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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May 18. 2024

칼날이 된 말

그래도 난 내가 좋다.(이미지 출처: 류시화작가 인생우화 中)

"내 말을 마음에 두지 말고 들어. 앞으론 너무 착한 척 애쓰지 마. 상대가 좋다 하면 무조건 대가 없이 줘버리는 습관. 그냥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라고 하는 건 양보도 배려도 아니야. 그건 오만이고 위선이야. 오지랖이기도 하고."


며칠 전 래된 친구가  이야기 중 내게 한 말이다.


 유능하고 명석한 사람보단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소곤소곤 입안에서 살살 녹는 사탕 같은. 내 기억 속의 난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한쪽 귀퉁이에 서있는 아이. 냥 배시시 웃는. 내 거라고 한껏 주장하지 않은 그런 아이였다. 지금도 누렇게 변색만 되었을 뿐 여전하다.

내가 들고 있던 것을 누군가가 갖고 싶다 하면 '더 필요한 사람이 가져야지'라며 그냥 건네줬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들에게 편함을 양보했다.

싸움을 못했고, 큰 소리 들리면 내가 더 떨리고 무섭기도 했다.

무엇을 바라고 했던 행동과 말 아니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서였다. 그냥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난 그렇게 살아왔다.


이런 나의 행동과 말에 대한 비판이 오래됨과 친근함을 둘러쓰고 칼날이 되어 나에게 쏟아졌다. 난 민첩하게 피하지도 못하고 쏟아지는 말, 말들을 고스란히 내 가슴에 꽂히게 했다. 바보처럼. 역류성식도염이 재발된 듯 쓰디쓴 뭔가가 목구멍을 아프게 한다.


류시화 작가님의 『인생우화』중 '하루 단어 사용량'이 생각나 다시 읽어봤다.


원래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마을이 시대가 변하면서 현자의 지혜로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의미한 잡담과 수다에 열중하게 되었다. 마을 걱정에 현자들이 모여 거듭된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각자 일생동안 사용할 제한된 숫자의 단어를 가지고 태어난다. 너무 많은 말을 하면 정해진 숫자의 단어를 일찍 써버려 그다음부터는 언어 장애인이 되거나 일찍 죽을 것이다. 그러니 말을 아껴라.'

그 후 일주일 정도 마을엔 잡담과 수다가 사라져 소란과 다툼도 사라졌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사람들은 현자들이 내린 결론에 의심을 품었다. 말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은 결론이라는 반발도 했다. 현자들은 다시 회의를 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위해 다음과 같이 규칙을 정했다.

'하루에 250개의 단어만 말한다.'  

그 결정에 사람들은 중요한 말을 하기 전에 하루 단어 사용량이 끝나지 않도록 무의미한 말들과 언쟁을 자제했다. 마을은 이전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소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좋아하고 즐거웠던 차림새들이 오만이고 위선이라는데. 난 어떤 단어로 답을 해야 할까? 우수수 쏟아지는 말들 속에 어떤 말이 내 마음 제대로 전달까? 아프지 않게 살살.

친구 말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진 상태로 내 귓속을 여전히 파고든다. 전화기에선 친구의 침이 튀어나오는 것도 같다.

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는 이곳을 즐기는 지금. 난 내 영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지금껏 살아왔던 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사람이  갑자기 하면 죽는다는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핑계 삼아. 한바탕 크게 웃은 후 난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 사용 할 단어 안에서 이렇게 말을 하고 싶다. 소리 내지 못하고 입안에서 웅얼웅얼거리면서.

"엔간히 해라. 그래도 난 이런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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