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사요 Oct 23. 2023

I’m still hungry

내일의 도전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

2001년 1월 1일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대표팀의 손을 잡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2001년 새해 첫날부터 모든 언론은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2001년 1월 1일부터 바로 직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5:0으로 박살낸거스 히딩크 감독이 바로 자신이 박살냈던 그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년 정도 그의 별명은 ‘오대영’이었다. 후일 인터뷰에서 ‘희동구’라는 답변을 듣고 싶어 자신의 별명에 대한 질문을 한 한국 기자에게 ‘Zero- five’를 언급하며 너스레를 떨었을 정도로 모두에게 ‘오대영’이라는 조롱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프랑스와 체코에게 5:0 패배, 출전하는 컵 대회마다 변변치 못한 성적을 내는 그에 대한 여론은 당시 백분토론 주제로 ‘히딩크호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지금 보면 웃지 못할 내용이 나올 정도로 최악이었다. 


 대우 자동차에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우연한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당시는 온 세상이 절망에 빠져 자동차 같은 사치품은 사지 않을 분위기였고, 그런 상황에서 발로 뛴다고 바로 엄청난 성과가 따라올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대단한 인맥이 있어서 소개를 받을 수 있거나 오랜 경력으로 때가 되면 알아서 고객이 찾아오는 일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던 나는 그래도 매일 신규 고객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우연히 한 업체를 알게 되었다. 그 업체가 속해 있던 업계는 그 지옥 같은 불경기에도 가장 불황으로 평가 받는 곳이었고, 그걸 알고 있던 자동차 영업사원들이 아예 홍보물조차 보내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직접 마주해서 살펴본 그 곳은 달랐다. 전반적으로는 불황이 맞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오히려 사업이 잘 되는 곳이었고, 이후 그쪽 업계의 다른 회사 사람들을 만나보니 모두가 다 힘들어지거나 여력이 없어진 상태도 아니었다. 물론 그런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가망고객이 될 가능성도 높았다. 


 사무실에만 앉아 있었다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정보였다. 모두가 알고 있던 ‘정보’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편견’일 뿐이었고 진짜 가치를 지닌 ‘정보’는 직접 관찰하고 마주해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그 날 나는 ‘현장’에 나가야하는 이유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절망과 시련에 부딪히며 싸워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 전에서 5:0으로 대패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이영표 선수는 “상대의 볼 터치 위치, 타이밍 모두 이전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상대를 전혀 읽을 수 없어 절망감까지 들었다.”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강한 상대와 계속 경기를 치러야 한다고 말하며 약체를 불러서 스스로를 속이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도 괜찮지만 본선에서는 강한 팀들을 만나게 될 거라는 점을 끝없이 강조했다. 


 그렇게 2001년이 지나가고 월드컵을 바로 코앞에 둔 2002년 5월 26일, 다시 만난 프랑스에게 대한민국 대표팀은 2:3으로 패하기는 했지만 전반전에 경기를 지배하며 2:1로 앞서 나갔을 정도로 1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 주었다. 이 경기에 대해 이영표 선수는 “똑같은 선수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이 축구를 하는데, 모든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고 예측 가능했다. 거기서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평가했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깨달은 이후 나는 대우자동차에서 2000년과 2001년 연속으로 최우수사원(판매왕)에 올랐다. 입사 후 첫 회식에서 욕설을 섞어가며 인정 받고 싶으면 많이 팔아서 증명하라던 선배의 말처럼 나는 우선 월간 판매왕부터 시작해 실적을 보여주었고, 전국 판매왕에 오르자 그 말을 했던 선배를 포함한 모두의 태도가 달라졌다. 자신감을 얻었고 내가 하고 있는 세일즈 방식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있었다. 근무 조건이나 조직에서의 권한, 연봉 등모든 조건이 충분히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보장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번째 판매왕에 오른 후 회사를 떠났다.

오늘의 승리가 아닌 내일의 도전을 생각하는 사람은 동력을 잃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이 개막하고 조별리그가 시작되자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토론을 해야 했던 히딩크 호는 폴란드 전 2: 0 승리, 미국 전 1:1 무승부, 포르투갈전 1:0 승리로 조 1위를 기록하며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16강은 커녕 1승 조차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던 팀이 이루어 낸 성과에 전국민이 열광했고, 모두가 이제 목표를 달성했다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거스 히딩크 감독은 생각이 달랐다. “I’m still hungry”, 여전히 도전할 목표가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와의 16강 전을 앞두고 훈련에 참석하는 대신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16강 전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며 다음 경기를 준비했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아시아 최초, 아니 유럽과 남미 국가를 제외한 최초의 4강 진출이었다. 

 

 내가 판매왕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때에 회사를 떠난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막 시작한 신생 딜러사의 영업관리부장이었던, 매일 밤낮으로 내게 전화를 하며 퇴근 시간이면 술도 못하시는 분이 주량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진심으로 최선을 보여주셨던 그 분에게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첫 직장을 나와 수입차 브랜드로 이적한 이후로도 나는 그 분이 옮겨 가시는 곳마다 따라 움직였고, 그렇게 자연스레 나는 매번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해올 수 있었다. 결국 ‘사람’이었던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로 떠난 박지성, 이영표 선수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유럽 리그로 진출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 역시 이후로도 많은 클럽, 국가대표 팀을 거치며 도전을 계속해왔다. 내일 도전하지 않을 사람은 오늘 싸울 이유가 없다. 오늘 부딪히고 깨져가며 성공을 위해 싸워 나가는 사람에게는 내일의 도전과 목표가 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내가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고객을 만들기 위해 깨지면서도 뛰었던 이유가 ‘사람 중심의 세일즈’를 통한 성공에 도전하기 위해서 였던 것처럼, 오늘의 내가 매일 부딪치며 싸우는 이유 역시 ‘카사요’라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이다. 물론 내일의 도전이 무조건적인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나는 깨달음도, 승리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내일의 도전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는 말을 기억한다면, 오늘 내가해야 할 싸움과 그 이유가 누구에게나 명확해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제로의 영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