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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sol Mar 18. 2024

푸른곰팡이 모닝빵의 교훈

나의 맵쓴 일본 유학시절 이야기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적금을 만기도 되기 전에 해약하여 스물일곱 살, 어리지도 성숙되지도 않은 어중된 나이에 일본 유학을 떠났다. 대학 선배가 1년 먼저 일본 동경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유학 생활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학교까지 가는 교통편이며 집을 구하는 일, 심지어 아르바이트까지 소개해 주어서 다른 유학생들보다 훨씬 편하고 빨리 유학 생활에 적응하게 되었다.


 학교 등록금은 적금을 해약해서 해결했지만 현지에서 지출되는 실습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가지고 간 경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일본에 도착한 이후로 치솟는 엔고 현상으로 가지고 간 돈이 절반으로 그 가치가 줄은 것도 아르바이트를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선배가 소개해 준 일자리는 한국 음식점이었다. 보통 ‘야키니쿠야(焼肉屋―고깃집)’이라고 불리는 식당이다. 내가 맡은 일은 설거지 담당으로 「아라이바(洗い場)」라고 한다. 일본어가 아직 서투른 유학생들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설거지 담당이라고 해도 레벨이 나누어져 있다. 초기에는 불판 닦기이다. 싱크대에서 닦기에는 뜨거워서 위험하므로 주방 바닥에 설치되어 있는 수도꼭지 앞에 쭈그리고 철 수세미로 닦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닦으면 뜨거운 철판에 들러붙을 수가 있다고 맨손으로 하라고 했다. 지금처럼 레몬향이나 오렌지향이 나는 ‘피부를 상하게 하지 않는 친절한 세제’가 아니고 세척력이 강한 세제를 사용했다. 그래야 철판에 눌어붙은 고기 찌꺼기가 쉽게 떨어지니까. 독한 세제 때문에 손가락 지문이 거의 지워져서 이때부터 현재까지 지문인식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등본 한 장 떼는데도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철판 닦이를 한 달 정도 하다 보니 새로운 신입 아르바이트가 들어왔다. 불판 닦기에서 나는 음식 그릇 닦기로 자리를 옮겼다. 또 한 달 정도가 지나니 새로운 아르바이트가 들어오고 나는 음료수컵이나 술잔 등 유리컵을 닦는 자리로 옮겼다. 한 단계씩 승진을 한 셈이다.


 나라와 인종을 불문하고 어느 곳이나 텃세가 있다. 내가 일하던 식당의 주방장 아주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은 반면 성격이 유별났다. 타지에서 ‘몸 고생, 마음고생’하는 자식 같은 학생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 때문에 상처받고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 독한 화살이 나에게도 날아왔다.


 유학생이 통과해야 하는 일본어 능력 시험(JLPT)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근무하던 식당의 매니저가 시험을 잘 보려면 밥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며 작은 용돈 봉투에 5,000엔을 넣어 주셨다. 시험 보기 전에 꼭 밥을 사 먹으라며. 나는 따뜻한 격려에 고마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너무 기뻐서 주방장 아주머니에게 자랑을 했다. 대게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래? 정말 잘 되었구나! 꼭 밥 든든하게 먹고 시험 잘 봐라!”라는 멘트가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웬걸.


 매니저한테 돈을 받았으면 주방장인 자기하고 반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손님으로부터 받은 팁도 그러하듯이. ‘이건 팁이 아니잖아요’ 하고 아주머니가 한 말이 이해가 안 돼서 발끈한 것이 화근이었다. 종 동물 명과 쎈 소리로 읽히는 숫자가 들어간, 한국에서 들어보지도 못했던 욕을 타국에서 온갖 종류대로 다 들었다.


 욱한 심정을 누르고 시험은 무사히 1급에 합격했지만 식당 아르바이트에서 짤리고 말았다. 사장님 말에 의하면 단순노동 아르바이트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주방장은 쉽게 못 구한다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며.


 유학 초기에 도움을 준 선배에게 들은 말도 안 되는 충고가 기억났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타국에서 만난 한국 사람을 조심해.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항상 상황이 문제니까.’


 그렇다면 다음부터는 한국 식당이 아닌 일자리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실습비와 집 월세, 공과금 등을 치르고 나니 통장에 잔고가 없었다. 학교 친구에게 아르바이트 정보지를 빌려서 되도록이면 교통비기 들지 않는 장소와 시급 등을 따져가며 겨우 일자리를 얻었다.


