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도예를 배우고 있다. 어쩌다 보니 햇수로 2년 차에 접어들었다. 기본적인 기법을 익혀가며 접시, 화분, 여인상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왔다. 성형하고 건조한 후 초벌을 거쳐 재벌에 이르기까지 잘 완성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갈라지고 깨지기도 한다. 이런저런 좌절에도 도예를 계속하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잠시나마 흙을 만지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물론 그다지 실력이 나아지는 것 같진 않지만.
작업은 작품의 크기나 종류에 따라 제작 방법이 달라진다. 그중 규모가 큰 것은 코일링 기법을 이용하여 밑에서부터 위로 만들어 간다. 하부의 흙을 말려가며 작업해야 하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현재 내 작품도 벌써 6주 차에 접어들었다. 형태를 묘사하자면, 볼링공처럼 동그란 머리, 앞뒤 구분조차 없는 단조로운 몸통, 어정쩡한 자세로 붙어 있는 긴 팔과 놀라울 정도로 짧은 다리, 작은 발 정도로 설명될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모델은 샘플북에서 보았던 ‘부드러운 색감의 니트를 입고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낀 채 서 있는 지적인 느낌의 고양이’였지만 세상일이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니까.
나도 코일링 기법으로 만들었기에 첫날은 받침대와 두 발을, 다음은 다리와 몸통을, 마지막으로 머리를 달아 올리는 순으로 작업했다. 순서가 거꾸로이다 보니,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게 초보자인 나에겐 여전히 쉽지 않다. 큰 형태를 만들기에만 급급해서 섬세한 표현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그러니 내 작품은 뭐랄까, 조금 생뚱맞고 너무 정직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어쨌거나 지난주에 드디어 머리를 달고는 흐뭇하게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곁에서 구경하던 동료가 한마디 건넨다. "밤이 되면 뚜벅뚜벅 걸어 나갈 것 같아요." 이 말에 나도, 도예실에 있던 이들도 모두 웃어버렸다. 단순한 형태 덕에 돋보이는 다부진 몸매가 꽤 씩씩해 보였던 모양이다. 더불어 모두 암묵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작업을 시작하던 날, 사실 나는 아무것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나 때우다 말 요량으로 별생각 없이 흙을 주물렀고 그러다 보니 비율이나 모양이 고려되지 않은, 말 그대로 되는대로의 이 아이가 만들어졌다. 심지어 감기와 여행 일정으로 두 번이나 수업에 불참하며 2주를 방치하기도 했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땐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 흙이 말랐을지도 모르니 더 이상 작업을 이어가지 못하겠지?' 하며 은근히 이쯤에서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기를 기대했는데 놀랍게도 이 아이는 용케도 마르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둘까 멈칫거리면서도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5주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 와중에도 욕심은 점점 커져서 처음에는 고양이를 만들려던 것이 지금은 호랑이가 되었으면 싶지만, 이 야릇한 형태의 녀석이 무엇으로 완성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발보다 더 큰 손을 가진 아이. 위아래 균형도 맞지 않고 포즈도 어색한, 도대체 나중에 뭐가 되려나 싶은 이 아이가 꼭 무언가가 되어야겠다고 외치고 있는 듯하여 이제는 나도 그 순간을 존중해 주려고 한다. 이번 주 수업에 가게 되면 드디어 주둥이와 눈, 코, 귀 등이 달릴 것이다. 그때는 베일에 싸여있던 정체성이 드러나겠지.
네가 고양이가 되든 호랑이가 되든 혹은 또 다른 무엇이 되든 그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어쨌든 너는 너 일 테니까. 그래, 가 보자꾸나. 같이 무엇이 되어 보자꾸나. 너처럼 오늘을 버티다 보면 나도 언젠간 무언가가 되어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