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 내연 기관 자동차의 종말은 시기상조였을까?
지난 11월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기차의 인기로 잊혀진 듯했던 하이브리드차 수요가 올 들어 급증하면서 머스크의 도전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전했다. 2030년까지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이 되겠다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의 목표가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리서치업체 모터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테슬라는 올 들어 3분기까지 미국에서 약 49만3500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전년 동기 대비 26% 늘었다. 도요타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도요타와 고급 브랜드 렉서스의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같은 기간 45만5000대로 전년 동기보다 20% 증가했다. 모터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테슬라의 모델Y 크로스오버 판매량은 이 기간 도요타의 베스트셀러 캠리를 추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겉보기에는 여전히 미국 시장 내에서 몇 안되는 차종만으로 도요타의 베스트셀러 모델들을 앞지르는 성과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테슬라는 그러나 중국 전기차 업체들과의 경쟁 심화, 전기차 수요의 위축에 대항하기 위해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 전세계적으로 판매가를 대폭 낮춘 결과 도요타 캠리보다 저렴한 테슬라 모델 3 세단을 판매하게 되면서 3분기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44% 감소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그동안 테슬라는 창업 단계부터 첫 전기차 모델인 테슬라 로드스터 출시 및 양산, 모델 3 양산 지연, 솔라시티의 사실상 실패와 인수 등 수많은 풍파를 맞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해왔기에 전기차 수요 위축으로 인한 순이익 감소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년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실시한 두번의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0.75% 인상을 의미하는 말)으로 상징되는 고금리 시대, 인플레이션의 장기화와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인해 전기차 수요 위축이 단순한 단기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경우 이번만큼은 일론 머스크조차 위기를 넘기기 힘들어질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이미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한 후 “금리가 높으면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도록 유도하기 훨씬 어렵다”며 전기차 수요 부진에 대한 속내를 내비쳤다. 이에 더해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완성차 기업들 역시 전기차 신규 투자 계획을 줄줄이 재조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하이브리드에서 전기차로 갈아탈 시기"라며 전기차의 승리를 선언했던 그의 호언장담이 시기상조였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기차 시장의 위기 가운데서 도요타는 2024회계연도 상반기(2023년 4~9월) 전 세계 판매량 517만2387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9.1% 늘면서 역대 최대치를 새로 썼다. 하이브리드차의 성장세가 전체 실적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전기차 대세론에 밀려 잊혀질 운명으로 보였던 하이브리드차가 다시 주목 받게 될 것을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 도요타는 렉서스까지 포함하여 무려 26종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미국 시장에 내놓은 와중에도 여전히 순수전기차 생산량이 겨우 2만4466대로 전체의 0.2%에 불과한 상태였다. 당연히 회사 안팎에서는 전기차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는 경고가 잇따랐다.
실제로 작년까지만 해도 20여년 전 프리우스를 출시하며 하이브리드 시장을 개척한 도요타 하이브리드는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지만 올해 전기차 판매 성장세가 주춤해지면서 부활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의 장점은 우선 가격에 있다. 전기차는 물론이고 20여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일부 모델의 경우 같은 차종의 내연기관차보다도 싸다. 실제로 도요타 캠리 기본 모델의 경우 하이브리드 모델이 내연기관 모델보다 2,500달러가 더 싸다.
게다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압도적인 연비를 자랑하면서 전기차처럼 충전소를 찾아 최소 20~30분을 대기해야하는 불편함도 없다. 여기에 전기차에 비해 기술력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아 중국 자동차 업체가 가격으로 승부를 걸어오기도 어렵다. 1년 전에 전기차에 '패배'해 도태될 것이라는 평가를 듣던 하이브리드차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경기침체속에 오히려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너무 전기차와 테슬라에 대해 비관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질까봐 말해두자면, 테슬라는 올해 지속적으로 발표한 가격 인하에 힘입어 테슬라의 크로스오버 모델 Y가 오랜 시간 미국 시장에서 1위를 지켜온 도요타 베스트셀러 크로스오버 라브(RAV)4를 바싹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기차 세제혜택과 가격인하로 모델 Y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덕이다. 리서치업체 모터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모델Y 판매량은 라브4에 약 7000대만 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애널리스트들에게 모델 Y가 라브4와 같은 가격이었다면 아무도 라브4를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자신감을 가질만도 한 것이 스트래티직비전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 신규 고객의 8%는 바로 직전까지 도요타 자동차를 타던 고객이다.
하지만 아직 하이브리드차에 대해 '승리 선언'을 하기에는 무리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미국 시장에서는 더욱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이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테슬라이지만 순수전기차만 생산하는 테슬라의 신차 판매량은 아직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에 크게 못 미친다. 지난해 테슬라의 신차 인도량은 132만4074대로, 도요타(1048만3000대)의 약 12%에 그쳤다. 현대차그룹(684만5000대), 스텔란티스(583만9000대)와도 큰 차이가 난다. '내연기관의 종말'과 '하이브리드의 패배'의 날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국내에서도 현대, 기아차에서 각각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고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모델들도 하나씩 등장하고 있지만 전기차 수요 위축의 분위기는 마찬가지라서 연말을 맞은 전기차 추가 보조금과 파격 할인 등의 자구책을 각 브랜드마다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경우에는 전기차에 '올인'할 필요 없이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노하우를 활용해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고 국내 전기차 인프라 보급 속도 역시 빠른 편에 들어가기에 글로벌 시장에서의 대처와 그 성공 여부가 더욱 주목된다.
'아키오 도요다' 도요타 회장은 최근 ‘재팬 모빌리티쇼’에서 “사람들이 마침내 현실을 보고 있다”고 말하며 전기차에 대한 '올인'이 아닌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선택했던 도요타가 옳았다는 사실상의 또다른 '승리 선언'을 했다.
최근 재평가 받고 있는 도요타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분산 투자 전략이 2000년대 MP3와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변화에 휩쓸려 과거의 명성을 잃어버린 소니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인지, 아니면 동시기 '시스템 경영', '최강 경영' 등으로 불리며 렉서스의 성공 신화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도요타 새로운 전성기를 열게 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의 세계 1위에 대한 도전과 도요타의 그에 대한 대응이 올해 일어난 하이브리드차의 반전으로 더욱 흥미진진해지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필자가 20년 이상 자동차 판매 업계에서 겪은 시장 변화에 대한 경험을 놓고 판단했을 때 올해 전기차가 겪고 있는 부침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이브리드의 반전과 약진을 통해 인프라가 따라오지 못하는 혁신은 미완성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자동차 제조사와 정책 결정권자들이 조금 더 명확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