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조퇴
교직 생활 20년 차가 되면서 정말 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을 만나왔다. 다행히도 그동안은 뉴스에 나오는 그런 어렵고 힘든 부모님과 아이는 만나지 않은 거 같다. 그런데 올해는 해도 해도 너무 버라이어티 하다.
1학기에 전입 온 우리 반 아이가 도무지 학교에 적응을 못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담임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다. 아이 어머니도 모르겠다고 하신다. 이유 없이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를 아침마다 깨우고 차 태워서 학교를 보내다가 아이와의 싸움에서 진 날에는 힘겨운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죄인처럼 말씀하신다.
‘아이가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한다’고...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면 아침마다 어머니께서 태워주시면 어떠냐고 권유도 해보고, 친구 문제라고 하기엔 그래도 친한 친구들이 생겨서 집에도 놀러 가고 잘 지낸다. 딱히 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 조건이 없어 보이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머니 말씀이 아이가 무서운 선생님은 싫어하고 힘들어한다 하셨는데 내가 무섭지 않아서 좋으시다고...
쩝..
게다가 난 원래 무서운 사람이 아니고 다른 선생님들도 무서운 선생님이 없다. 요즘은 옛날처럼 무섭게 할 수도 없는 시대라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친절하다.
그런데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학교라는 제도에 적응해서 그냥 여타의 아이들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갔다가 집으로 와서 공부하고 쉬다가 자고 다음날 또 일어나서 학교 가고 하는 이런 평범한 일상이 왜 이 아이에겐 이렇게도 힘든 일인 걸까?
2학기 개학 첫날부터 무단결석을 하고 둘째 날 등교하더니 1교시 끝나고 집에 가고 싶단다. 속이 울렁거려서 조퇴하고 싶다고..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 있었던 상황이라...
집에 전화드려봐야 어머니께서
'선생님~ 제발 학교에 있게 해 주세요. 조퇴 안된다고 선생님께서 강하게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 뻔하기에 그냥 보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학교 왔는데 한 시간만 하고 가는 건 너무 하니 보건실 가서 약을 먹어보고 한 시간만 더 있어보라고 했다. 그래도 속이 안 좋으면 어머니께 연락드려보자고.
마침 쉬는 시간에 다른 아이들도 찾아와서 전입생을 그렇게 돌려보냈는데..
아이가 2교시 끝난 후 사라져 버렸다.
조퇴를 바로 안 시켜줄 거 같으니까 무단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학교에 가방과 핸드폰까지 모두 두고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고 학교를 탈출하면서 반 친구들에게는 자긴 또 전학 갈 거라고 말하고는 나갔다고 한다....
이런 일은 참 드문 일이다.
아니 솔직히 교직 생활 20년 만에 처음이다.
물론 1학기에 우리 진우가 갑자기 사라져서 무단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다시 들어온 적은 있다. 그래도 진우는 다시 들어는 왔다.
그런데 이 아이는 뭐지?
처음엔 나한테 반항하는 거 같아 화가 났다.
'아니 어디서 겁도 없이 그냥 학교를 나가? 이게 무슨 행동이지?'
그다음엔 걱정이 되었다. 저러고 그냥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고 좀 있다 아이가 집으로 갔다는 연락이 와서 안전에 대한 부분은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무단지각, 무단결석 등과 아침마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선생님이 제발 어떻게 좀 해달라'는 간절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학교가 싫은 아이를 무슨 수로 잡아둬야 할까?
상담도 여러 번 하고 친한 친구들과 자리도 가까이해주고 교무실 오면 맛있는 간식도 나눠주고...
다른 아이들에게 쏟을 시간과 에너지를 이 아이에게 몇 배는 더 쓴 거 같은데
그 노력이 너무도 무색하게...
그 후로도 지금까지 아이는 무단(미인정) 결석과 무단(미인정) 지각 및 조퇴를 반복하고 있다.
출결 일수라도 채워서 2학년 진급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텐데, 지금은 어린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지만 나중에 더 크면 후회하지 않을까...
그 나이에 남들 하는 건 하고 살아야 할 텐데 말이다.
학교와 공부, 배움이라는 것이 다 때가 있다는 옛 말..
나이가 들어보니 알 거 같은데
어릴 때는 그걸 모른다는 것이 함정.
그래서 부모가 필요하고 선생님이 필요하고 어른이 필요한가 보다.
먼저 살아본 우리가 잘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이끌어주어야 하는 건데 그 의무와 책임감에 오늘도 나는 고민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