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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사요 Oct 10. 2023

IMF와 13만원

선택의 순간에는 시련이 함께한다

1999년 가을, 우리 모두는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낯선 길목 앞에 서야했다

 그 해 가을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었다. 1997년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며 오히려 몸집을 불리던 대우그룹이 드디어 삼성을 제치고 재계 서열 2위를 달성한 해, 하지만 가을이 오기도 전인 그 해 8월 워크아웃과 10월에 이어진 김우중 회장의 도피로 그룹이 해체되기 시작한 해였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았던 남자가 2005년까지 7년의 세월을 그 넓은 세계를 떠돌며 도피하게 했던 몰락의 시작점과 같이, 고향에서 유지의 아들로 누구보다 유복하게 자라왔던 내게 찾아온 시련도 IMF 시기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부터 시작되었다.

 

 뜻하지 않은 시련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고, 1999년 서울로 상경했을 때 나에게 남은 것은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은 13만원이 전부였다. 다니던 대학도 중퇴해야 했기에 학력은 고졸이었고, 서울에 특별히 아는 사람이나 비빌 언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국가부도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나라 전체가 끔찍한 고통을 겪던 그 때,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나를 믿었다. 

 

 누군가는 그때, 정부에서 대우그룹의 대출을 도와줬더라면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또 누군가는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1년 예산에 맞먹는 80조원대 가량의 대내외 부채를 어차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도움을 받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던 그때 전 재산 13만원으로 낯선 서울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나는 그 돈으로 정장 한 벌과 구두 한 켤레를 샀다. 


길을 잃고 절망에 빠졌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어떤 것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절망에 빠져 있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꿈과 열정,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런 것들은 결국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나는 딱 한 벌 있는 정장과 구두를 신고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자동차 세일즈에 도전하기 위해, 이미 그룹이 무너지기 시작하며 끝장나기 직전처럼 보이던 대우자동차에 입사했다. 기울어져가는 회사였지만, 입사할 때 제출하는 서류에 필요한 보증인조차 없어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에 고졸 학력이 전부라 세일즈에 필요한 인맥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었지만, 그런 열악한 조건과 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온전히 나의 선택에 따른 나의 책임이었다. 


 후에 서술하겠지만 우연히 들어선 자동차 세일즈의 길에서 대우자동차의 위기와 내가 처한 환경은 당연히 쉽지 않은 난관이었다. 특히나 대우자동차는 입사한지 겨우 1년쯤 지난 2000년 11월 최종 부도와 함께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그 뒤 GM에 인수되기 전까지의 1년은 대우를 기억하는 모두에게 악몽으로 남아있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악몽의 시간안에서도 믿음과 의지, 확신을 가지고 일명 ‘건물 타기’와 같은 세일즈의 밑바닥부터 시작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에 최선을 다했고 대우자동차에서의 시간은 적어도 내게는 악몽이 아닌 희망으로 남았다. 


입사 후 1년, 21세기를 앞둔 때에 나는 대우의 최우수사원(판매왕)에 올랐고, 2001년까지 2년 연속 최우수사원을 기록한 후 2002년 BMW (주)휴먼모터스, 2003년 GM 삼양물산(주), 2004년 LEXUS 삼양물산(주), 2005~2006년 2년 연속 LEXUS 전국(대한민국)에서 각각 판매 1위를 기록했고 2010년에는 자동차 세일즈를 넘어 생명 보험 판매 분야에서 미국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 명예의 전당에 등극하며 한국 기록원에서 검증하고 인증한 대한민국 각 세일즈 분야 대상 수상기록 최다 보유자가 되었다. 


내가 판매왕, 세일즈 신화 등으로 불리며 매년 기록을 쌓아가는 동안 대우그룹은 완전히 공중분해 되었고, 나의 첫 회사인 대우자동차 역시 2002년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GM에 인수된 대우는 겨우 1년만에 회사를 살려내며 그 성과를 담은 ‘1주년 첫돌’ 광고를 선보이며 주목 받았고 2004년에는 당시 최고의 히트 드라마였던 ‘파리의 연인’ 협찬으로 대중적인 이미지를 다시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며 비록 이후 ‘쉐보레’로 브랜드명을 바꾸기는 했으나 ‘스파크’, ‘라세티’와 같은 오히려 GM의 해외 브랜드에 역수출되는 차량을 개발, 히트 시키는 등 패배주의에 젖어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낯선 길목 앞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를 선택하고 도전했기에, 나는 악몽의 시간 안에서 희망을 만들어냈다


재산, 인맥, 학벌이라는 성공의 조건 중 단 한가지도 갖추지 못했던 내가, 그룹의 부도와 구조조정에 따른 최악의 노사갈등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은 채 시작했던 GM대우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기록을 가진 세일즈맨과 GM 그룹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로 성장하는데 필요했던 건 최초의 ‘선택’과 ‘도전’이었다. 


절망적인 순간,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온다. 내가 걸어온 길과 그 흔적들이 누군가의 삶에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자신감을 채워줄 수 있다면, 그러기를 바라면서 판매왕 최용민의 삶과 세일즈에 대한 기록, 그리고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자동차 통합 쇼핑 플랫폼 서비스 ‘카사요’의 도전기를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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