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 너에게로
까마득한 어둠 속 도로에서 운전대를 잡은 차는 나밖에 없었다. 오로지 자동차 전조등에만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조금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 끝이 어딜지, 가는 길에 고라니가 튀어나오지 않을지 마음을 졸이며 속도를 올렸다. 홀로 나아가는 일에는 무수히 많은 다짐이 필요했고, 나는 밤하늘의 별과 달을 친구 삼으며 용기를 내었다. 먼 곳을 바라보며 빠른 속도로 다가가고 있는데, 이내 불빛이 보였다. 몇 개의 불빛이 비틀거리며 깜빡거린다. 자신의 위치를 조용히 속삭이며 손짓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몸짓이다. 그 끝에는 과연 네가 있을까? 떨리는 마음을 숨긴 채, 허리를 더 꼿꼿이 펴본다.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네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네가 날 보며 웃는 얼굴, 환하게 반기는 얼굴. 그래, 난 그 표정만 볼 수 있다면 이까짓 거 하나도 안 무서워.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운전대를 잡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난 나만의 공간에서 홀로 있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아니, 사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누군가와 만난다는 게 두려웠으니까. 마음을 터놓고 말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것을 사랑하지만, 그 매듭이 스르륵 풀리는 날엔 단절을 느꼈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가 끊어져서, 난 섬에 혼자 고립되어야 했다. 심지어 그 다리는 내가 아니라 외부에서 끊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날 드러낼수록 두려워졌다. 비겁하고 용기 없는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되는 쪽을 선택했다.
나의 섬과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를 고친 건, 바로 너였다. 실력이 좋지 않은 건지, 꼼꼼하게 수리한다고 그런 건지, 다리가 완성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내가 그 다리를 두려워한다는 걸 네가 알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걸 다 고친 네가, 나의 섬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올 때, 나는 또다시 두려웠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예전에도 내 다리를 고쳐서 나의 섬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은 또다시 나와 단절되길 택했다. 그때의 난 섬의 더 깊숙한 곳을 찾아 그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세상을 왕따 시키는 것이라고 위안 삼으며. 다리를 한참을 건너오던 넌, 이내 다리의 중간에서 멈춰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었지만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있었다. 네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혼자 있다가도 네 생각이 나고, 걱정이 되고, 몰래 널 보러 갔다. 그리고 서서히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네 얼굴이 점점 환해졌다. 그렇게 우리가 만났을 때, 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널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사랑을 시작하며, 내가 가장 행복했던 이유는, 나도 드디어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혼자 있는 난 위태로운 줄 위를 걷는 사람 같았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가도, 우주 미아가 된 듯 붕 떠있는 기분을 느끼며 불안했다. 나만, 또, 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구나. 나는, 여전히, 세상과 연결될 수 없구나. 눈물로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하도 울어 코가 막힌 날에는 일부러 입을 막고 숨을 참아보았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그런데 널 만나고, 그냥 널 안기만 해도 난 몸에 있는 탁한 공기는 모두 밖으로 쏟아내고, 맑은 공기만 취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너는 내 곁에만 있을 수 없었다. 넌 너의 삶을 살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난 운전을 시작했다. 네가 떠나야 한다면, 내가 그곳으로 가면 그만이었다. 두려워하던 밤이 되어도, 이제 네가 사랑하는 달빛과 별을 친구 삼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난 널 사랑했고, 널 닮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나아가다 보니 다시 또 널 보고 사랑에 빠졌던 그 순간처럼, 난 다시 또 그 넓은 심연으로 푹 들어갈 수 있었다. 허우적거릴 나를 떠올리면 망설여지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야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내게 선택지는 없었다. 그저 네 품에 안기는 일밖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