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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Nov 17. 2024

건강한 나르시시즘



  친구 아들이 사고를 쳐서 후다닥 결혼식을 올렸다. 처음엔 아들이 취직을 하자마자 결혼을 한다고 하니 친구는 노발대발했다. 이제 겨우 밥벌이를 하게 되어 기대하고 있었는데 덜컥 사고를 쳐서 여자를 데리고 오니 그럴 만도 했다. 아직도 산업전선에서 현역으로 군무하는 친구는 앞이 캄캄 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결혼시키고 며느리와 손자까지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다. 결혼식이 끝나고 얼마 있다가 손자가 곧바로 태어났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처음엔 못마땅해 하더니 꼬물대는 손자 녀석을 보고 친구의 입이 귀에 걸렸다. 자랑하기 바빴다. 남이 봐도 예쁜데 친손자이니 오죽하겠는가.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나 자신이 명품이라 여기며 살았다. 그 어떤 물질보다 내면의 평화와 단단함을 원했고, 비록 부모님의 사랑은 오래 받고 자라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우수한 부모님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이 정도면 행운이라 여기며 기죽지 않았다. 누가 들으면 교만하다 하겠지만,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나르시시즘이 강한 나는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도 단 한 번도 누굴 부러워하거나 질투를 느껴본 적이 없다. 길을 몰라 헤매기는 했어도 모자라면 열심히 노력해 채우면 되니까 언제나 자신만만했고, 누굴 만나도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친구의 손자 자랑에 나의 나르시시즘은 한순간에 무너져 백기를 들고 말았다.


  니체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각자 ‘개인 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한다. ‘개인 권력’이란 뭐 특별한 것이 아니고, 상대가 나와 비슷하면 그 상대가 잘 되는 것을 보고 시기와 질투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월등한 사람은 쉽게 인정하고 그들을 시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아예 포기하는 것이다.


  나와 그 친구도 비슷하다. 특별히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못 사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부모님 지원 없이 자수성가 해 부족함 없이 살아간다. 다만 그 친구는 아들이 둘이고 나는 하나다.


  우리가 살면서 박장대소하는 날이 일 년에 몇 번이나 될까? 아마도 손에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것이다. 웃을 일이 별로 없던 친구는 손자 때문에 얼굴형이 바뀌고 있다. 따뜻하고 포근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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