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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Aug 11. 2024

식당의 탄생

47. 내가 누군지 알아?

  당신은 누군가단골인가요?

  그런데 말이지요,

  그들 또한 당신을 단골이라 여기고 있을까요?


  우리는 자주 이용하는 카페에 가서 '저는 단골이잖아요, 그러니 잘해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 필경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겠지요. 그러나 저희 식당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낯설지 않습니다. 자주 오는 나를 특별 대우해 달라는 요구는 애교일 뿐입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하며 식당 주인을 아랫사람처럼 부리려는 진상을 대하면 착한 저마저 참기 힘듭니다. 사나운 개로 변할 때마다 식당 주인됨이 후회스럽습니다.






  단골은 얼마나 자주 오는 손님을 말하는 걸까요?


  매일?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아니 잊을만하면 그제야 슬그머니 나타나는 손님?

제가 만난 어느 컨설턴트는 말씀하시더군요. 6개월에 한 번 이상 찾아오면 단골손님이라고요.

그 말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일 년에 두 번 오는 손님을 단골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요).


  사람이 매일 똑같은 음식만을 먹을 수는 없겠지요. 물론 집밥이라면 모르지만 밖에서 사 먹는 밥을 매일 같은 메뉴로 먹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저 또한 직장 생활을 하며 같은 식당엘 일주일에 두 번 가기를 주저했으니까요(제가 무지 좋아하는 짜장면도 그랬습니다).


  식당을 오픈하고 단골에 대하여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고민이 많았던 것이지요. 누군가 계산을 마치고 또 올게요라고 말하면 아 이 사람은 다시 오지 않을 사람이구나 하며 불신했습니다. 겪어 보니 가게를 재방문하는 사람은 그런 인사치레의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동안 평생 단골이 되어 줄 것처럼 저희 부부를 대하던 그 많던 손님들이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갔습니다. 본인 덕분에 이 가게는 번창할 것이라고 자화자찬을 늘어놓던 대단한 손님들이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때 저는 저만의 오해일 수도 있는 깨달음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아, 이게 바로 단골의 본모습이구나 하고요. 그들의 마음이 절대 내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물론 자신의 행태도 반성해야 합니다. 배려의 마음이 부족했던 적이 있습니다. 친절함도 부족했습니다.


  TV에서 먹방 프로를 보면 “나는 이 집의 10년 단골이요. 나는 20년 단골이요. 할머니가 하실 때부터 왔소” 하는 손님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이 분들이 단골이 아닐까요? 그런 손님들이 잊지 않고 찾아 주는 오래된 노포의 저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재하는 자체로도 존경스럽습니다.


  저 또한 단골이었던 가게를 소리 소문도 없이 발길을 끊은 적이 있지만(전근으로 인한 이사), 단골이란 초봄 개울가 얄팍한 살얼음과도 같아서 금방 햇살에 녹거나 살짝 밟아도 쉽게 깨지고 맙니다.

  그렇지만..

단골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고개를 돌리기보다는, 사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단골을 만들고 그 단골을 붙잡을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그간 많은 단골 고객이 떠나고 또 그 빈 곳을 채워 많은 단골 고객이 생겼습니다. 한 때 단골이었다가 조용히 발길을 끊은 그분들을 생각하여 봅니다. 자신만의 취향과 색깔을 갖고 사는 만인만색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당에는 그들이 모입니다. 물론 상식적으로 모두의 지탄을 받을 일(예를 들면, 술에 취하여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옆자리에 어린 학생들이 있음에도 무리한 애정 행각을 벌이는 사람들, 종업원에게 반말을 하거나 성희롱성 발언을 하는 경우 등)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인이 기분이 나쁘다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객을 스스로 발로 내차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모두 주인이 잘못한 것입니다. 주인이 진상 짓을 하여 떠나간 손님의 경우에는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 더구나 주인 스스로 자신이 잘못한 행동을 모를 경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지속적으로 그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갑자기 떠오르는 단골손님이 있는데 그분이 지금은 가게엘 오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분이 왜 가게엘 오지 않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이지요. 순간의 실수라면 다행이지만 주인이 주인의 잘못됨을 모르는 경우에는 앞으로의 일들이 심각히 걱정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단골 고객을 잃을 위험이 큰 것이기 때문이지요.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들은 이야기 중의 하나가 자신이 서비스업에 맞지 않는다면 그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날 때부터 서비스업에 적성이 맞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단히 자신을 타일러서 자신의 업에 맞도록 자신을 개선시켰을 것입니다. 이리 생각하면 생각이 단순해집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인 것입니다. 최소한 90% 이상은 주인의 잘못입니다. 그리고 그 잘못의 대부분은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개선될 여지가 클 것입니다. 스스로 절박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섭지 않나요? 저는 무섭고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저는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이 태생적으로 싫습니다. 비뚤어진 그들로부터 풍기는 냄새가 싫습니다. 썩은 냄새를 풍기며 향기로운 척합니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떤 부류의 인간들인지 나열하려 했더니 괜스레 손을 더럽히는 짓이라 여겨지네요. 예까지 들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런 사람들을 말하는 거니까요.


  어쨌건 세상에는 두 부류의 단골이 있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단골임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저 밥을 먹으러 식당에 와서 그 밥을 즐길 뿐입니다.

  다른 하나는 손님과 식당 주인과의 균형을 깨려는 사람입니다. 음식과 돈의 교환을 넘어서 일방적으로 관계를 맺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그들도 업이 있어 식당문 밖에서는 자신이 응대해야 할 고객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들의 행태가 궁금해집니다.







  세상에 영원한 고객이 있을까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고객은 이 세상에 종속된 존재입니다.

  따라서 고객 또한 영원할 수 없겠지요.


  저는 사나운 개일 뿐입니다.

착한 사람이지만, 착한 식당 주인이 되기는 글러 먹었습니다.

물론 진상을 대할 때만입니다.


  그저 조용히 이 가게의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식당이 되어야겠지요. 착한 식당 주인되기를 포기했지만 6년이라는 세월 동안 모난 몸뚱이와 마음은 제법 둥글게 깎고 다듬지 않았나 싶습니다. 식당의 탄생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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