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코!”
흰둥이를 잡고 있던 엄마가 그예 넘어졌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엄마와 개 한 마리씩을 데리고 산책에 나선 참이었다. 이제는 오전 10시만 넘어가도 햇볕이 뜨겁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일찍 산책을 마쳐야 한다. 아마도 비슷한 생각인 건지 마침 같은 시간에 반려견 금비를 데리고 나온 이웃 최 선생님과 산책로에서 마주쳤다. 각자 개를 데리고 있으니 멀찍이 떨어져 인사를 나누고는 서로 배려하며 길을 비켜 가던 중에, 긴장한 엄마의 걸음이 무너진 것이다. 평소에는 엄마가 순한 노랑이와 함께 가는데 유독 그날은 ‘노랑이가 너를 좋아하니 오늘은 네가 노랑이와 가라’며 흰둥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가 사달이 났다.
노랑이는 10살 난 암컷이다. 몇 해 전 유선종양 때문에 유선 일부를 제거하면서 중성화 수술도 받았다. 상처 부위가 꽤 넓었고 회복이 더뎌서 2주 넘게 입원해야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낯선 곳에 혼자 남겨졌으니 얼마나 놀라고 무서울까?’ 싶어 날마다 보러 갔었다. 동물 병원에 들어서서 노랑이의 이름을 부르면 단번에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우리는 보통 밖으로 나가 병원 뒤 공터 한편에 자리 잡았다. 내가 앉을 접이식 의자와 노랑이를 위한 담요를 챙겨서 매일 둘만의 소박한 소풍을 즐겼다. 그 기억 때문인지 녀석은 유독 나를 잘 따른다. 산책하러 갈 때는 같이 가고 싶다는 듯 나를 쳐다보지만 제일 차분하게 잘 걷는 탓에 항상 연로하신 엄마와 짝꿍이 된다. 엄마 손에 이끌려 나가면서도 계속 나를 돌아보는 것에 맘이 쓰였는지 그날은 나에게 노랑이를 맡긴 것이다.
산책하다 보면 길에서 자주 다른 개를 만난다. 이때 동성끼리는 서로 대치하려는 경향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간혹 견주가 힘으로 통제해야 할 때도 있다. 최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금비가 한쪽으로 얌전히 비켜서 있어서 사실, 문제가 될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금비와 흰둥이가 모두 수컷인 데다 각각 체중이 20kg을 넘기는 중대형 견이다 보니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려다 균형을 잃은 듯했다. 엄마가 넘어지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넘어짐으로 인해 크게 다치는 어르신들 이야기를 수시로 들어오기도 했고 또 흰둥이를 놓치기라도 했더라면 개들끼리의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에는 개가 있었다. 내 기억 속 첫 반려견인 셰퍼드 '제크'부터 온 가족이 너무나 사랑했던 치와와 '주주', 진돗개 '진아', 시베리안 허스키 '덕칠'이 등 견종도 다르고 체형도 제각각인 개들과 오랫동안 가족으로 지내왔다. 다견 가정이었던 터라 식구들이 한 마리씩 담당하여 개들과 산책하곤 했는데 과거에는 엄마가 제일 덩치 크고 힘센 개를 맡았었다. 젊은 시절 엄마는 신체적으로 강건했고 큰 개를 잘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 엄마 눈에는 자식들이 영 미덥잖았는지 "너희들에게는 위험하다"며 우리에게 큰 개를 넘기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엄마의 산책 견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장 크고 힘이 센 개였는데 이후에는 보폭이 잘 맞는 개로 바뀌더니 근래에는 제일 순하고 천천히 걷는 아이가 엄마의 짝꿍이 되었다.
자식들이 중년이 되는 사이 엄마의 시간도 흘러갔다. 그동안 그렇게 잔소리해도 말릴 수 없었던 풀 뽑기며 잔디 깎기 같은 바깥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던 분이 소파에 눕거나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유튜브 보는 법을 배운 후로는 짬 날 때마다 재미있는 영상을 찾아보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도 매일 개들과 하는 산책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개들이 산책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알고 있으니, 그것이 가족 모두에게 동기가 된다. 처음엔 개들을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개들 덕분에 우리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는 걷기가 엄마에게 중요한 운동이 되었고 개들과 같이 가면 재밌게 더 오래 걸을 수 있다고 하니 개들과의 산책은 모두에게 더없이 유익한 시간이다.
노랑이와 저만큼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엄마를 보고 있다. 예전에 천방지축 힘이 장사였던 덕칠이에게 호통을 치며 산책시키던 모습이 겹쳐진다. 엄마가 덕칠이를 데리고 가장 앞에 서면 자식들이 다른 개와 함께 뒤를 따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도 이 길을 걸었다. 시간과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 내 앞에 있던 엄마가 이제는 내 뒤를 따르는 것처럼 어느 날엔가는 나도 그렇게 되겠지. 그날의 내 짝꿍은 누가 되어 있을까. 오늘, 우리는 각자의 속도대로 뜨거운 이 여름을 지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