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뱃살공주 May 13. 2024

여기는 여전히 살만합니다

토요일 일이다.

일요일 아침잠에서 깬 내 입으로 묘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아아. 아이고!"

날은 화창한데 몸이 무겁다. 어제 먼 길을 다녀와서일까? 아님 밤 9시 넘어 마신 맥주 때문일까?

나는 무거운 몸을 막대기 세우듯 겨우 일으켜 어그적 어그적 안방을 나왔다.    

 

나는 이틀 전 금요일 저녁약속 시간까지 어중간하게 시간이 남아 텔레비전을 켰다.

오래전 극장에서 봤던 영화 '써니'가 방송 중이었다.

나는 주인공 나미 딸이 학원에서 친구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는 장면부터 보기 시작했다. 리모컨을 손에 꼭 쥔 채 마치 처음 보는 영화처럼 난 화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속상한 나미를 위해 응징에 나서는 칠공주파 친구인 춘화, 진희, 장미.

엄마인 나미와 친구들이 나미 딸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여학생들에게 발차기, 머리 쥐어뜯기 등을 하는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뭉클한 것이 치밀어 올랐다. 울 정도의 슬픈 장면도 아닌데. 나는 그들을 둘러싼 혈연보다 끈끈해 보이는 것들이 부러웠다. 오래전 영화관에서도 난 저 장면을 보며 울었던 것 같다. 난 의리 넘치는 그들의 우정과 사랑이 여전히 샘이 났다.      

약속시간이 가까워져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정리했다. 거울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경주친구다. 내 이름을 부르는 친구 목소리가 동굴 안에서 말하듯이 울렸다. 난 평소처럼 '나 잘 놀고 있어'라고 가볍게 답을 했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했다. 마치 물속에서 호흡을 1~2분 멈췄다 토해내듯이 친구는 꺼억꺼억 거리며 듬성듬성 말을 했다.

"넌 이 힘듦을 혼자 어떻게 견뎠니? 숨이 끊어질 것 같은데. 넌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니?"

"혹시 너 아버지 돌아…"

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4남매를 둔 올해 88세인 친구 아버지는 2년 전 간암진단을 받았다. 아버지 소식을 들은 친구는 온 천지가 뒤틀릴 정도로 울었다. 난 그런 친구를 가만히 안아만 줬고. 맏딸인 친구는 동생들과 2년 동안 아버지 치료에 앞장섰다. 친구는 한 살 아래인 엄마와 더 오래 함께하고 싶다는 아버지 바람을 실현시켜드리고 싶어 했다. 신약투여를 하며 잘 견디던 아버진 2개월 전 호스피스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리고 4남매와 손자 손녀들. 평생을 사랑만 하던 부인을 남겨두고 금요일 오후에 하늘로 가신 거다.  

    

아버지 죽음 앞에서 날 생각했다는 친구에게 난 어떤 말도 못 했다. 맏딸로 사랑을 독차지했던 친구는 겨우 숨을 몰아쉬며 아버지 마지막을 전한 후 전화를 끊었다. 난 이름만 들었던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가려면 어떻게. 머릿속이 멍했다. 도대체 목적지를 어디로 해야 하지? 기차와 버스를 알아봤다. 주말이라 '매진, 매진'이란 길고 긴 줄이 날 놀렸다. 머릿속이 하해졌다. 난 말을 더듬더듬 횡설수설하며 막냇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막냇동생은 항상 날 차분하게 안정시킨 후 여기저기 알아봐 주곤 한다. 역시 동생은 내가 해야 할 일을 차분하게 알려줬다. 그래도 미덥지 않은 언니가 걱정되었는지 동생은 순천서 장례식장까지 갈 수 있는 예정표를 사진으로 보내왔다. 고마운 내 동생. 난 몇 번의 클릭을 통해 KTX '매진 매진'속에서 '입석'을 찾아냈다.


