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울리(Slowly)라는 어플이 있다.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모바일로 펜팔을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사실 이 어플을 알게 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21년도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던 건지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플을 설치했다. 이 어플은 다른 메신저와 차별된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 편지를 주고받는 물리적인 시간을 계산하여 편지가 상대방에게 도달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잉글랜드에 사는 유저에게 편지를 쓰고 전송을 한다면 약 31시간 후에 그 사람에게 편지가 도달되는 시스템이다. 슬로울리라는 이름도 그 특성에서 착안한 네이밍인 듯하다.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 미루어보면 다소 시대착오적인 콘셉트인 것 같지만 한번 사용을 해본다면 니즈를 이해할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다가 문득 편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는 순간, 정말 우편함에 우표가 붙여진 편지를 발견한 기분이 든다. (물론 정말 편지에 우표가 있긴 하다.) 즉각적인 대화가 가능한 DM과는 다르다. 느림의 미학을 몸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에 내가 주고받았던 편지를 기억해 보자면 두 사람 정도가 기억이 난다. 한 명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여성이었다. 거주 국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 여름이었고 태풍의 영향을 받던 시기여서 날씨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은 기억이 떠오른다. 다른 한 남성은 할아버지였는데 (역시나 국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23살에 뉴욕에서 찍은 나의 스냅사진을 보고는 한국의 아이돌처럼 보인다는 칭찬을 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다시 이 어플을 설치했다. 동기는 딱히 없었지만 무언가 내 안에서 느리게 사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답장이 바로 오지 않아도 괜찮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어느 날, 불현듯. 아침에 눈을 뜨고 시간을 보기 위해 핸드폰을 터치했는데 편지가 와 있다. 그날을 그 사소한 일 하나로 기분이 좋아진다.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주 일요일엔 클라이밍을 했고 헬스와 동시에 PT를 받기 시작했다. 클라이밍은 처음 해보았는데 쉽지 않았다. 그동안 내 몸의 사용법을 제대로 몰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쉬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홀더를 잡고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르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구간들을 오르고 목표에 도달할 때마다 성취감이 있었다. 그 맛에 하는구나 싶었다. 매력 있는 스포츠였다. 꾸준히 하다 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손에 살갗이 벗겨지고 굳은살이 생기는 과정을 딛고 하나씩 올라가는 것이다.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헬스를 다녀야지 하고 마음만 먹다가 마음을 먹은 김에 등록하게 되었다. PT를 할 생각까진 없었지만 혼자 하는 운동에만 의존하다 보면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다다르기까지 비효율적인 루트를 밟아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듯 그동안 내 몸을 돌보지 않고 방치한 대가로 여기저기 아팠다. 내 목표는 남들처럼만 건강한 것이다. 물론 조각 같은 몸매를 가진다면 더 좋겠지만 욕심을 부리진 않을 것이다. 트레이너님이 식단을 봐주시고 운동기구 사용법과 루틴을 잡아주신다. 가르쳐주신 대로만 일단 따라가 볼 생각이다. 운동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보단 어쩌면 평생 해야 하는 숙제임과 같다. 하루하루 내 근육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을 과도하게 의식하기보단 하다 보면 변했을 것이라고 얘기해 주셨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노력한 결과를 안겨주겠지. 내게 필요한 것들은 어쩌면 느리고 천천히 흐르는 것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 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실천하는 모든 것들이 곧 내 조급함에 제동을 거는 브레이크가 되어줄 것이다. 느려도 괜찮다. 그 속도가 지금 나에겐 적절한 속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