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연행 Sep 25. 2024

며느리 카드를 쓰고 싶은 시어머니 2

아들의 효도버튼

글을 올리고 시어머니께서 내려가신 지 일주일째, 나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중이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우선 명절 지나고 학교에 출근해서 교무실 선생님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응은 역시나.. 그러나 과하지는 않은 표현으로...

우리 부장님의 지인들은 그래서 둘이나 시댁과 연을 끊었다는 둥, 또 다른 수학선생님은 본인 시어머니도 카드 달라는 말씀만 없지 사달라고 하는 거 무지 많다는 둥... 그러다 내 입을 막은 또 한 사례가 내 옆자리 선생님한테서 나왔다. 

"저흰 이번에 시댁 안 갔어요."

"왜요?"

"남편이랑 시어머니랑 대판 싸웠거든요. 저희 어머니는 해달라고 하는 것도 많으신데 그렇게 구박을 하세요. 본인 화나신다고 쿠션이든 뭐든 물건도 집어던지세요. 심지어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요..."

...

평소 말도 행동도 너무 참하고 예쁜 선생님인데, 뭐가 그렇게 아들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드셔서 그러실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듣다가... " 그나마 신용카드는 양반인 거네요...ㅎㅎㅎ" 하고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그나저나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몇 가지로 정리를 해보았다.

첫 번째, 그냥 모른 척 지나간다. 어차피 서울-부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자주 뵙지 못하기 때문에 내년 1월 설에나 만날 테니 그때까지 모른 척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마음이 매우 불편할 듯하다. 특히나 효자 남편이 마음이 불편하겠지...

두 번째, 어머니께 나도 뻔뻔하게 맞대응을 한다.

   " 어머니~ 저도 어머니 카드 한 장 주세요~ 저도 제 친구들이랑 지인들한테 우리 시어머니가 카드 주셨다고 자랑하고 싶어요~...."

이렇게 말했을 때 어머니가 뭐라고 하실지 정말 궁금하다. 

세 번째, 체크카드를 발급해서 매달 시댁가족 회비 모으는 돈을 시댁가족 통장에 넣지 않고 체크카드 결제비로 사용한다. 그럼 한도는 정해져 있어서 어머니가 싫어할 수도 있다. 

네 번째, 내가 무조건 신뢰하는 남편의 누나, 시누이에게 의논을 해서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사실 이 방법이 가장 먼저 떠오른 방법인데 문제는 지금 시누이가 한국에 없다는 사실이다. 추석 연휴 동안 휴가를 내고 프랑스에서 열리는 무슨 대회에 참가 중이라 당장 의논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다섯 번째, 어머니께 카드를 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린다. 만약 친정 엄마가 카드 달라고 말씀하시면 내가 펄쩍 뛰면서 화를 낼 것이 분명한데, 시어머니라 말을 못 하고 있는 거기 때문이다. 

"저희 지금 형편에는 너무 어려워요... 죄송해요 어머니..."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뭔가 이 방법은 분위기가 좋지 않을 거 같다.

그렇다면 사실 남편이 거절하는 것이 맞는데... 바보 같은 남편이 효심이 발동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찍 퇴근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어머니께 가끔 안부 전화를 드렸다. 우리 어머니는 '투머치토커' 시라 한 번 전화를 하면 기본은 30분이고 한 시간도 말씀을 하시는 분이다. 나는 말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 주로 어머니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그렇게 친구분들 이야기, 친척들 이야기, 본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다. 그래서 한 번 전화드릴 때는 시간이 넉넉한지 확인하고 내가 조금 여유가 있을 때 전화를 드려야지 바쁠 때 전화를 드리면 끊기가 매우 힘들다. 

그동안은 멀리 계시니까 전화로라도 효도해야지 하며 일명 들어드리는 '전화효도'를 해왔다. 

그게 내 마음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는 그런 마음이 잘 안 생긴다. 

게다가 어머니가 이렇게 아들의 효도(?) 버튼을 '넌지시' 건드려서 아들이 재깍 반응을 할 때면 내 마음은 점점 더 어머니로부터 멀어져 간다. 잘해드리고 싶다가도 그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린다. 

점점 내 진심은 사라져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며느리 카드를 쓰고 싶은 시어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