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에 다가서다
추석 지나 이사를 하였다.
서울의 동쪽 끝자락 아차산 지붕 아래를 벗어나, 한강을 건너 좀 더 동쪽으로 달려 경기도 하남의 검단산 아래 자리를 잡았다. 이곳도 한강이 지척이다. 어려서는 아차산과 용마산을 날아다녔지만(기억의 오류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경사진 곳만 나타나도 무릎이 쑤시고 나도 모르게 숨을 할딱거린다. 물론 언젠가는 정복하리라 다짐하며 수시로 검단산을 째려보지만 급할 건 없다. 지금의 나로서는 등산도 사치일 수 있기에(물론 핑계다).
천만다행으로 아파트 거실 베란다에서 바로 그 검단산의 정상이 보인다.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 이 영물과 엄청 친해질 것이다. 행복에 겨워 무한 감사 기도를 드리는 바, 고개를 왼편으로 돌리면 한강이 흐르고 코앞의 팔당대교를 건너면 중앙의 예봉산을 필두로 파노라마처럼 푸른 산이 펼쳐져 있다. 자연인으로 살겠다고 굳이 산속으로 숨어들 필요가 없어졌다. 참 좋다.
사실 정든 고향을 떠나 거처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이 바로 이곳 하남이었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었다.
다행히도 일터를 고려하여 너무 멀리 떠날 수는 없었다. 아내는 여러 곳을 말하였다. 그녀가 원하는 곳이 있다면 반대할 수 없다. 다만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하남이라는 곳을 권유하였다. 가게에서 가까운 5호선 광나루역에서 전철로 30분이 걸리는 하남은 비록 서울을 벗어나는 곳이지만, 살기 편하고 교통도 편리한 곳이라고. 더구나 하남검단산역 근처라면 아침 출근길에 편안히 앉아서 갈 수 있다고. 지리적으로 경기도이지만 서울과 다를 것이 없다고. 또 뭐라고 설득하듯 제법 떠들었을 것이다.
속셈은 따로 있었다.
그 속마음을 넌지시 말하기도 하였는데,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나는 이미 산속 자연인의 삶은 포기하였다. 뱀도 벌레도 싫고 무서운 것도 싫고 텃세 부리며 간섭하는 인간도 싫기 때문이다. 대신 답답한 도시는 벗어나고 싶다. 서울의 도심을 벗어나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밀도가 조금 낮은 곳이라면 좋겠다. 쓸쓸하지도 않은 곳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곳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하남이며, 하남 땅에서도 스타필드와 도서관이 가까운 곳이다. 왜냐고? 번화가를 벗어나 유유자적하다가도 왠지 모르게 사람이 그리운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면 스타필드를 찾아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사람 구경도 할 것이다.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다. 물론 평소에는 도서관을 벗처럼 찾아 책을 읽고 공부도 하고 명상도 할 것이다. 나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
아내가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저 소원을 이룬 것이 놀랍고 그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학교에서 멀어진 지혁이에게는 미안함이 크다. 몇 학기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참아 주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완이는 부디 출퇴근이 편한 직장에 들어가기를. 그렇다고 모든 일이 맘처럼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닌 것을, 인생 또한 그렇게 만만하지 않음을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세계적 경영 그루로 꼽히는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가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바꾸지 않는 상태에서 '이제부터 달라질 거야'라고 새로운 결심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나라는 인간을 바꾸고 싶은데, 이미 세 가지 중 하나는 바꾸었다. 시간도 달리 쓰려 노력하고 있다. 남은 한 가지,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바라건대 이곳에서 인생의 스승을 만나면 참 좋을 것이다(하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브런치를 말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