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맵쓴 일본 유학시절 이야기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뇌 구조를 갖고 있는 종합 예술가라고 믿기 때문이다. 셰프들은 음식을 만들 때 활용하는 감각인 미각과 후각 이외에 시각, 청각, 촉각 등을 총동원하여 종합 예술품으로서의 음식을 만들어 낸다. 그뿐만 아니라 생물학, 화학, 물리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음식을 완성시킨다. 심지어 불과 물, 시간 등을 음식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상태로 조절하는 무림 도사의 도술까지 터득하고 있다.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현지 디자인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여기저기 지망하고 싶은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취업활동을 하는 몇 개월 동안, 그 당시 살고 있었던 동네 미카와시마(三河島)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JR 전철 순환선 역인 니시닛뽀리역(西日暮里駅) 근처의 경양식 식당이었다.
하얀색 셰프 모자와 셰프 유니폼을 입은 중년 남성인 셰프와 면접을 본 후 바로 채용됐다. 홀 서빙을 담당하게 되었다. 셰프는 키가 크고 단단한 체격에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 자주 읽었던 추리 만화 소설의 주인공인 탐정 괴도 루팡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임 직원에게 홀 서빙의 기본 매뉴얼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엄격한 동선 이용과 손님 응대 멘트, 컵을 놓는 자세, 음식을 나르는 자세 등 세세한 규칙을 하루빨리 숙지하도록 노력하라는 딱딱하고 차가운 지시에 항상 긴장되어 몸이 꼿꼿하게 굳어버릴 지경이었다.
향수는 손님들의 식욕을 저해하므로 절대 사용하지 말 것, 짙은 화장 금지, 손톱은 항상 짧게 자르고 색이 있는 매니큐어는 음식 플레이팅에 시각적 악영향을 주므로 금물, 유니폼은 레스토랑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므로 항상 청결하게 착용, 머리카락은 한 올이라도 보이지 않도록 두건으로 감쌀 것, 신발은 딸깍딸깍 소리 나는 슬리퍼는 절대 금지, 발꿈치를 보이지 않도록 양말을 신을 것 등등 작은 레스토랑이지만 엄격한 용모단정에 대한 규칙을 따라야 했으며 셰프의 허락 없이는 주방에 절대 들어가지 못했다.
레스토랑의 메뉴는 정해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히가와리 정식(日替わり定食)」이라는 점심 메뉴였다. 오전 10시에 출근하여 바닥 청소부터 유리창 닦기, 테이블 정돈, 물컵과 냅킨 정리 등의 기본 준비를 했다. 그러는 동안 루팡 셰프는 그날의 정식 메뉴를 안내하는 간판을 작성해서 출입구 앞에 세운다. 가끔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의 이해를 돕는 그림까지 멋지게 그려내곤 했다. 돈까스나 새우, 마늘, 파, 각종 채소 등 글 솜씨뿐만 아니라 그림 솜씨도 꽤 훌륭했다.
그날의 정식 메뉴에 따라 날씨를 체크했다. 맑은 날은 창문의 블라인드를 올려서 바깥에서 내부를 보일 수 있게 하고 실내의 손님들은 바깥의 쾌청한 날씨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흐린 날은 블라인드를 내리고 각도를 조절하여 외부에서 잘 보이도록 실내조명을 따뜻한 크림색으로 조절했다. 비바람이 치는 어떤 날에는 입구에 바닐라 향이 나는 아로마 캔들을 켜놓기도 했다. 손님들을 위한 음식의 맛뿐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의 감성까지 배려를 하는 루팡 셰프의 능숙능란한 마음 씀씀이에 매일 감탄하곤 했다. 인간의 심리학까지 연구를 한 듯 하다.
날씨에 따라, 혹은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 데이, 여름휴가 시즌, 크리스마스 등 달력에 빼곡히 기념일을 적어놓고 그때마다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 놓는 것은 당연한 업무 중의 하나였다. 덕분에 그 당시에 유행했던 J-POP은 이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면서 다 외울 정도였다.
따뜻한 음식을 먹고 혹시 땀이 날지 모르니 에어컨의 온도 조절도 꼼꼼하게 체크하라고 지시를 했다. 그날의 일기예보를 미리미리 체크하여 음식의 온도를 계산한 수치를 우리에게 지시했다. 시간과 외부 온도에 따라 에어컨의 온도를 조절해 놓지 않으면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히가와리 정식(日替わり定食)」은 8개에서 9개의 메뉴로 정해져 있었다. 일주일, 즉 7일 기준으로 한 바퀴 순환되면 매주 같은 요일에 오는 손님들은 그때마다 다른 메뉴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셰프의 계산에 의해 정해진 것이었다.
돈까스 정식(とんかつ定食), 가쓰동 정식(かつ丼 定食), 치킨 소테 정식(チキンソテー定食), 시오야끼 정식(塩焼き定食-고기를 소금만 뿌려서 구운 음식), 사바 미소니 정식(さば味噌煮定食-고등어에 된장을 발라서 찐 음식), 오야코돈 정식(親子丼 定食-닭고기와 계란 요리로 부모와 자식이라는 의미의 요리), 오사카나 정식(お魚定食), 지중해풍 파스타 등 계절에 따라 교체되는 메뉴도 있긴 하지만 모두 다 인기 메뉴로 정해졌다고 했다.
혹시 카레를 먹고 싶어서 오는 손님이 오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루팡 셰프는 구레나룻을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까칠까칠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럼 가까운 카레 전문점을 소개해 주고 그곳으로 가라고 하면 됩니다.’
루팡 셰프의 플레이팅 솜씨는 일부러 멋을 내지는 않았지만 접시에 담긴 음식이 무척이나 식욕을 부추기는 매력이 있었다. 음식마다 어울리는 다양한 모양의 접시를 내는 일도 내가 담당한 일이었다. 음식의 크기와 걸쭉한 정도에 따라 움푹 파인 접시를 내거나 납작한 접시, 타원형 접시 등 미리 숙지하여 체크하지 않으면 또 호되게 야단맞기 때문에 항상 출근 즉시 메뉴를 확인해야 했다.
셰프의 뇌 구조는 정말 남달랐다. 존경해 마지않는 전지전능한 셰프 덕분에 예술적, 과학적인 관점에서의 음식에 대한 식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프들의 능력과 프라이드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