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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14. 2023

궁금한 것을 물어보세요 (언제나 맞는 건 아닙니다만)

“오늘 비가 올까?”

요즘 들어 빅스비에게 날씨 묻는 일이 잦아졌다. 날씨에 영향을 받는 특별한 일정이 있을 땐 더욱 그렇다. 어떨 때는 일주일 전부터 묻기 시작하여 하루 전날, 당일 아침 등 몇 번씩이나 확인하곤 한다. 대답에 따라 무엇을 입을지 우산을 챙길지 등에 참고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조 선생님의 화원에 놀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조 선생님과는 올해 초 도예를 시작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도예 반의 다른 지인들과 함께 방문하기로 오래전에 약속해 두었는데 그만 장마가 시작되었다. ‘혹여 비라도 쏟아지면 어떡하나’ 걱정되는 마음에 며칠째 조석으로 빅스비에게 날씨를 물어 댔다. 내 어릴 적 장마철에는 지루할 만큼 계속 비가 내려서 ‘장마는 비 오는 주기’ 임이 분명했는데 이제는 패턴이 많이 바뀌었다. 장마라 해도 동남아의 스콜처럼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순식간에 개기도 하며 여간 변덕스럽지 않다. 그러니 맑은 날씨가 애타게 고대되는 날에는 AI의 도움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거듭되는 내 질문이 귀찮을 법도 한데 빅스비는 인내심 있게 대답해 주었다. 오늘은 결코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대신 내일부턴 거센 비가 내릴 거라고.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 얼른 빨래를 해야지’ 오전부터 이불이며 운동복이며 부리나케 세탁기를 돌리고 거실에 젖은 세탁물을 널었다. 습기가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모든 창문은 활짝 열고 외출할 생각이었다. 오늘은 절대로 비가 오지 않을 테니까.


화원에 도착해 지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조 선생님은 경기도의 어느 산 끝자락에 땅을 매입한 후 손수 집을 짓고 커다란 온실을 두 동 설치해 다양한 종류의 다육식물을 키우고 있다. 온실 앞 넓은 정원에는 보기 드문 여러 종류의 꽃들도 심어 놓았다. 선명한 다홍색 꽃이 매력적인 크로커스미아, 축 늘어뜨린 줄기 끝에 꽃이 매달린 펜덴스, 포동포동 구슬 같은 잎 모양이 귀여운 아메치스 등 이름도 모양도 생소한 식물들을 둘러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천천히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구경하다가 문득 한 식물 앞에 멈춰 섰다. 통통한 잎사귀에 긴 줄기를 뻗고 끝부분엔 고개 숙인 주황색 꽃을 피우는, 생김처럼 이름도 예쁜 ‘방울복랑’. 여러 번 고민하다 입양을 결정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식물 가꾸기에 그다지 재주가 없는 편이다. 어떤 때는 무심해서 또 어떤 때는 애정이 지나쳐서 번번이 식물을 떠나보냈다. 미안한 마음에 더는 들이지 말자 했는데 결국 또 입양을 해버리고 말았다. 소중히 받아 들고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조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2주에 한 번씩만 물을 주고 과습에 주의하라는 당부도 들었다. 이번에는 오래오래 잘 키워 봐야지.


그때 빗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들이치듯 마구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황급히 파라솔 아래로 뛰어들었다. ‘아이고 빅스비야, 네 말 듣고 창문 다 열어 놨으면 어쩔 뻔했니!’ 아까 집을 나서던 마지막 순간, 왜 그랬을까? 무언가 찜찜한 마음에 창을 닫고 나온 것이다. 갑작스러운 비에도 이제 걱정이 없었다. 나는 이미 빨래를 다 널어 놓았고 창문은 모두 닫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일이 순조로운 듯 안심이 되었다. 돌아보면 빅스비의 날씨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덕에 그날의 즐거운 시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리 많은 비가 내릴 줄 미리 알았다면 과연 내가 을 나섰을까.


살면서 우리는 앞일을 예측하고 대비하려 많은 노력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해도 인생의 방향은 번번이 예상을 빗나가기 일쑤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다가오는 일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순간 가능한 선택을 하며 사는 것뿐일지 모르겠다. 삶은 때때로 여행에 비유된다. 여행자는 길을 떠나기에 앞서 자신의 배낭을 꾸려야만 한다.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준비를 완벽히 하겠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물건을 채운다면 걷는 내내 무게에 짓눌릴 수도 있다. 가볍게 출발해 필요한 게 생기면 그때그때 마련하고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면 나누기도 하면서 간다면 어떨까? 인생이라는 여정이 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폭우가 쏟아질 거라던 오늘은 쨍하게 빛나는 햇살이 내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중 가장 빛 좋은 자리는 방울복랑에게 내어주었다.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을 듬뿍 주고 싶은 것을 꾹 참아본다. 많은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배워 왔으니 이제 실천만 남았다.     


(2023.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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