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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Nov 10. 2024

삼식이

  우린 언제부터 은퇴하고 집에서 하루 세끼 밥을 먹는 남편들을 일컬어 삼식이라고 불렀을까? 가부장적 사회가 낳은 새로운 신조어가 아닌지. 이런 언어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우울하고 쓸쓸하지 않은가. 어찌 보면 가부장적 사회는 여성들만 억압받은 게 아니다. 남성들도 억압했다. 예를 들어 남자는 태어나 딱 세 번만 운다. 남아일언중천금이다 등등. 뭔 개소리고 헛소리인가. 아프면 울고 힘들면 우는 것이다. 남자들도 입만 열면 공수표를 날리고, 입이 가벼운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쨌든 중년의 남편들은 퇴직하고 집으로 들어온다. 사이가 좋은 부부는 그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며 지낸다. 여행도 가고, 취미도 같이 하면서 즐겁게 산다. 시장도 봐다가 음식도 함께 만들어 먹으며 서로를 챙기며 어딜 가나 손을 잡고 간다. 누구나 꿈꾸는 부부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부부도 많다. 서로 대화도 되고, 취미도 같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불화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등산을 좋아하는 남편과 등산을 죽도록 싫어하는 아내라면 불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이가 좋은 부부도 때론 삼식이 때문에 힘들 때가 있는데, 그렇지 못한 부부는 집에만 있는 삼식이 남편이 반가울 리가 없다. 삼식이 남편 때문에 속에서 열불이 난다는 사람도 있고, 사사건건 집안일을 간섭하며 잔소리를 달고 사는 남편도 있다고 한다.


  사회는 그동안 수고 했다고 이제 그만 편히 쉬라고 하지만 쉴 수가 없다. 일하기 바빠서 가족이라 해도 서로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 간에도 겉돌며 외롭고 쓸쓸하다고 한다. 예전에는 가장의 권위로 가족을 지배할 수 있었지만, 퇴직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머리가 커버린 자식들과 마누라는 예전처럼 가장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깨가 처진 가장들은 주눅이 들어 가족들의 눈치를 본다.


  예전에 관악산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데 움직이지도 못하는 남편을 데리고 와서 돗자리를 깔고 앉혀놓고 물과 음식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산에 오르는 마누라를 보고 몸이 불편한 남편이 뒤에서 소리쳤다. “빨리 와, 빨리 와, 빨리 와야 해.” 마누라인 여자는 대답도 안 하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유유히 산속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정확히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필자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아내를 기다리며 생리적인 현상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여러 가지 생각에 감정이 미묘했기 때문이다. 저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싶어 삶이 너무 비참해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다.


  하여간 삼식이든 아니든, 남편이란 존재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남편은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불편하다. 그러니 삼식이가 집에 있거든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지. 살아갈 날들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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