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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울 Apr 16. 2024

01. 서투르니까

어린이 관찰일지

새 학기가 되어 처음으로 하는 연극 수업 시간이었다.

우리 학교 연극 수업은 외부 강사님께서 오셔서 수업해 주신다.

외부 강사가 와서 수업을 하는 경우, 담임교사는 임장 지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연극 수업 시간에 난 뒤에서 학생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연극 수업 시간에는 국어 교과서 1단원의 독서 파트를 공부하는데, 교과서 지문을 함께 읽고 모둠별로 나누어서 역할극을 준비한다.

앉은자리대로 우리 반 학생들이 두 모둠으로 나눠졌다.

그런데 앗뿔싸, 두 모둠의 밸런스가 안 맞았다.

첫 번째 모둠은 다들 열심히 하고, 소위 말 잘 듣는 학생들로 이루어졌는데, 두 번째 모둠은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많았다.

한글이 안 되는 학생, 장난기가 많아서 집중을 잘 못하는 학생, 소극적인 성격이라 목소리가 작은 학생.

하지만 다행히 우리 반에서 리더십이 가장 좋은 학생 두 명도 같은 모둠이었다.

연극 선생님께서 첫 번째 모둠에 가서 지도를 하시는 동안, 두 번째 모둠 옆에서 학생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방금 읽은 지문에 등장하는 인물을 누가 맡아 연기할 것인지 역할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말하기 바빴고, 그러다가 한 학생이 이야기했다.

"희성이(가명)는 아직  글씨가 서투르니까, 몸으로 표현할까?"

아니, 한글을 아직 잘 못 하는 친구가 창피하지 않게 표현하면서 대안책까지 내놓다니.

만약 나라면 말해줄 테니 외워서 해보라고 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서투르다는 말은 '일 따위에 익숙하지 못하여 다루기에 설다.'라는 뜻이다.


그래, 희성이는 서툴 뿐이다.

희성이는 이해도 잘하고, 말도 잘 하지만 한글을 쓰고 읽는 것을 익숙해하지 못할 뿐이다.

또래보다 조금 느릴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다.

그럼 뭐 어때. 서툰 학생은 서툰 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며 배우면 되지.

사실 그동안 답답하고 힘든 점이 많았다.

우리 반에 한글이 잘 안 되는 학생이 둘이 있는데, 한 명은 그래도 스스로 읽을 줄 알아서 쓰는 것만 도와주면 되었다.

그런데 우리 희성이는 읽고 쓰는 것이 모두 안 됐다.

고민 끝에 결국 문제를 읽고 풀어야 하는 시간에는 내가 옆으로 가서 함께 읽고 풀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날들이 반복되면, 학생들 눈에 희성이가 공부 못하는 애로 낙인찍힐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너희들은 이미 친구가 서투르면 다른 방법을 제안해주고 있구나.




어른들은 조급하다.

이 나이에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이왕이면 또래와 비슷하거나 잘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조급하게 군다고 따라와 주지는 않는다.

못한다고 혼내며 다그치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내가 해줄 수 있는 걸 해주며, 기다려야지.

내가 잘 못하고 서투른 일이 있는 것처럼, 너희에게 서투른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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