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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행 Oct 29. 2024

호구 남편

언제까지 호구짓 할래?

오랜만에 남편이 지인을 만나 식사를 하고 왔다. 행주산성에서 닭볶음탕을 점심으로 먹고 카페 다르모에 가서 차를 마시고 더츠커피팩토리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64겹 페스츄리를 사서 집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페스츄리를 그 지인에게도 사서 주고 왔다고 한다.


"당연히 밥은 자기가 샀을 거고, 그 사람이 커피 산 거야?"

아니란다.

"내가 다 샀는데?"

"왜? 그럼 자기가 밥도 사고 차도 사고 빵도 사서 준거야?"

"응. 그 사람 회사도 다른 데 옮겨서 힘들어. 내가 그 정도는 해줘야지...."


그럴 수 있지. 뭐 오랜만에 만나서 밥도 사주고 차도 사줄 수는 있지...

그때까지는 퍼주는 남편 성향을 알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이야기 나누다가 이어지는 말이..

"근데 이번에 그 사람 푸꾸옥도 갔다 오고, 뭐 태국도 갔다 왔대"

남편이 전부터 다음 여행은 푸꾸옥을 한번 가자고 해서 관심이 있었던 여행지였기 때문에 나한테 말을 꺼낸 거였다. 한참을 듣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사람 어렵다면서..? 그런데 해외여행을 최근에 두 군데나 다녀왔다고?"

"그러네...?" 하면서

남편도 잠시 말이 없었다.


우리보다 형편이 좋은 거 같은데? 하니까 남편도 순간 좀 그랬나 보다. 

늘 더 베풀기를 좋아하는 남편이다 보니 누굴 만나면 당연히 밥값을 내고 다른 사람에게 얻어먹고 오는 적은 거의 없는 사람이다. 남은 커녕 가족에게조차 얻어먹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댁을 가도 우리가 밥값을 내고 친정을 가도 우리가 밥값을 낸다. 

회사에서도 회식을 하고 집에 갈 때 택시나 대리기사를 부르면 남들 다 보내주고 자긴 제일 마지막에 오는 사람이다. 후배들하고 먹을 때는 1차도 자기가 내고 2차도 자기가 내고 심지어 3차도 자기가 때도 있고 취한 후배들 택시비 주면서 먼저 택시 태워 보내고 오는 사람이다.


왜 그렇게 편하게 못 얻어먹냐고...

왜 꼭 자기가 다 내야 되냐고...


요즘은 술자리가 뜸해 그나마 낫지만, 아직도 지인을 만나면 저런다. 

그러다 보니 이런 남편의 성향을 아는 사람은 계속 계산을 하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남편을 호구로 보는 거 같아 옆에서 나는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그런 거 같다. 자주 만나는 사람은 아니지만 좀 괘씸하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만나자고 약속을 했으면 커피 한 잔은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남편 말이 더 가관이다. 

"먼저 내겠다고 안 하는데 어떡해.. 자기가 사겠다고 해야 내가 안 사지..."

에휴....

"자기야. 자기 별명 하나 짓자. 호구 남편...ㅎㅎ" 

이젠 그 사람 그만 만나라고 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는 남편 탓도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잘못이지.. 

자기 돈은 어디 땅 파서 그냥 나오는 거야? 

왜 그렇게 있는 척하고 싶은 건데? 

왜 그렇게 돈 쓰는 데 헤픈 사람처럼 보이는 건데? 


오늘도 이렇게 말을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무리 이야기한들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언제까지 호구짓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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