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글짓기

생활기록부 행발쓰기

by 수연행

학년말이 되면 가장 바쁜 일이 생활기록부 작성이다.

자율, 동아리, 진로 특기사항, 과세특 등등 기본적인 것들을 입력하고 나면 가장 공들여서 해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행발'이라 부르는 행동발달특기사항이다. 한 해동안 반 아이들을 잘 관찰하고 겪은 여러 일들을 토대로 이 아이는 어떤 성향을 보이고 이럴때 이렇게 행동하는 아이이며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나갈지 예상한 것을 '긍정적'인 문구로 적어야 한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우리 학교가 있는 지역은 한 반에 35명, 많게는 36명까지 있어서 담임선생님들이 이 아이들 하나 하나를 정성들여 적어주느라 머리를 쥐어짜낸다.

그래서 해마다 12월은 우스개 소리로 글짓기를 하는 달이다.

왜 그런고 하니...

객관적인 내용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적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여주는 여러 가지 모습에 장점이나 칭찬받을 만한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학급의 아이들을 크게 네부류로 나눈다면 첫번째는 일명 엄친아 스타일, 착하고 공부 잘하고 행동도 모범적인 스타일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적어줄 것이 차고 넘친다. 있는 그대로 적어도 쓸 내용이 너무나 많고 때로는 더 잘 적어주고 싶은데 나의 모자란 글 실력에 속이 상할 정도이다.

두번째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그래도 학교 생활을 일 년간 착하게 잘 해온 보통의 평범한 대부분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장점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련 에피소드가 있어야 더 많은 내용을 적어줄 수 있다. 그래도 힘들지는 않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과장되게 칭찬해주고 좋게 적어주어도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담임 입장에서 나를 힘들게 한 아이들이다. 흡연, 학폭, 선도 등으로 내 맘고생을 정말 오지게도 시킨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도 사실 그 행동이 나쁜 거지 아이가 나쁜 아이는 아니기 때문에 정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애정이 없진 않고 오히려 이런 아이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고 적다 보면 앞으로는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할거라는 긍정적인 기대감을 잔뜩 적게 된다.


네번째가 가장 곤란하다. 14살이라 미성숙한 인격체니 가르쳐야 하고 가르쳐서 달라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가 일년간 가르치고 노력해도 본성이 바뀌지 않는 아이..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 한 두명은 쓰기가 가장 어렵다.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적어보면,

집중력이 매우 낮고 산만하며 약자에 대한 무시와 비웃음, 교묘한 괴롭힘 등을 생활 속에서 보여주는 학생임. 학급의 특수아동에게 함부로 대하며 뒤에서 욕을 하고 장애인 비하를 일삼는 사고방식을 지녀 언행에서 그런 생각이 다 드러남. 수업 자세가 바르지 않고 삐딱하며 심지어 떠들기도 함....


나의 진심은 이런 마음이고 실제로 그 아이가 보인 강약약강의 모습에 나는 가장 분노하고 실망하고 화가 나는 지점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적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그 아이의 장점을 찾아보았다. 좀더 객관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좋게 보이는 부분만 추려서 겨우 다시 문장을 만들었다.


주요 교과 학업 성취도가 비교적 양호한 학생으로 수업 시간 중 집중력을 보일 때가 있으며,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킨다면 학업 성취도에서 더 높은 결과를 이룰 가능성이 있음. 1학기에 학급 멀티도우미 역할을 맡아 다양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책임감을 보여주었음. 주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자신의 언행을 조율하는 유연한 성격으로 교사와의 신뢰를 형성하고자 노력함. 자신의 열망을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며, 앞으로도 책임감을 바탕으로 학업에서 더욱 발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됨.


정말 이렇게 적어도 될까...

위에 적은 두 아이가 모두 같은 아이라는 것을...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래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이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변화와 발전 가능성을 보고

생활기록부를 적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2월을 열심히 글짓기를 하며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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