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브라운아웃,.. 내 인생에서 아웃
몸도 마음도 지치고, 일할 의욕이 도무지 생기지 않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대화를 심심찮게 나눈다. “나 번아웃 와서 퇴사했어...”
이처럼 번아웃은 현대인의 일상에 악몽처럼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그 번아웃, 누구에게, 왜,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
처음 번아웃이 내게 찾아온 건 영국에서 석사 논문을 쓰던 때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눈을 떴다. 하지만 몸은 무겁고, 머리는 텅 빈 것 같았다. 분명 충분히 잤는데도,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함이 나를 짓눌렀다.
'나약한 놈. 논문은 Distinction(영국 석사의 최고 학점) 받아야 하는데! 오늘도 써야 할 글자 수가 남았잖아!’
스스로를 다그치는 순간, 가슴이 꽉 막힌 것 같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게 바로 번아웃이었지만,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겨우 몸을 책상 앞에 앉혀 새벽까지 논문을 썼다. 그러다가 결국 터져버렸다. '더는 못해... 이 논문은 내가 원하는 수준에 절대 못 미쳐. 그만할래. 이대로 실패하면 모두가 실망하겠지. 하지만 해낼 자신이 없어. 난 쓰레기야.'
새벽 4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5년 동안의 유학 생활, 그렇게 갑자기 끝나버렸다.
한국은 다행히도 낮이었다. 부모님에게 바로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동생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곧 부모님께도 말했다.
"저... 졸업 못할 것 같아요. 죄송해요."
그렇게 계속 울었다. 내가 너무 한심하고 죄송스러웠다. 실패자가 되어 한국에 돌아가는 상상에, 여기서 그냥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때 내 석사 코스 리더 Nick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장학금을 추천받을 정도로 우등생이었던 내가 졸업 직전에 포기하려 하자, 그는 나를 카운셀링으로 이끌어주었다. 그리고 제출 기한이 지나도 기회가 한 번 더 있으니 고려해보라고 했다.
덕분에 카운셀링을 통해 나는 무너진 나를 조금씩 다시 세워갔다. 그리고 마침내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번아웃이었다.
(카운셀링을 통한 회복 이야기는 <나를 지키는 루틴의 마법>에서 이어서 나누겠다.)
1981년, UC 버클리의 심리학 교수 크리스티나 매슬라크는 번아웃을 정의하며, 이를 판별할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1. 탈진: 총체적인 에너지 고갈
2. 냉소: 직업에 대한 부정적 감정
3. 효능감 감소: 직장에서의 성취감이나 능률 저하
이 세 가지 기준이 모두 충족될 때, 과학적으로 번아웃 상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아래는 내가 (내 방식대로) 번역하고 정리한 Maslach Burnout Inventory (MBI)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보길 바란다.
0점: 전혀 경험하지 않음
1점: 한 달에 1회 미만
2점: 한 달에 1~2회
3점: 매주 1~2회
4점: 매일 또는 거의 매일
직무로 인해 에너지 고갈과 피로를 느끼는 상태를 측정
나는 업무로 인해 감정적으로 지친 느낌을 받는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일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내 일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낀다.
나는 내 일에 좌절감을 느낀다.
나는 내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고 느낀다.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며 일하는 것이 나를 너무 스트레스 받게 한다.
나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느낀다.
0~9점: 낮은 소진 (Low Burnout) - 스트레스를 거의 느끼지 않음.
10~18점: 중간 소진 (Moderate Burnout) - 피로감이나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경험함.
19~28점: 높은 소진 (High Burnout) - 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경험함.
다른 사람들에 대한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측정
아침에 일어나서 또 다른 하루의 일을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피곤함을 느낀다.
나는 직장에서 내가 맡은 일에 무관심하다.
나는 일할 때 냉소적인 태도를 자주 취한다.
나는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일과가 끝날 즈음 나는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다
나는 일하면서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없다고 느낀다
0~5점: 낮은 수준의 탈인격화 - 대인 관계에 비교적 잘 적응함.
6~12점: 중간 수준의 탈인격화 - 어느 정도 거리감을 느끼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가짐.
13~28점: 높은 수준의 탈인격화 - 타인에 대한 무관심, 냉소적인 태도가 두드러짐.
자신의 직무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측정
나는 내 일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나는 에너지가 넘친다고 느낀다.
나는 직장에서 사람들의 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느낀다.
나는 직장에서 내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일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느낀다.
나는 직장에서 업무를 효과적으로 처리한다고 느낀다.
나는 나의 직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0~9점: 높은 번아웃 (High Burnout) -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거의 없음.
10~18점: 중간 번아웃 (Moderate Burnout) - 성취감을 어느 정도 느끼지만 부족함.
19~28점: 낮은 번아웃 (Low Burnout) - 직무에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충분히 느끼고 있음.
테스트 후 각 기준 별 결과가 골고루 부정적인 결과여야 번아웃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기준에서만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면 부분적인 소진을 겪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번아웃 뿐 만 아니라 보어아웃, 브라운아웃 등 다양한 직무/학업에서 오는 정신적 탈진 상태는 다양하다.
- 번아웃 (Burnout): 과도한 스트레스와 업무 부담으로 신체적·정신적 탈진 상태에 빠지는 현상.
- 보어아웃 (Boreout): 단조롭고 의미 없는 일로 인해 지루함과 무기력함을 느끼는 상태.
- 브라운아웃 (Brownout): 번아웃 이전 단계로, 에너지가 서서히 소진되며 피로와 의욕 저하가 느껴지는 상태.
이 번아웃이나 브라운아웃을 반복적으로 겪기 전에, 우리는 무엇부터 정비해야 할까?
반복되는 탈진 상태는 예방할 수 없는 걸까?
나를 태우면서 일했던 이유는?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왜 번아웃이 온 걸까?"
나의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하며, 당신도 스스로에게 5번의 "왜?"를 던져보길 바란다.
1st Why. 왜 나를 태우면서 일했을까?
내가 맡은 일을 책임지고 해내야 하니까, 성과를 내야 하니까.
2nd Why. 왜 성과를 내야 했지?
여기서도 1등을 해야 하니까.
3rd Why. 왜 1등이어야 하지?
그래야 회사에서 중요하게 인식되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4th Why. 왜 회사에서 살아남아야 해?
내가 필요 없는 인재가 되면 내 인생도 실패일 테니까. 주변 사람들도 실망할 테니까.
5th Why. 왜 주변 사람의 실망이 그렇게 두려워?
나는 부모님, 친구들,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사람이니까. 나는 인정받고 싶어.
내 마음의 깊숙한 곳을 드러내 보였다. 그래야 당신도 솔직하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나는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욕구가 나를 번아웃으로 몰아넣었다.
나의 첫 번째 해결책: 인정욕구를 버리기
그래서 내 첫 번째 해결 방법은 인정욕구를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비우기 위해 단순한 세 가지 방법을 실천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