 학교와 집의 중간지점으로 조치대학(上智大学) 근처의 요츠야 산쵸메(四谷三丁目)에 있는 커피숍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대형 커피숍으로 나는 지하 1층 담당이 되었다. 마스터(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와의 면접에서 일본어로 대화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며 홀 서빙을 맡았다. 외국 유학생들 손님이 간혹 있으면 짧은 영어실력으로 서빙을 했더니 마스터는 흡족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이전 일자리에서 해고당한 탓에 월급을 제대로 못 받아서 고정지출이 빠져나가고 남은 돈이 없었다. 새 일자리에서 받을 월급은 아직 한참 기다려야만 했다. 며칠 식사를 제대로 못 했더니 현기증이 났다.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주머니를 뒤졌더니 100엔짜리 동전 두 개가 잡혔다. 200엔. 편의점에서 200엔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았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내 주먹만 한 빵 8개가 들어있는 ‘모닝빵’을 샀다. 이거면 이틀은 먹을 수 있겠지 생각하니 집에 가는 길이 행복했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얼굴에 부딪히는 5월의 산들바람에 빵 향기도 함께 내 코에 날아 들어왔다.


 8개의 빵을 몇 끼니로 먹을까 계산했다. 저녁에 일단 두 개 먹고, 아침에 학교에 가기 전에 두 개, 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 가기 전에 두 개, 일 끝나고 두 개.


 남은 4개의 빵이 담긴 비닐을 꼭 매어 금줄로 단단히 묶어서 싱크대 옆벽, 햇빛이 안 비치는 곳에 매달았다. 가난한 유학생 집에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먹을 것이 있다는 뿌듯함에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저어가며 집으로 갔다. 아르바이트 가기 전에 커피에 물을 많이 넣어 모닝 빵하고 먹어야지 생각하며.


 5월 중순, 지은 지 오래되어 쓰러질 것 같은 목조 건물 2층의 내 방안 온도는 한 여름의 공기에 장악당했다. 그 온도에 ‘나의 소중한 모닝빵’이 처참하게도 푸른색을 띤 곰팡이에 저격을 당했다. 순간 엄청난 결정을 해야 했다. 이걸 버려야 할지, 아니면 곰팡이를 떼어내고 먹어야 할지. 한참을 먹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마냥 들고 있었다. 결국 그대로 원래 있었던 자리에 매달아 놓고 방을 나왔다. 속이 쓰렸다. 배고픔으로 위가 쓰린 것이 아니라 가슴이 쓰렸다.


 커피숍에서의 아르바이트는 힘들지 않았다. 마스터는 친절했고 같이 일하는 매니저도 텃세를 부리거나 유학생이라고 하대하지 않았다. 마침 마스터가 나에게 뭐 힘든 일은 없냐고 물어왔다. 곤란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뭐든 얘기하라고. 나는 이 때다 싶어 대뜸 큰 소리로 말했다.


“가불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까지 일 한 날이 2주일이 넘었으니 20,000엔만 가불해 주세요.”


마스터는 멍하니 내 얼굴을 10초 정도 쳐다봤다. 10초가 10년 같이 길게 느껴졌다.


“왜 갑자기 돈이 필요한 거니?”


 한참을 뭔가 생각하더니 마스터가 되물었다. 나는 별의별 핑계를 생각했다. ‘갑자기 실습비가 필요해졌어요’라던가, ‘어딘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등등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그럴듯한 말을 찾아내느라 고민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적당한 핑계와는 달리


“배가 고파요. 배고파서 뭐라도 사 먹어야겠어요”


 마스터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외치듯이 내 입에서 울분과 고통이 섞인 속 쓰림이 서러움으로 튀어나왔다. 아뿔싸.


 그 후로, 저녁 휴식시간이 되면 1층과 연결된 스피커폰으로 매니저의 코맹맹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샌드위치 내려보냅니다~. 맛있게 먹어요~”


 1층과 지하층을 연결하는 리프트에 삼각 식빵에 계란과 갖은 채소가 듬뿍 들어간 영양 샌드위치가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 놓였다.


 20,000엔 가불과 함께 마스터는 유학생으로서 겪는 모든 힘든 일들이 언젠가는 너의 인생을 단단하게 해 줄 것이라는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자존심은 너를 배부르게 해주지 않아!

상황에 따라 자존심을 내려놓고 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발견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바란다. 너의 유학 생활에서 그것만 터득한다면 그야말로 참된 공부 아니겠어?」


 베이커리 카페가 대 유행하면서 다양한 맛과 세련된 디자인의 빵의 출현으로 나를 배부르게, 아니 나를 성장하게 해 준 ‘모닝빵’은 빵 축에도 못 끼는 세상이 되었다.


푸른색 곰팡이가 더덕더덕 붙은 가엾은 모닝빵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참된 공부로 살기 힘든 작금의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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