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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May 05. 2024

유리창에 등 대고

비 탓이다.(이미지 출처: 네이버)

아버지와 함께하는 밥상 앞에선 듬뿍듬뿍 가리지 않고 먹어야 했다. 아버지 곁을 떠나기 전까지 난 비릿한 생선이나 묘한 냄새가 나는 나물이 있는 밥상을 보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자식이 여섯이나 되는데도 아버진 자리에 없는 나를 금세 찾아냈다. 난 숨을 쉬지 않고 밥만 먹었다. 반찬 없이 밥만 먹는 내 손등을 아버진 숟가락으로 내리쳤다.

“골고루 먹어야 아버지보다 더 크지. 넌 어찌 밥만 먹냐? 고등어조림도 먹고 이 나물도 먹어야지. 이것들이 다 약이여.”

난 손등이 아픈 것보다 냄새나는 반찬을 먹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살면서 입맛이 변한다더니. 나는 성인이 되면서 비릿한 생선과 나물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손이 안 가는 음식이 있다. 주로 생선으로 만든 ‘탕’ 종류다. 구이와 싱싱한 회는 먹는데 이상하게 ‘탕’은 손이 가지 않는다. 아버지가 내 손등을 때려가며 고치려 했던 편식이 여전한 것이다.

음식을 가려먹던 습관 탓인지 책 또한 골고루 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내 발이 내 마음과 다른 쪽으로 걸어가는 분야는 경제 쪽이다. 완숙한 어른인 척하고 싶어 어려운 경제용어를 외워가며 읽고 또 읽어봤지만, 내 입속에서 단어들이 각자 날아다녔다. 경제 뉴스를 듣거나 활자로 읽어봐도 내 머릿속에 박히지 않아 내 몸무게보다 가벼운 경제 쪽 뉴스만 기웃거리다 말았다. 나는 ‘그냥 더하기 빼기만 잘하면 되지 뭐’라며 위로했다.

손과 발이 바람보다 먼저 도착해 있는 서적류는 제목에 반해서이다. 유명한 작가에 제목까지 내 눈을 반짝이게 하면 손이 그냥 간다. 이제 갓 피어나는 젊은 작가들의 창작 아픔에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이래서 어릴 때 나쁜 습관은 평생이 간다는 말이 맞다. 힘들겠지만 나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에 대해 골고루 반듯하게 펴보겠다. 바쁠 일도 없는데 부지런히 고치련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렸을 오늘 종일 비가 내린다. 아마 어떤 부모님들은 내리는 비탓을 하며 아이들 몰래 미소를 지었을 거다. 아님 아이들과 같이 아쉬워했을지도.

며칠 동안 집을 비웠던 난 차분하게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김홍의 『엉엉』이다. 믿음사 젊은 작가 시리즈 39번째 주인공인 김홍 작가 책을 난 처음으로 접했다. 책 편식을 다시 한번 반성한다.

첫 페이지를 읽으며 난 ‘이건 뭐지!’라며 당황했다.

‘오직 수도에만 있는 시계. 광장에 솟은 시계탑은 왕의 권세.’

난 이 글이 ‘시간은 돈이다. 돈이 권력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 시간은 ‘내 젊음을 가져가고 연금’으로 돌아왔다. 내 시간은 젊음을 앗아간 나쁜 시간과 자유로운 해방을 준 좋은 시간이 함께 한 거다.

난 책을 읽어가는 동안 오래전 읽었던 조지오웰의 『1984』가 생각났다.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살고 있는 우리를 누군가가 관리하는 세상. 나만 비밀이고 모두에겐 비밀이 아닌 것이 돼버린 개인정보.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잖게 여기는 세상.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살다 보니 내가 누군지 잊어버린 세상.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란 존재. 이런 세상에 함께하는 당신의 친구는 친구가 맞는지. 내일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에게 ‘넌 오늘보다 내일이 핑크빛이라고 생각하니?’라고 책은 묻는 것 같다.

난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답을 찾지도 못하고 허둥대기만 했다.


오늘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해야 내일은 좋을까? 난 오늘 27층 유리창에 등을 대고 책을 읽으면서 '다행이다. 난 이미 60이 넘어서.'라며 안심했다. 아이고! 어쩔! 난 나만 생각하는 나쁜 어른임을 고백해 버렸다.

그래도 오늘 어린이날이라고 빗속에서도 하루 종일 즐거웠을 어린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친정아버지께서 밥상에서 강조하시던 것이다. 이게 이제는 점점 잊혀가는 밥상머리 교육이라 아쉽기도 하다.

“얘들아, 편식은 고쳐야 하는 나쁜 습관이란다. 뭐든지 골고루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싸울 일이 생겨 싸울 땐 치열하게, 화해는 진심으로 이쁜 말로. 좋든 싫든 서로서로 나누면서.”        

글을 쓰다 보니 이제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계실 아버지가 그립다. 어린이였던 나도 그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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