잡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
한국물건도 너무 귀해 한국 갈 때마다 트렁크에 한가득씩 실어오뎐... 그 시절.
지나고 보면 그때는 정말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남편들의 인상이 하루도 펴져 있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는 푸념을 듣곤 했던 거 같다.
생각해 보면 ,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한 건 한국 사람이었고
그들의 문화를 우리 문화와 비교하니 느려터진 건 당연한 일이었고.
내가 살던 곳만큼 편하고 체계적이며 시스템이 잘 굴러가는 곳이 어디 있을까.
적응되어 가며 조금씩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라는 걸 실감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간을 지나고 너도 나도 적응이 되어 온 호찌민의 생활은
이젠 젊은 새댁들도 반겨할 만한 살기 좋은 곳으로 인식되어 가는 중이다.
인프라가 부족하던 시절,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해도
차 없이 다니는 게 너무 불편하고
살 게 없다고 , 한국과 너무 비교되는 물건의 품질 때문에 겪었던 내적 갈등을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간 지인은 새롭게 겪어내고 있다.
한참을 듣다 만나게 된 우연한 동질감에 한참을 웃었다.
그때 전화로 내 푸념을 다 들어주던 언니는
한국과 비교되는 환경에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내었을까.
그때 전화로 내 넋두리에 공감해 주던 동생은
한국과 다른 베트남이라는 곳을 아프리카 어느 오지쯤으로 여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후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서 잘 살아가는 우리들
후진국을 벗어나 눈부신 경제 성장률을 보이는 동남아 잠룡 대표주자 베트남
내수 시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목받는 미래의 대표적인 잠재국 인니
다들 모습은 달라도 같은 전철을 밟아가는 듯하다
어려웠던 시절이 있는 만큼 성장하는 데 따른 성장통은 당연하며
그와 함께 사람들의 생각이 성장해 간다는 건 시간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초기에 들었던 베트남에 대한 나쁜 소문들은 소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그저 그런 떠도는 말이었다는 건 추후에 알게 되었다.
어느 사회든 사건 사고가 없는 곳은 없는 데 이것을 일반화시켜 불안감을 더 크게 부각한 면도
있었던 것 같다.
인니의 생활도
언젠가는 옛말 하며
지금의 베트남처럼 편하게 제2의 고향이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을 상상해 본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베트남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