토요일 아침 튼튼한 내 다리는 순천에서 광명역까지 2시간 30분을 잘 버텼다. 난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출구를 찾아 양재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G9633 버스엔 광명역에서 승차하는 승객이 나 혼자였다. 두리번거리는 내 눈에 담긴 '어리바리'를 알아챈 기사님이 내 출발지를 물었다. 난 오늘 아침 기차 타고 온 이유와 초행길이라 어렵다고 말했다. 기사님은 친절하게 여긴 대한민국이니 걱정 말라며 빗속을 달렸다. 난 창 밖을 보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울산에서 출발한 친구는 초행길인 내가 걱정이라며 문자, 전화를 했다. 나이 들어도 여전히 당황하는 내가 나도 어처구니없다. 드디어 양재역이다. 기사님은 되돌아오는 길은 가던 길 그대로이니 잘 다녀오라며 날 다독여줬다. 난 두 눈 똑바로 뜨고 지하철 그리고 드디어 마을버스역 앞에 섰다. 길을 찾아준 막냇동생과 걱정하는 울산친구에게 자랑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이런 내가 우습다. 버스를 기다는데 내 친구와 가족들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부여잡나 보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손에 우산을 꽉 쥔 검은 정장을 입은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서울대학교 가는 버스 여기서 탑니까?"

낭랑한 목소리에 예쁜 서울 말씨다. 난 깔끔한 정장차림의 할머니를 향해 대답했다.

"네 할머니. 7번과 7-1번이 갑니다. 혹시 장례식장 가세요. 저도 거기 가려고 버스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박또박 말했는데도 내 밑바닥까지 밴 구수한 전라도 말에 할머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멀리서 오셨나 봐. 비도 오는데."

 G9633 버스 기사님께 했듯이 난 또 주저리주저리 오늘의 사연을 말했다. 할머니와 난 바람에 흔들리는 우산을 부여잡으며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빈 택시가 보였다. 할머니는 쓰고 있던 우산을 흔들며 택시를 잡았다.

"가는 길이니 같이 탈라우. 택시비는 내가 낼 테니깐."

할머니는 내게 '야! 타.' 하듯이 말을 했다. 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할머니와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친구아버지는 당신을 찾아오는 어리바리한 내가 신경 쓰였는지 G9633 버스기사님, 장례식장에 가시는 말씨가 고운 할머니, 택시기사님들을 만나게 해 주셨나 보다.


장례식장은 붐볐다. 아버지 가시는 길이 쓸쓸하지 않게 4 남매와 손자, 손녀들. 그리고 끝까지 사랑했던 친구 엄마까지. 문상을 마친 나를 친구는 퉁퉁 부은 눈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는 눈물을 닦아가며 안아줬다. 친구는 그동안 살아내느라 애썼다며 오히려 날 다독거렸다. 난 그런 친구가 안쓰럽고 고마워 부둥켜안고 울었다. 우린 서로 소리 내 울며 내 부모님과 남편이 있는 그곳으로 친구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토요일 밤 9시를 훌쩍 넘은 시간 난 집에 도착했다.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어서인지 마음이 더 휑했다. 태어나는 길보단 죽음으로 가는 길이 멀어 나도 덩달아 힘들었다. 씻고 있는데 이웃사촌이 오늘 오후 농부가 빗속에서 파는 '파프리카'를 샀다며 우리 집으로 온다 한다. 난 피곤과 허전함 그리고 쓸쓸함을 안주삼아 이웃사촌과 고마움 가득한 맥주 2캔을 나눠마시고 헤어졌다.


난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며 어제 피곤함을 날리려 비 갠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쭉 켰다. 그리고 투명한 하늘을 향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남편. 이제 하늘로 날아간 내 친구 아버지 잘 챙겨. 거기는 어때? 여기는 여전히 살만해. 우리 서로 잘 지내다 다음에 그곳에서 만나. 안녕."

작가의 이전글 유리창에 등 대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