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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Jun 30. 2024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하여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들이닥쳤을 때 왜 그런 일이 필자에게 일어나고, 그 슬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똑바로 바라보고자 모든 것을 멈추고 길을 떠났다. 삶은 무엇이며,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과 사는 무엇이고, 왜 살아야 하는지 진리를 찾아 전국에 족적을 남기고 돌아다닌 지도 5년이 지났다. 5년을 길 위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숨조차도 쉴 수 없이 가슴이 저미도록 아프고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한 시간들을 길 위에서 방황하며 길을 찾아 헤맸다. 살고 싶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깨달았을까? 여기에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우리의 삶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 명제다. 그 명제를 잘 알면서도 우린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은 왜 항상 불안정할까? 너무 철학적인 질문은 접기로 하고, 이번엔 필자가 전국을 여행하면서 겪었던 보이지 않은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린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각자의 종교와 신념에 따라 모두 다른 견해를 갖고 있겠지만, 필자는 보이지 않은 현상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굳이 따진다면 긍정에 점수를 더 준다고나 할까.


  그 이유는 ‘제행무상’이란 말 때문이다. 이 말은 만물은 항상 생사와 인과가 끊임없이 윤회하므로 한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물리학자인 김상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이란 책을 보면 그 해답이 명확하다.


  우리의 몸은 모두 원자로 되어 있고, 죽음 이후에도 원자는 남는다고, 죽음이란 원자의 소멸이 아니라 원자의 새로운 배열이므로 내가 죽어도 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흩어져 다른 것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간다는 말은 은유가 아니라 과학적이라는 것. 우리는 원자를 통해 영원히 산다는 것. 죽어서 흩어진 원자는 나무도 되고, 흙도 되고, 의자도 되고, 비도 되고, 바람도 되고, 꽃도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린 죽으면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 곁을 떠나간 선조들,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은 비로, 바람으로, 나무로, 꽃으로, 나비로 우리들 곁에 항상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이 세상에 운좋게 생명을 부여받아한 세상을 살다 가는 것이다. 가족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자식도 낳고 하면서 너무나 짧은 생을 전광석화처럼 순간을 살다가는 것이다.


  어쨌든 필자는 새벽에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어둠이 서성이는 창가에 달빛이 젖어있는 날이었다. 그날도 첫새벽에 길을 떠났다. 새벽길을 운전하고 가다 보면 힘들기는 하지만 생동감이 있어 좋다. 새벽길을 달려 도착한 곳이 선자령이었다. 화가인 동생과 한번 다녀간 곳이라 별생각 없이 산길로 접어들었다.


  아직 어둠이 머물고 있던 선자령 고갯길을 막 지나가려고 할 때 검은 그림자들이 필자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아니었다. 순간 무섭지는 않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아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검은 그림자는 코앞에 와서 섰다. 필자는 그냥 눈을 감았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다 보면 반 무당이 된다. 이것을 우린 연륜이라고 한다. ‘내가 오늘 여기서 죽을 팔자인가’ 생각하니 죽을 팔자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현상인가 숙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필자는 미신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부정하지도 않는다. 또한 필자는 귀신을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12지간에 첫 번째이고, 생일이 봄이라 큰 목에 기운을 갖고 있고, 전직이 검객이라 검의 서늘하고 강한 기가 합쳐져 맑고 강한 기가 몸에 흐르기 때문에 나쁜 기운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밝고 긍정적인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니 약간의 혼란스러움과 궁금함이 앞섰다.


  필자는 의문이 드는 일이 생기면 명상을 하는데 이런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설사 귀신이라 해도 내가 악한 마음을 먹지 않았는데 나에게 왜 이런 현상을 보이는 것일까. 의문의 의문이 들었었다. 이대로 돌아가자니 새벽길을 달려온 게 억울하고, 그렇다고 그냥 가자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심연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이고, 사람보다 더 무서운 건 바로 나 자신인데,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닌가. 설사 내가 오늘 여기서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 해도 억울할 것도 없고, 어차피 죽음이란 죽은 자의 몫은 아니고, 살아있는 자의 몫이므로 유시유종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떴다.


  그 순간 눈앞에 선 검은 그림자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음침한 산길은 희미하게 길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사람도 없는데 웅성웅성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길을 걸어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가족들이 이승보다 저승에 더 많으니 자기들이 알아서 지키러 왔구나.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가끔 일어난다. 그게 꼭 심신이 미약하거나 몸이 허약해서 그런 현상이 보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여행을 하다 보면 위험한 순간순간을 많이 맞닥뜨리는데 아슬아슬하게 생명에 위험을 느끼다 보면 그 순간 보이지 않는 누군가 도와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런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 혹시 신이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수호신이 지켜주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안도하며 신께 감사하게 된다.


  어쨌든 우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상은 보이는 것이 다 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세상엔 너무 많다. 선자령을 돌아 계곡으로 내려왔을 때는 국사당에서 살풀이굿이 한창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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