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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학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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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행 Aug 31. 2024

학교 일기

누나 같은 아이 동생 같은 아이

우리 반에는 경계선 장애인지 지적 장애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 아이가 있다. 여러 번 상담에도 부모는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기에게 맞는 특별한 교육, 친구들과 선생님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특별한 배려를 받지 못한 채, 학교와 교실에서 그저 적응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며 겉돌 수밖에 없다. 우선 지적 능력이 초등학생 수준이고 사회성 발달이 더디어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 힘들고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까를 생각하지 못한다. 


학기 초 2주 정도는 매우 심한 상태라 여겨졌다.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상관없이 불쑥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앞으로 나오고 상황과 상관없는 엉뚱한 질문을 했다. 목소리도 꽤 큰 편이었는데 다른 친구들의 사소한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교실 책상 자리 정리는 전혀 안되었고 책상 위는 온갖 책과 학습지, 연필 깎은 것과 지우개 가루 등 책상 위와 바닥의 지저분함은 정말 심했다. 심지어 침을 튀기고 책상에 침을 묻히기도 하며 다른 친구의 책상에 코딱지를 붙이기도 했다. 아이들 진단평가 시험을 보는 날이 최악이었다. 시험 보는 내내 그 조용한 시간에도 가만있지 못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심지어 답을 말하듯 숫자를 혼자 말하기도 했다. 감독교사의 지적에도 가만히 있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고 바로 상담을 했다. 너무도 단아하고 아름답고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어머니의 모습은 내가 아는 이 아이와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속상한 마음의 물결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아이에 대해 차분하게 말씀을 하셨는데 아이가 큰 문제없이 학교만 다니길 바란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미 교실에서 이 아이의 존재감은 너무 커져버렸고 친구들은 자신들의 어리고 철없는 행동은 뒤로 한 채 이 아이의 좀 더 어리고 철없는 행동에 초점을 맞춰서 불만을 터뜨리고 공격적이고 날 선 목소리를 냈다. 이미 학급 분위기도 엉망이었다. 우리 학급엔 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종류의 장난꾸러기와 말 그대로 어려운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가 좀 더 조용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약을 먹이기로 하셨다. 초등학교 내내 어떻게 보냈을지 상상이 안되는데, 어머니 말씀은 더 의아했다. 초등 저학년 때만 약을 먹이고 고학년 때는 그냥 학교를 다녔으며 심지어는 선생님들로부터도 제대로 된 피드백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럴 리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선생님들의 직무 유기일 텐데..

그 아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 돌아가는 피해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믿을 수 없지만 믿어야만 하는 이야기를 듣고 좀 더 지켜보기로 했고, 확실히 약을 먹은 후부터는 조금 아주 조금 나아졌다. 


우리 민서는 에너지도 많고 그 나이에 따라 자기 목소리도 내고 싶어 했으며 분위기 파악이 안 되긴 하지만 또래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았다. 친구 따라 놀리는 것, 목소리 크게 이르는 것, 그러면서 온갖 활동에 다 참여도 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제대로 안 하는 것 등등 여느 또래와 비슷하지만 지적 발달과 사회성 발달이 더딘 아이.


매일매일 여러 아이들과 문제가 생겼다. 심지어 먼저 ‘맞짱 뜨자’고 싸움을 걸기도 하고 몸으로 자꾸 장난도 먼저 걸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런 불편함을 이르고 심지어 진짜 싸우기도 하고 하루하루 조용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민서를 챙겨주는 아이가 있었다. 3월 처음부터 친구들은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싫어하는 민서의 물건들을 누나처럼 정리해 주고 어질러진 책상 위를 다 치워주고 치우라고 말해주고, 수업 중 따라가지 못하거나 엉뚱한 행동을 할 땐 가르쳐 주기도 하고 알려주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의 짜증 섞인 또는 비웃는 듯한 말투가 아닌 진짜 누나가 남동생한테 가르쳐주는 것 같은 말투와 표정으로 민서를 챙겼다.

하도 신기해서 상담 차례가 되었을 때 불러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초등학교 때 같은 반에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었는데 그때의 경험으로 민서를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민서의 다름을 장애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걸 보면 아이들도 아나 보다. 조금 어리고 조금 다른 것을. 

다행히도 이 친구와 같이 민서를 누나처럼 챙겨주고 존중해서 대해주는 몇몇 아이들이 있다. 14살 아이들이라 그들에게 너무 많은 배려와 이해를 기대할 순 없지만, 그들 나름대로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함께 하는 시간이 지나다 보면 우리 아이들이 조금씩 사회성도 자라고 생각도 커지고 이해심도 커지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그날이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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