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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행 Sep 12. 2024

일 년에 한 번 화내는 날

진우이야기4

신규교사 때 가장 어려웠던 일은 화를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로 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였다.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을 대하면서 항상 웃는 얼굴로 미소만 지을 수는 없는 거니까..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인자하게, 때로는 무덤덤하게, 때로는 재밌게 등등 다양한 모습의 얼굴을 보여 줘야 하는 건데, 진짜 화를 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그 타이밍과 표현 방법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웬만해서는 화를 잘 내지 않는다. 나의 교육방침은 늘 ‘말’과 ‘진심’이었기 때문에 잘못한 일에 대해 학생을 혼내야 할 때는 화를 내지 않고도 엄한 말과 ‘네가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진심을 담아 훈육을 했다. 이 방법이 지금까지는 나름 잘 먹힌 거 같고 그래서 나의 학급 경영은 그다지 힘들지 않게 이루어졌다. 아이들에게 특별히 훌륭한 교사도, 못난 교사도 아닌 보통은 되는 거 같고, 때론 보통보다는 조금 더 좋은 교사라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지내왔다. 어쩌면 그동안은 내가 감당이 되고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아이들만 운 좋게 만나서일까.... 


 올해는 유독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반 아이에게 화를 냈다. 학기 초 우리 반 장난꾸러기라고 했던 진우한테 너무 화가 났다. 그동안 많은 사건과 사고, 생활교육위원회.. 하루에도 몇 번씩 불려 와서 야단맞는 많은 장난들, 싸움 등등 거의 4개월 가까이 기억도 못할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진우의 장난은 장난을 빙자한 괴롭힘, 상대방 입장에서는 폭력일 수도 있는 부분들이 많았고. 반복된 흡연 적발과 무단외출 등은 또래 1학년들과는 사뭇 다른 과한 모습들이 있었다. 


 그래도 난 이 학교에서 담임인 나마저 이 아이를 믿어주지 않으면, 챙겨주지 않으면 우리 진우가 마음 붙일 곳이 없을까 봐 겉으로는 무심한 척 해도 마음으로는 진심을 다해서 지도했고 믿어주었고 때로는 그냥 넘어가주기도 하고 해 왔다. 


 그러나 오늘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오라는 그 말을 너무도 지키지 않아 살짝 화가 난 상태였고 생활지도 선생님들도 진우의 행동을 아침부터 지적하고 있었다. 

난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수업 시작 전 교실 밖으로 불러 복도에서 혼을 내고 들여보내고 마무리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야단을 맞고 들어가는 아이가 뒷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한 마디로 '빡쳤다'는 단어로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저런 아이를 두고, 진심이라고는 1도 없는 저런 아이를 두고, 내가 담임이라고 저 아이를 챙겨주고 믿어주고 감싸주고 했었구나'..


순간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의 화와 훈육이 저 아이에게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지도할 수 없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나도 더 이상 너를 보지 않을 거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나도 너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이 아이를 어떻게 지도하는 것이 맞는 건지 다시 의문과 회의가 밀려왔다. 


내가 무능해서 저 아이를 바르게 인도할 능력이 없는 건지, 

이 세상 누가 오면 저 아이를 바른 길로 데려가줄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화난 감정을 쏟아내고 수업을 하고 다시 시간이 지나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화가 나면 화를 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은 해야 한다. 화를 내지 않고 참으면 그게 나를 향한 것이면 나에게 독이 쌓일 것이고 그게 나를 화나게 한 상대방을 향한 것이면 그건 내가 예상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화를 내고 나면 후회가 밀려온다.

아... 그렇게 말고

좀 더 세련되게 화를 낼 수는 없나?


법륜 스님은 말씀하시겠지... 

화는...

상대방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내 마음이 화를 내기로 한 거라고..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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