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점도 있더라
목이 아팠다. 아프면 큰일이다 싶어 부랴부랴 집에 있던 약을 챙겨 먹었다. 그런데 그걸로는 안 되는 거였나 보다. 다음날 출근을 했는데 목소리가 쉬어서 소리가 제대로 안 나왔다. 수업은 해야겠고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 단원이라 억지로 쥐어짜서 수업을 하고 왔다. 퇴근해서 바로 병원을 가서 약을 처방받고 내일이면 좀 낫겠지 했는데, 다음날은 목 상태가 더 나빠졌다. 아무리 억지로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
목소리의 높낮이가 내 의도대로 나오지 않고 쉰 소리와 애매하게 맹맹한 소리가 크지도 않게 나오다 말 다를 반복했다. 오늘은 수업이 5개나 있는 날이고 진도도 빡빡해서 쉴 수도 없고 큰일이었다.
결국 설명은 보류하고 학습지에 적어야 할 것들을 칠판 가득 필기로 대체하고 참고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학교를 다닐 때는 아픈 게 제일 싫다. 아프다고 마음대로 병가를 낼 수도 없고 병가를 내면 그날 하지 못한 수업들이 전부 다음날, 그다음 날 그래도 안되면 다음 주까지 넘어가서 하루종일 빈 시간 없이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입원을 하든가 법정 전염병이면 다른 방법들이 있는데, 그냥 지금처럼 아프면 답이 없다. 그래서 차라리 아플 거면 방학 때 아파라 하는 마음으로 다닌다.
올 가을은 감기가 두 번이나 걸렸다. 원래 감기도 일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할 정도로 스스로 관리를 잘한다고 하는 편인데, 자꾸 아프니 속이 상하다. 비타민도 챙겨 먹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적당히 잘 자는데 왜 아픈 거야! 속으로 짜증이 나서 투덜거려 보았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싶기도 하고..
요즘같이 빛나는 가을의 황금 같은 주말에 나들이도 못하고 집에서 약을 먹고 잠만 잤다. 이틀을 내리 그렇게 보내고 월요일에 다시 출근을 했다. 약을 먹은 멍한 상태는 내가 딱 싫어하는 컨디션이라 맑은 정신을 가져보고자 커피도 찐하게 마셔보았는데 소용이 없다.
기침은 왜 그리 또 심하게 나는지...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한번 터진 기침은 멈출 줄을 모르고 가슴을 온통 들썩이며 저 깊숙한 곳에서 내장을 끌어올리는 듯한 기침이 난다. 하도 기침을 해대서 속이 아프다. 이 무슨 중병도 아니고 상태가 왜 이래!
아플 때 좋은 점은 딱 하나 있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 둘도 없는 사랑꾼처럼 변한다는 것.
기침을 하고 있으면 따뜻한 물에 도라지청에 다 갖다 먹여주고, 주말엔 아이들 삼시세끼 밥도 다 챙겨주고 설거지까지 혼자 척척 해낸다. 또 혼자 마트 가서 몸에 좋다는 거는 이것저것 다 사 온다. 어떨 때는 수삼을 잔뜩 사 와서 우유와 믹서에 갈아서 꿀을 넣어 주기도 하고, 보통은 한우를 잔뜩 사다가 기력 보충을 해야 한다며 맛있게 구워다 준다. 요즘엔 워낙 훌륭한(?) 남편들이 많아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는 내가 아플 때 남편의 변화가 만족스럽다.
그런데 이번엔 학교에서 우리 반 예쁜 아이들이 걱정을 하면서 메시지를 주었다.
노란 포스트잍에 사랑스럽게 그린 그림과 짧은 메시지들...
곱게 받아서 교과서 내지 안쪽에 붙여보았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메시지 하나에 나는 또 감동한다. 울컥..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포스트잍을 건네주며 방긋 웃는 얼굴들이 너무 해맑다.
내가 이래서 학교를 다니지...
어디 가서 저런 순수하고 맑은 웃음을 받아볼까~~
그래.
아픈 건 싫지만
나를 걱정해 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줘서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