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과거에 발전 가능성을 더하다
어제 자로 벤저민 하디의 《퓨처 셀프》를 완독했다. 새해를 맞아 다시 시작한 독서 모임 '씽큐베이션'의 선정 도서로 나에게는 2024년 첫 완독을 안겨준 책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는 독서였다. 책 《퓨처 셀프》는 '미래의 나를 명확히 그려 현재의 나와 연결하기 위한 체계적인 방법을 담은 지침서'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목표하는 미래의 현재화’가 딱 맞는 듯하다. 현재 명확한 목표가 없어 갈팡질팡하고 있거나, 목표를 설정했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실히 잡지 못해 잠시 주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독서 난도가 그다지 높지 않아 나에게는 꽤 술술 읽혔던 책 중의 하나이다.
각설하고,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이 책의 초반부에 등장한 ‘더 나은 과거’라는 단어가 내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내가 마주하고 있는 단어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단어인지에 대해 의아해했다. ‘더 나은’이라는 표현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 단어이고 '과거'는 변하지 않는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머리에서는 이상한 두 단어의 조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지, 모순덩어리인 이 단어가 요 며칠간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책에서 저자는 '더 나은 과거'에 대한 설명을 어머니의 사고 이야기로 풀어간다. 당시 최악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수많은 고비 끝에 건강을 되찾으셨다고 한다. 끔찍한 사고 이후로 어머니는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는 사소한 일들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신다는 문장으로 '더 나은 과거'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 또한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수술하게 된 적이 있고 그로 얻은 교훈들이 많았기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느 날과 같이 운동을 배우던 와중 발목을 다쳤다. 어렸을 때부터 발목이 약해 자주 접질리고는 했는데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잔부상들과는 달리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통증이었다. 발 전체에 크게 멍이 들었고, 집에 돌아오고 나서 다시 본 발등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부어올라 단순한 부상이 아님을 단번에 직감했다. 다음 날 병원 진료를 받고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순간 나에 대한 걱정을 뒤로 하고 직장 업무에 지장이 가겠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당장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할 수도 없었고, 내가 직접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평소에 제대로 된 체계를 잡아두지도 않았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 수술을 권하시는 의사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삼십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골절 수술이라니. 진료를 받는 도중에는 '수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에 어떠한 사고도 할 수 없었다. 한창 업무가 바빠질 시기에 긴 입원 기간까지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라 더욱 눈앞이 캄캄했다. 게다가 생각보다 흉터가 꽤 크게 남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그래도 수술을 받아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은 생각이 점차 커졌다.
어떤 경험이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부정적인 비교를 하게 되며 경험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다. 모든 경험을 개인적 성장의 계기로 전환할 때 비로소 유익이 생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경험을 유익한 경험이라는 프레임으로 설정하라. - 《퓨처 셀프》69p
수술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다음부터는 차분하게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잦은 잔부상이 있었을 당시에 일찍이 수술을 받지 않았던 것, 별난 고집을 부려 순간 무리하게 운동을 강행한 것도 전부 나의 선택이었다. 과거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니 돌이킬 수 없는 일로 후회 속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생명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에게 있어 수술은 그 자체로 끔찍했다. 다리가 멀쩡하지 않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한동안은 우울감에 빠져있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생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려고 애썼다. 이왕 수술로 일을 쉬게 된 김에 열흘 간의 입원 기간을 최대한 의미있게 보내기로 결심했다.
혹시 모를 나중을 대비해 업무 체계를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고 평소에는 바빠서 하지 못했던 소소한 취미도 즐기기로 했다. 업무용 노트북과 영화 시청용 패드를 포함해서 평소에 즐겨보던 외국어 회화 책, 한창 유행했던 손뜨개 실까지 구입해 가방 한 가득 챙겨왔다. 당시 부러진 다리를 이끌고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온 나의 모습을 본 입원 병동 간호사 분들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코로나가 재유행하던 시기라 면회에도 제한이 있었기에 입원 기간이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입원 전에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날짜를 잡고 수술을 받는 바람에 업무에 큰 지장이 있었고 즐겨하던 운동도 오랫동안 쉬어야만 했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없기에 한동안은 맘 편히 지인들과 약속을 잡지 못했다. 혼자 목발을 짚고 걸어가다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날도 있었고, 특히 즐겨가던 카페의 계단 앞에만 서면 어찌나 막막하던지. 조금 무리하게 걸어다닌 날이면 퉁퉁 부어오른 발목에 얼음 찜질을 하는 일은 당연한 일과가 되었다.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고 해서 그 경험들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마라. 오히려 고통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 가치를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 또한 고통스러운 경험에 감사함을 나타내라. - 《퓨처 셀프》69p
두 번의 수술을 받고 나서 문득 건강한 팔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의 일상은 평소에는 남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부분까지 감사함으로 가득 차 있다. 내 발목에는 어쩌면 평생을 완전하게 없어지지 않을 법한 상처가 남게 되었지만 그에 비해 많은 교훈을 얻었으니 살면서 큰 의미가 있었던 경험으로 마음 한편에 남겨두고자 한다.
이제 왼쪽 발목에 남은 흉터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나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예상치 못했던 사고로 생긴 흉터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결국 나의 몫이다. 부정적인 과거에 긍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순간,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저자와 동일한 듯하다. 여담이지만 최근 부모님은 나에게 흉터를 없애는 치료를 받는 것을 권하셨다. 사실 수술을 하고 나서 사계절을 지내고 보니 아직은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문득 보인 내 흉터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재미있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바로 나의 인생 첫 수술 ‘썰’을 풀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절로 난다. 아무래도 흉터를 치료하는 건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흥미가 떨어지는 그때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결국 '더 나은 과거'란 현재의 내가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며 긍정적인 프레임을 씌우기만 하면 그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결코 모순되는 조합의 단어가 아니었다는 사실 :)
과거에 겪었던 힘겨운 시련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가? 만약 그런 순간들이 없었다면, 당신이 현재 알고 있는 지혜를 얻지 못했을 수 있다. - 《퓨처 셀프》6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