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눈물로 말했고, 나는 글로 답했다.
아버지라는 명칭보다 더욱 낯선, 아버님이란 이름을 하루아침에 단 당신.
우린 같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합일점으로 느슨히 묶여버렸다.
명절날 당신은 좋아하는 술을 사랑하는 가족과 한껏 들이킨다. 많이 마셔서 기쁜 건지, 기쁜 만큼 마시는 건지.
추억이 된 기억을 한잔 두 잔씩 꺼내다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음에도 남아있는 사무치는 아쉬움을 내뱉으며 우셨다.
나는 그 눈물의 이유를 찾고 싶지 않다.
몇 줄의 문장으로 70년대의 흔한 가장 이야기로 만들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지켜온 까마득한 세월을 모르기에.
그저 취약한 내면을 기꺼이 드러내는 그 모습이 좋았다.
눈물을 멈추려 애쓰지 않는 모습마저.
젊은 당신의 강했던 모습이 아직 생생한 남편에겐
아버지의 눈물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가 약해진 걸까? 나이 든 인간의 호르몬 변화가 눈물의 전부일까?
어쩌면 그는 삶을 바쳐 지켜온 가족들이 이제는 자신만큼 강해진 걸 느낀 게 아닐까.
어쩌면 그를 지켜줄 수 있을 만큼.
나는 시간이 지나 약해진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 함께 강해진 가족이 보였다.
그는 분명 지키고 싶은 사람의 수만큼 강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강하다는 건, 약함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것.
각자의 부서진 틈 사이로 얽혀서, 더 단단한 함께가 되는 것
나는 그런 그들이 좋다. 아직 낯선 어제와 오늘이 더 익숙할 수 있게 느슨하게 느리지만 계속해서 칭칭 감길 앞으로의 우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