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너의 자리는 어디니?
중학교 1학년들을 대하다 보면 가끔 여기가 초등학교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저런 기본적인 예의범절, 생활태도도 배우지 못하고 왔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들 집안에서 귀하게 자라는 외동이거나 형제자매가 많아야 기껏 두세 명이기에 늘 관심받고 존중받고 결핍 없이 자라온 아이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조금의 불편함도 참기 힘든 아이들...
4주 정도 만에 교실 자리를 바꾸는 날이었다. 우리 반은 특별히 배려하고 챙겨야 하는 아이들이 많은 지라 자리를 단순히 뽑기로만 바꾸면 큰일이 난다. 학급 내에 쌍방 학폭으로 넘어갔던 아이들 둘이 있고, 아이들이 싫어하는 지적 장애 학생이 한 명 있고 분노 조절이 힘들고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학생도 한 명 있고, 경계선 지능으로 여겨지며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학생도 한 명 있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학생도 한 명 있고, 떠들기 좋아하는 학생들이 제법 있고...
이 아이들을 서로 멀리 떨어뜨려 놓고 도움이 필요한 친구 곁에는 조금 착한 아이들을 가까이해주고 뒤에 앉았던 아이들은 앞으로, 앞에 앉았던 아이들은 조금 뒤쪽으로 배치하기도 한다. 관심을 좀 더 줘야겠다 싶은 아이들은 일부러 맨 앞 교탁 바로 앞자리에 앉히기도 하고 시험 기간이 다가와서 앞자리에서 공부를 꼭 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아이들은 또 배려해서 그렇게 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34명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자리 배치를 하다 보면 신경을 나름 쓴다고 해도 어딘가 허점이 있기 마련이라 모든 아이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자리에 특별히 불만이 있는 학생은 다음번 자리 바꿀 때 원하는 자리로 배치하거나 원하는 친구 가까이로 보내주기로 약속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학생들은 별 불만 없이 자리를 바꾸고 수용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적 장애가 있는 우리 반 아이가 매우 불만을 표현했다. 어쩌면 자리 배치가 가장 어려운 아이가 이 아이라서, 나도 유독 신경을 많이 쓰는데 오늘따라 '떼를 쓰고 따지듯이' 대들었다. 처음엔 나도 이런저런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고, 대신 다음번에는 꼭 다른 자리로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며 차근차근 설명을 하고 달래주었다. 그런데도 이 아이는 똑같은 질문을 수십 번을 반복하면서 화를 내고 떼를 쓰고 불만을 계속 터뜨렸다. 보다 못한 다른 아이들이 '이제 그만해. 선생님이 다음에 바꿔주신다고 하잖아'라고 말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아이의 상태가 너무 나빠 보여 결국 교실에서 분리하고 상담실에 가서 다시 설명을 하고 달래주느라 두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그러고 나니 너무 힘이 들고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리고 종례시간...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자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이 아이 말고도 다른 아이들에게도 뭔가 이야기를 해줘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희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기억나니?"
대부분 기억 안 난다고 했다.
"당연하지. 6년 동안 앉았던 자리를 어떻게 다 기억하겠니.
지금 중학교 1학년에 11월 한 달 동안 어디 앉았었는지 어른이 되면 기억이 날까?
교실에서 내가 어느 자리에 앉는가가 지금은 너무도 중요하겠지만, 어른이 되면 지금 이 자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희들 인생에서 잠시 스쳐가는 이 한순간의 자리, 즉 위치가 나중에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달도 채 안 되는 동안 잠시 앉았다 가는 이 교실 자리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나중에 너희가 10년 후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에서 어느 자리에 있을지, 어느 위치에 있을지 그걸 생각해 봐. 지금 자리는 선생님이 정해준 자리지만 10년 후 그 자리는 너희가 직접 만드는 자리가 될 테니까."
그리고 또 참을성 없이 화를 내는 아이들에게 '참는 것'에 대해서도 말을 했다. 우리 어릴 때는 억울해도 참고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혼이 나도 참고, 그런 것이 일상 다반사였던 시대였다. 그런 억울함 때문이었을까?
우리 세대가 어른이 되고 나서 아이를 키울 때는 자기주장 분명하게 하는 것을 가르치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땐 참지 말고 이야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은 가끔 도가 지나칠 때가 많아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 않고 불편함을 참지 못하며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자기 일이 아닌 것에는 "왜요?"라는 물음표를 던지는 아이들도 또한 많아졌다.
그런 것이 너무 당연한 아이들에게 이 말도 꼭 해주고 싶었다.
"너희는 지금 중학생이고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이야. 학교를 다니면서 어른이 되는 걸 배우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 어른이 된다는 건 참는 법을 배우는 거란다. 학교라는 사회도 하나의 사회생활이라서 참고 이겨내는 법을 배우고 문제를 더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란다. 그래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어."
그리고,
"세상을 살다 보면 참아야 할 때도 있고 참지 말아야 할 때도 있어.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참아야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더라. 그런 때가 언제인지를 판단하는 법을 배우는 것 또한 너희의 학창 시절이야."
오늘 나의 말들이 아이들에게 조금은 가 닿았을까?
사뭇 진지해진 아이들의 표정 속에 그래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