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③ 젠더 갈등
지난 2일 헌법재판소는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규정한 병역법이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남성들이 이의를 제기한 세 번째 소송에서도 합헌으로 판결을 내렸다. 남성에게만 부과되는 병역의무는 젠더갈등의 주요 이슈이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가산점제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성들이 있을 정도이다. 모병제가 거론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8%가 젠더갈등이 매우 심각하며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20대에서는 응답 비율이 78%나 되었다고 한다. 지난 대선에서 정치인들의 이대남 갈라치기 영향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가부 폐지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남성은 동의하고 여성은 유지라는 입장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온라인 매체에서 젠더갈등의 양상이 심해지자 정부는 ‘청년젠더공감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갈등은 해결과정에서 사회변화를 촉진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지나치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고 국가발전의 저해 요인이 된다. 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하게 된 것은 젠더갈등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가 되어서야 여성들에게 공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투표권이 부여될 정도로 오랜 기간 남성 중심 사회가 지속되었다. 그 결과 여성은 편향적인 교육에 의해 주입된 젠더 정체성을 갖고 자아를 인식해 왔다. 페미니즘운동의 영향으로 여성의 인권, 권리에 대한 의식이 발달하면서 양성 간의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자아에 눈을 뜨게 된 여성들은 전통적인 젠더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기 성취를 위하여 노력한 결과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가부장적 사회질서와 전통적 인습에 대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데 여성은 이러한 변화를 적극 수용하였지만 기득권을 고수하고자 하는 남성 집단과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법적, 제도적 정비로 성평등 정책을 펼쳐와서 많이 개선되었지만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면 아직 남성 중심 문화가 곳곳에 잔존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0여 년 전 결혼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하여 남자 고등학생이 “내가 왜 다른 여자를 먹여 살려야 하나요?”라고 한 말을 들었다. 젠더 정체성에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말이다. 요즘 데이트하는 20대들은 데이트 통장을 사용하여 공동으로 경비를 마련하고 있고 결혼할 때에는 계약서를 작성하여 양가에 똑같이 용돈을 보내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공공기관 중심으로 남성 육아휴직도 증가 추세이다. 엄마보다 화장품이 더 많다는 아들에 대한 얘기도 들린다. 전통적 젠더정체성에 길들여진 중장년층들에게는 낯선 변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음을 경험하게 되는 현실이다.
여성할당제 때문에 역차별 당하고 있다면서 안티 페미니즘, 여성혐오를 표현하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남성들이 있지만 한국은 2022년 남녀임금격차 수준이 31%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다. 과거에 비하여 여성의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증가하였지만 사회곳곳에 잔존하는 불평등적 구조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2021년 기준 고위직 공무원의 여성비율은 10% 수준으로 나타났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영상매체들에서도 남성편향은 여전히 보이고 있다. 방송의 주요 예능프로그램 주인공들이 대부분 남성이며 방송뉴스 앵커, 기업, 정계 등 사회 각계 고위직은 아직도 남성들 비율이 높다. 젠더정체성은 가족, 학교, 미디어,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학습되면서 형성되어 인식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인지적 성찰이 필요하다.
교육의 기회를 갖게 된 여성들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지만 일부의 여성일 뿐 모든 여성들의 지위가 상승한 것이 아니다. 많은 여성들은 비정규직,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남성들은 병역의무제도, 여성할당제 문제로 공정성에 대한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다. 20대 남성들은 군복무로 인해 여성보다 취업에서 큰 불이익을 당한다고 느낀다. 또, 공공기관이 여성우대 성별 할당제를 시행하는 것을 역차별로 생각한다. 성별 간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에 반대하며 비합리적인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은 아직도 가정에서의 돌봄, 일터에서의 채용과 승진에 차별이 있고 불공정이 존재하고 있다고 느낀다. 남성들은 여성이 더 배려받고 지원받아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누렸던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시대가 낳은 불안감도 영향을 준 결과이다. 이처럼 양성 간 인식의 차이가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젠더갈등을 야기하는 구조적인 차별, 불평등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소통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확산시켜 양성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차별의 내면에 있는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을 변경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최근 젠더갈등 이슈가 20, 30대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들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갈등 완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적 선동, 무분별한 언행을 삼가고 모두가 공감하는 새로운 젠더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고정된 젠더정체성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유로운 한 개인으로서 존중받는 문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